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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인 1980년대, 유달리 대중가요를 좋아했던 나는 조용필을 싫어했다. 툭하면 가요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독차지 하는 그가 어린 나이에도 무척이나 미웠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필을 환호했고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나는 노래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만 난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필이 조금 있으면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은 너무 노래를 많이 불러서 목에 치명적인 손상이 갔다는 것. 더 이상 노래를 부르게 되면 목소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나는 그 사실을 믿었고 어린 나이에도 조용필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린 나이에 조용필을 싫어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다른 가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방송국도 많지 않고 가요프로그램도 많지 않던 당시에는 순위프로그램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볼 수 있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1위를 해야 자주 방송에 나왔다. 그런데 조용필이 나오면 항상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니 싫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다른 가수들도 경쟁의 대상이었지만 조용필은 달랐다.

그토록 조용필을 싫어하게 만들었던 가수는 바로 전영록이다. 지금 세대들은 가왕 조용필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니 전영록이야 오죽 하겠냐 만은 당시만 해도 조용필과 함께 1위 자리를 다투는 최대의 라이벌이었다. 게다가 전영록은 <돌아이>라는 영화의 주연을 맡아 당시에 3탄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온 방안을 전영록의 사진으로 도배했던 나는 이런 그를 제치고 1위를 다투는 조용필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90년대가 되면서 조용필도 전영록도 차츰 대중 앞에서 멀어져 갔다. 새로운 가수들이 등장했고 대중가요 시장은 점점 더 빠른 템포의 새로운 장르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두르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가수들이 점점 그룹화 된 것이다. 물론 실력파 솔로 가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많은 가수들이 그룹을 형성해서 나왔다. 이러한 가요계의 변화의 물결 속에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조용필을 비롯한 전영록, 이선희, 구창모, 이용 등의 가수는 차츰 추억속의 가수가 되어 갔다.

2000년대에 와서는 더욱 7080가수들의 설 자리는 없어졌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7080콘서트를 비롯한 별도의 무대만이 그들이 출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송이었다. 이마저 출연한 가수들은 신곡이 아닌 자신들의 전성기 때 히트곡을 부르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추세 속에서  결국 일부의 가수들은 행사 위주의 공연과 라디오 음악방송, 미사리와 이종환의 쉘부르로 대변되는 라이브카페 등으로 활동 영역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전영록은 없었지만 라이브카페를 즐겨 찾았던 나로서는 그들이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조용필은 스스로가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 콘서트 위주로 활동했고 방송 출연 역시도 조용필 스페셜 편성 때만 출연했다. 어린 나는 몰랐지만 조용필은 그때부터 가왕이었던 것이다.   

노래방은 진정한 조용필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곳

90년대에는 한국에 노래방이 처음으로 도입된 시기다. 노래방은 도입초기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친구, 가족, 연인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겨 찾는 곳이 되었고 기존의 듣기 중심의 음악 문화에서 부르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노래방 문화의 성장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그 가치는  비단 수많은 히트곡 때문만은 아니다. 노래방에서의 조용필 노래는 방송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각종 콘서트를 통해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왔던 그의 시대적 모습과 같다. 중년 세대의 노래방 자리에서는 빠질 수 없는 노래가 바로 그의 곡이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히트곡과 다양한 감정의 노래들, 비록 70년대 80년대 노래지만 지금 불러도 트로트와는 또 다른 시대성,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성과 누가 불러도 잘 부르는 것처럼 보이는 음악성이 지금까지도 모든 사람의 입을 통해 불러지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마치 구전 설화(口傳說話)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도 요즘 세대들에게는 무명의 가수로 전락했다. 아이돌그룹이 대세인 현 가요계에서 가왕 조용필은 그때 그 세대들에게만 해당됐다. 설령 조용필이라는 이름 석자를 아는 세대도 조용필은 단지 부모님 세대에 좋아했던, 당시에 인기 좀 있었던 가수일 뿐이었다. 아니 당시 최고의 가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예전의 조용필을 추억하며 자신의 젊음을 같이 추억하는 그 정도였을 것이다. 노래방에서 조용필의 노래나 부르면서.

조용필, 그는 모든 중년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런 조용필이 다시 우리 앞에 19집 <헬로(Hello)>를 들고 나타났다. 예전의 명성이야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그렇다고 아이돌 그룹이 점령(?)한 가요계를 이렇게 흔들어 놓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과거 조용필이 아닌 신인 조용필로 태어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새로 시작하는 신인의 자세로 19집을 준비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는 그가, 그것도 60을 넘은 나이에 신규 앨범 발표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크나 큰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우려와 걱정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너무나도 변해있는 지금의 음악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는 도전했고 "역시 조용필이다"라는 찬사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그러기에 충분했다.

이번 조용필의 도전과 위대한 탄생은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중년 세대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의학이 발달하고 사람의 수명이 연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 우리사회는 60대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다. 심지어 40~50대만 되도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는 게 쉽지 만은 않은 일이다. 정년을 걱정해야 하고 퇴직을 우려해야 하며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이팔청춘이냐, 내 나이가 몇인데"라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다. 가정을 위해 한없이 쳐져있는 것이 중년 세대의 어깨이자 자화상이다.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조용필은 희망과 교육을 주었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줬다. 조용필의 위대한 재탄생은 조용필이어서가 아니라 조용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조용필의 가요프로그램 1위 입성이 존경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에 존경스럽다.

덧붙이는 글 | '헬로~ 조용필!' 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조용필, #가왕 조용필, #헬로, #전영록, #7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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