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우네…."

언제부터인가 이 노래를 들으면 코끝이 싸해지고 눈앞이 흐려진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 노래는 흔히 말하는 나의 18번이다. 이 노래를 듣게 된 것은 엄마로부터였다. 작은 몸집에 유난히 바지런 하셨던 엄마,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고 나는 늘 엄마 옆에 붙어 다녔다. 가끔은 내가 손님이 되어 복숭아를 사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가 되어 사과를 예쁘게 진열해 놓고, 한 번쯤은 시장통을 놀이터 삼아 뛰고 달리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하나, 엄마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카세트라디오였다. 커다란 건전지를 검은 고무줄로 함께 묶은, 손잡이가 달려 있어 마치 손가방 같은 그것에서는 늘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러면 나는 내용도 잘 모르는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불렀고 어느새 나는 '카수'가 되어 있었다. 그런 반면 엄마는 도통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다. 어쩌다 가끔 흥얼거리기는 해도. 그런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바로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툭하면 용필이 오빠 노래 부르라던 엄마

10년만에 19번째 새앨범 <헬로>를 발표한 가수 조용필이 23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뮤즈라이브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10년만에 19번째 새앨범 <헬로>를 발표한 가수 조용필이 23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뮤즈라이브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옥아, 부산항 한 번 불러봐라."
"옥아, 노래 한 자락 해 봐라. 용필이 오빠 걸로. 아이스케키 먹게 해줄테니."
"근데 왜 그 사람이 오빠인데? 진짜 엄마 오빤가?"
"다들 그렇게 부른다.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노래나 불러봐라."

엄마는 툭하면 나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고 나는 그 대가로 동전을 얻을 수 있어 몇 번이고 불렀다. 카세트 테이프 겉면에 붙어있는 조용필의 앳된 모습을 보고, 도저히 엄마의 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빠"라고 부르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엄마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도 틀지 않고 조용히 엄마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옥아, 니 다음에 엄마하고 부산에 가자. 거기 가면 오빠 노래처럼 갈매기도 있고, 바다도 있어야. 그리고 외할머니도…."

노래를 부르다 말고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어깨를 토닥이며 부산에 가자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도 나처럼 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나처럼 엄마가 있다는 것을, 그 엄마를 보고 싶어한다는 것도.

나중에, 내가 좀 더 자란 후에 알게 된 것은 엄마의 고향은 부산으로 아버지와 결혼한 후 빈 몸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부산에는 외할머니 혼자 남으셨는데 형편이 나아지면 모셔간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엄마는 속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가끔 세상살이가 힘들어지면, 부산에 혼자 계신 외할머니 생각이 나면 엄마는 용필이 오빠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를 듣고 부르며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엄마와 나의 18번,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다시 부르며

 10년만에 19번째 새앨범 <헬로>를 발표한 가수 조용필이 23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가진 쇼케이스에서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10년만에 19번째 새앨범 <헬로>를 발표한 가수 조용필이 23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가진 쇼케이스에서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자식의 나이를 지나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자리에 서고보니 이제야 고단했던 엄마의 삶을 다독이게 된다.

10년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온 조용필. '가왕의 귀환'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게 그는 여전이 앳된 오빠의 모습을 하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만난 오빠의 웃음에 반가움이 앞선다. 그리고 오빠의 노래를 통해 삶의 한 부분을 의지했던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나의 18번 노래를 불러본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우네…."


태그:#조용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