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5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지역은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나는 갈매기> 해가 바뀌어도 부산 갈매기들의 '자이언츠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 영화 <나는 갈매기> 해가 바뀌어도 부산 갈매기들의 '자이언츠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 Dreamville


"부산 사람이면 야구를 아예 안 보는 사람과 롯데 팬으로 나뉘지, 부산 살면서 다른 팀 좋아하는 사람은 못 봤다."

언젠가 부산 출신 친구가 자신만만하게 했던 말이다. 물론 그 친구도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이었다. 나는 부산에 살아본 적이 없음에도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타 지역 사람들에게도, 부산과 롯데 자이언츠의 각별한 관계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부산이 연고지임을 감안하더라도,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지지는 독보적인 수준이다. 프로야구 시즌 중에는 할머니와 어린 손자를 포함한 온 가족이, 롯데 유니폼을 입고 나들이하듯 사직구장을 찾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롯데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장 노점의 라디오에서부터 길거리의 TV까지, 부산의 거의 모든 매체에서 중계방송이 흘러나온다. 사직구장은 언제나 롯데를 응원하는 함성과 활기가 넘쳐흐른다.

외지인들은 대개 이런 문화를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롯데가 매번 우승을 다투는 강팀은 아니기에, 이 같은 절대적인 지지의 이유를 선뜻 이해하지는 못한다. 부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롯데 자이언츠와 그 팬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갈매기>(2009)는, 부산 바깥의 사람들이 이 독특한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

무너지고 쓰러져도... 야단치며 기다려주는 '팬심'

영화 <나는 갈매기> 롯데 자이언츠의 팬들이 사직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영화 <나는 갈매기> 롯데 자이언츠의 팬들이 사직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Dreamville


영화는 롯데 팬들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부산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그냥 재미있어서, 혹은 부산 사람이기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된 경위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응원팀에 대한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롯데 팬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팬들의 모습과 달리, 작품 속에 비친 롯데 팀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영화는 롯데 팬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팀이 총체적인 부진에 빠지는 시점에 주목한다. 작품의 주 배경이 되는 2009년 시즌 초반, 롯데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선수들은 슬럼프에 빠지고, 경기는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심 선수들이 계속해서 부상을 입는다.

팬들은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열렬하게 응원할 때와는 딴판으로, 경기 내용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욕설 섞인 거친 항의가 쏟아진다. 감독과 선수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팬들 사이를 지나간다. 금방이라도 롯데의 인기가 식어버릴 것처럼 싸늘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사직구장은 롯데를 응원하는 팬들로 여전히 가득 차 있다. 시장과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야구 중계도 줄어들지 않는다. 팬들은 좋지 않은 결과에 화를 내고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는 않는다.

<나는 갈매기>는 롯데 팀의 '영광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초라하고 어려운 순간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팬들의 지지를 부각시킨다. 이들의 애정은 못난 행동을 맹목적으로 감싸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롯데의 패배를 거친 말로 질책하고 선수들을 야단치기도 하지만, 절대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결과에 대한 감정과 관계없이, 이들에게 롯데를 응원하는 것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애정을 알기에, 롯데 선수들은 팬들의 비판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관심을 약으로 삼아 슬럼프를 이겨낸다.

롯데 자이언츠와 '갈매기'들의 뿌리는 결국 '부산'

영화 <나는 갈매기> 타향인 서울에서 롯데의 경기를 보다 울려퍼지는 '부산 갈매기'에 눈물을 흘렸다는 팬의 말. 이들에게 롯데 자이언츠는 또 다른 '부산'이다.

▲ 영화 <나는 갈매기> 타향인 서울에서 롯데의 경기를 보다 울려퍼지는 '부산 갈매기'에 눈물을 흘렸다는 팬의 말. 이들에게 롯데 자이언츠는 또 다른 '부산'이다. ⓒ Dreamville


롯데의 수많은 응원가 중 단연 첫째로 꼽히는 것은 바로 <부산 갈매기>다. 경기의 흐름이 롯데 편으로 넘어왔을 때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 같이 이 노래를 부른다. 영화 초반의 인터뷰에서, 한 롯데 팬은 서울로 올라온 지 몇 년 만에 목동구장에서 롯데의 경기를 보다가 팬들이 부르는 <부산 갈매기>에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다. 이들에게 롯데 자이언츠는 단순한 응원 팀 이상의, 고향의 한 얼굴이다.

"야구 잘 못해도 돼. 4등만 하면 최고야. 너무 잘 할 필요도 없고 화끈하게, '부산 맛'을 보여주면 그걸로 되는 거야"라는 다른 팬의 인터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팬들과 롯데 팀의 끈끈한 관계가 애초에 어디에 기반한 것이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들을 근본적으로 묶고 있는 것은 '야구'가 아니다. '부산'이다. 부산이라는 커다랗고 튼튼한 울타리 안에서, 시민들은 아들과 형제를 사랑하듯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산 야구팬들과 롯데 자이언츠의 감정은 스포츠 팀과 팬으로서의 그것이라기보다 가족애에 가깝다. 잘못에는 호된 질책을 하되, 절대 애정을 거두거나 관계를 끊지 않는 롯데 팬의 모습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들의 거친 욕설과 책망 이면에는 결코 변할 수 없는 '부산사람'의 튼튼한 유대와 묵묵한 애정이 있다. 이런 감정들이 뒷받침된 탓에, 꾸짖음은 곧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나는 갈매기>는 2009년 시즌의 중반까지만을 기록한 작품이기에 이야기 속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그해 롯데 자이언츠는 초반의 부진과 악재를 딛고 정규시즌 4위를 기록했다. 묵묵히 믿고 기다렸던 팬들은 그 결과에 다시 한번 열광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부산 갈매기'들은 여전히 롯데 자이언츠에게 욕설 섞인 애정을 퍼붓고 있다. 그 사랑은 올해 그들을 어떻게 이끌까. 부산 사람이 아님에도, 롯데의 경기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나는 갈매기>(2009, Flying Giants)
다큐멘터리, 드라마 | 한국 | 85 분 | 개봉 2009-09-26 |
제작/배급 드림빌 엔터테인먼트 (제작), 롯데엔터테인먼트(배급)
감독 권상준 출연 제리 로이스터 (본인 역), 이대호 (본인 역), 강민호 (본인 역)
나는 갈매기 롯데자이언츠 권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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