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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진구 범천동에 위치한 범천의원. 안철수 후보의 대선 출마 즈음에 문을 닫았다.
 부산 진구 범천동에 위치한 범천의원. 안철수 후보의 대선 출마 즈음에 문을 닫았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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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앉아가. 포도 하나 잡수면서 얘기하소."

부산 진구 범천동. 이곳에는 안철수 후보 부친 안영모 원장이 운영하던 범천의원이 있던 곳이다. 안 후보 출마 즈음에서 범천의원은 문을 닫았다. 추석 이후 이 동네를 찾았다. 범천의원 인근 슈퍼에서 박정근(가명, 60)씨와 이용호(가명, 65)씨를 만났다. 박씨가 같은 동네에 사는 이씨에게 술을 따라 주고 있었다.

박씨는 30년 전 민정당 시절부터 오랫동안 당원 생활을 했다. 그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다. 박씨는 "요새 젊은 애들이 안철수 후보를 많이 지지한다고 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역정을 냈다.

"같은 동네라서 안철수 지지? 터무니 없는 소리!"

그러자 곁에 있던 이씨가 무릎을 탁 치며 맞장구쳤다. 이씨 역시 박씨와 생각이 같다. 이씨는 "지난 추석 때 조카들이 '삼촌은 안철수 안 뽑을 거냐?'라는 말에 기겁을 했다"고 말했다.

"애들이 뭘 안다꼬 누굴 뽑네 마네 하노. 4.19가 뭔지, 5.16이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말이야! 5.16은 무정부 상태에서 일어났는데 쿠데타라 볼 수가 있냐 이 말이제. 역사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는 기."

맨 왼쪽에 앉은 사람이 박정근(가명. 60)씨, 가운데 앉은 사람이 이용호(가명. 65) 씨
 맨 왼쪽에 앉은 사람이 박정근(가명. 60)씨, 가운데 앉은 사람이 이용호(가명. 65) 씨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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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씨는 "요즘 젊은 애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정치를 오래한 '정치 9단'도 아닌 사람이 대통령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안철수 후보는 기회를 엿보다가 나온 것만 같아 괘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후보의 부친 안영모 원장에 대해서는 모두 좋게 평가했다. 이씨의 장인 역시 안영모 원장에게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안영모 원장의 인품에 대해서는 이 동네 사람이면 대부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안영모 원장의 아들이고, 같은 동네 출신이라고 해서 뽑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부산 출신 대통령 뽑는다고 부산에 덕이 되나? 노무혀이를 봐라. 부산이랑 경남 표 등에 업고 갔는데 어떻게 됐노. 김대중이도 그렇다이가. 뽑아 놨드만 IMF 이후에 사람들 얼마나 많이 자살했노. 정상 회담 했다고 노벨평화상 받은 기 우리한테 도움이 되나."

하지만 김진옥(52)씨의 생각은 달랐다. 김씨는 "안철수는 IT분야에서 성공하고 똑똑한 양반이니 정치도 금방 금방 배울 것"이라며 "안철수가 하면 왠지 다 잘해낼 것 같고 경제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내게는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범천동이 있는 부산진구을은 부산에서도 대표적인 보수지역이다. 지금의 선거구가 제정된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김영삼의 신민당'을 제외하고 모두 보수정당이 승리했다. 지난 4.11총선에서는 김정길 민주당 후보가 처음 선거에 나온 이헌승 새누리당 후보에게 약 10%p 차이라 패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범천의원이 있는 동네에서도 '안철수 지지'는 예상만큼 크지 않았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모두 부산 출신이다. 다른 부산 시민들은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번엔 발길을 부산 서면으로 옮겼다.

서면 1번가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현일진(52)씨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 현씨는 "문재인 후보가 대선을 위해 사상구 국회의원직을 이용했다는 건 큰 잘못"이라고 문 후보를 비판했다. 지역 발전보다는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했다는 의심이다.

그는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안철수 후보 역시 "부산 출신 타이틀을 가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후보는 부산에서 태어났을 뿐이지 정치적 고향은 부산이 아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부산의 2030세대, 새누리당에 등 돌리나

부산 구포시장은 장날을 맞아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여기저기서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구포시장에는 중장년층이 많았다. 시장 길목에서 이영애(53)씨를 만났다. 그는 10년째 구포시장에서 식당을 운영 중이다. 

이씨는 "요즘 들어 식당 손님들이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TV에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나오면 홧김에 술을 더 시키는 손님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반응에 그는 "아무래도 박정희 때는 먹고 살만 했으니까, 딸인 박근혜도 잘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가 집으로 돌아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씨의 딸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 딸은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씨에게 '문재인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를 길게 이야기한다. 

이씨는 "원래 관심이 없었지만 이젠 정치를 모르면 장사도 못 하겠더라"며 "이번 대선에는 꼭 딸 손을 잡고 투표하러 가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구포시장에서 1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애(53)씨.
 구포시장에서 1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애(53)씨.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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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대 총선 때 사상구에서 문재인과 맞붙었던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는 40%가 넘는 득표를 기록했다. 손수조씨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김효정(27)씨는 20년째 사상구에서 살고 있다.

김씨는 "손수조 후보가 예상보다 많은 득표를 한 것은 부산이 새누리당 텃밭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부산의 4050세대들은 새누리당을 많이 지지하지만 2030세대 사이에는 '반 새누리당 정서'도 크다, (대선에서) 자연스레 표가 갈릴 것 같다"고 전망했다. 

동래구 명장동에 사는 최서연(24)씨는 이번 추석을 계기로 2030세대의 변화를 실감했다. 그의 큰아버지는 여전히 새누리당을 고수했지만, 최씨와 사촌들은 달랐다. "난생 처음 화투패가 아닌 정치 이야기로 가족이 양쪽으로 갈렸다"며 웃었다. 

"부모 세대에서 이어지던 새누리당 지지가 많이 약해진 것 같아요. 큰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확실히 박근혜 후보 지지가 많은데, 또래 친구들은 문재인이나 안철수를 지지하는 성향이 더 커요. 어릴 땐 잘 몰라 부모님 말씀만 들었지만, 이젠 저희가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어요. 2030세대가 새누리당에게 등 돌린 건 이미 오래됐죠. 이제는 지역이 아니라 세대가 민심을 가르고 있어요."

<한겨레>와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플러스가 10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간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의 야권 후보 지지율은 50%가 넘는다. 그렇다면 부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까?

부산자치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신중한 견해를 보였다. 양 처장은 "2030세대가 선거 참여 차원에서 볼 때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부산의 청년들은 아직까지 적극적인 정치 의사를 표명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지역이 아닌 전체로 보면 2030세대가 '야성'을 많이 띠고 있지만, 부산에서는 그 정도가 약하다는 이야기다.

부산은 과거 3당 합당 이전까지는 '야도'로 불렸다. 하지만, 3당 합당 이후 지역주의와 반 호남 정서가 강해졌다. 부산은 순식간에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여도'로 변했다. '민주당' '호남'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김정길 후보는 44.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4.11총선 때도 야권은 북∙강서구에서 선전했고, 문재인 후보는 사상구에서 승리했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은 부산 사하구을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조 의원은 "지역민들이 봤을 때 지역 발전에 대해 누가 가장 적합한가를 많이 보는 것 같다"며 "이제는 3당 합당과 같은 옛날 방식의 정치에 국민들이 피로감과 식상함을 느끼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인물을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 이후 흔들리는 부산 민심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있는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있는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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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부산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은 "부산이 예전의 야도 명성을 찾아가고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분석한다"며 "하지만 새누리당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야권이 대안 세력으로 여겨지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민심의 변화가 보인다. <매일경제>와 여론조사 기관 한길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9월 21~22일과 10월 5~6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야 간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 걸 확인할 수 있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추석 이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양자대결 지지율은 각각 61.5%와 32.7%였다. 하지만 추석 이후 박 후보는 55.2%로 하락했고, 문 후보는 40.3%로 크게 올랐다.

박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같은 지역 양자대결에서는 추석 이전 각각 59.7%, 36.1%였다. 하지만 추석 이후 박 후보 53.2%, 안 후보 43.3%로 역시 격차가 좁혀졌다.

호남 사람들은 "우리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부산 사람은 "노무혀이는 부산, 경남 표로 대통령 됐다"고 주장한다. 야권의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모두 부산 출신이다.

여전히 새누리당 성향이 강한 부산, 12월 대선에서 부산 시민은 과연 누구를 가장 크게 지지할까?

덧붙이는 글 | 김다솜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합니다.



태그:#부산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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