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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0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지역은 제주도입니다. [편집자말]
'오름투어'를 마치고 내려가는 친구들.
 '오름투어'를 마치고 내려가는 친구들.
ⓒ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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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자리, 그득 쌓인 설거지 등 분주했던 시간이 남긴 과제가 많습니다. 그래도 커피 한 잔 들고 '마법의자'에 앉았습니다. 카페로 들어가다 딱 마주친 반짝이는 바다와 마늘밭이 쉼표 하나 던져줬나 봅니다.

오늘은 올가을 첫 '곰씨비씨' 오름투어가 있는 날입니다! 어젯밤 똑 떨어진 가스 덕에 휴대용 버너에 계란 삶고, 참기름에 달달 볶은 묵은지 김밥 싸는 등 아침이 분주했습니다. 그래도 억새 넘실대는 오름에 올라 막걸리 한 잔 먹을 생각에 분주함도 기뻤습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온 '알또', 엄마 대신 키워주신 할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아픔을 달래러 아버지와 함께 온 '삼용이', 백수 청년, 독일에서 온 일리아 자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같은 차를 타고 오름에 오릅니다. 그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봐도 서로의 느낌은 다를 겁니다. 그 느낌이 무엇이든, 오름은 일상에서 쉽게 느끼지 못하는 감동과 여유를 모두의 가슴에 똑같이 뿌려줄 겁니다."

내게 가을은 '오름의 계절'이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작년 10월 어느날, 나는 SNS계정에 위 글을 올렸다. 올해도 작년 가을처럼 집 앞 대평리 바다는 반짝반짝 빛난다. 제주에 사는 내게 가을은, 오름의 계절이다.

제주에 내려온 지 5년, 해마다 그리고 계절마다 매번 오름에 오른다. 그럼에도 가을 오름은 갈 때마다 처음 온 듯, 볼 때마다 처음 본 듯,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감동의 탄성을 자아내는 신비로운 곳이다.

제주도 오름과 억새.
 제주도 오름과 억새.
ⓒ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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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여름, 처음 다랑쉬오름을 갔을 땐 자욱한 안개 탓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안개의 느낌, 이름처럼 억센 억새의 푸른 기운 탓에 에너지 드링크 마신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해 여름 서너 번 더 다랑쉬오름을 찾았다. 하지만 다랑쉬오름은 쉽사리 탁 트인 풍광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을이 찾아왔고, 다시 다랑쉬오름으로 향했다. 몇 차례 당한(?) 탓에 이번엔 마음을 내려놓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다랑쉬오름을 오르다 숨을 고르려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비로소 제주의 속살을 본 듯했다. 오르면서 계속 뒤를 돌아봤다. 정상에 올라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벌레 기둥'처럼 끝없이 펼쳐진 작은 오름을 보면서, 비로소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제주의 바람이 다듬은 것인지, 아니면 제주를 만들었다는 여신 '설문대할망'이 작정하고 만든 것인지, 눈앞에 펼쳐진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을 보며 나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너무 보이는 것만 보았구나.
너무 보고 싶은 것만 보았구나.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구나.'

멍하게 바라봤던 오름의 비경

한여름 그리 푸르고 대차던 아끈다랑쉬오름의 억새도 바람 따라 겸손한 소리와 몸짓으로 움직이던 그 가을 이후, 난 오름 예찬론자가 되어버렸다.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니, 손님들에게 '제주의 특별한 곳'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수시로 받는 건 나의 숙명이다. 그때마다 나는 주저 없이 다랑쉬오름과 그 바로 옆에 있는 아끈다랑쉬오름을 '강추'했다.

오름에 올라 쉬고 있는 친구들.
 오름에 올라 쉬고 있는 친구들.
ⓒ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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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오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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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손님들과 함께 오름을 찾았다. 한걸음씩 오름을 밟아 올라갈수록 맑아지던 친구들의 표정. 오름에서의 울림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후 해마다 가을이 오면 친구들을 모집해 '오름투어' 개최했다. 제주의 감동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다.

햇살이 따가우면 따가운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우린 준비한 것들을 챙겨 들고 오름을 올랐다. 많은 비가 내린 날에도 가봤지만, 오름은 역시 가을볕이 쏟아지는 날에 가면 좋다. 복잡하고, 답답한 상념을 갖고 올라도 가을볕은 습한 마음을 바삭하게 말려준다. 몇해 전 가을, 좋지 않은 마음을 안고 오름에 올라,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내가 옹졸했구나..."
"그 사람은 그게 힘들었겠구나..."

그렇게 세상과 한 발 떨어져 오름에 누워 있다가 툭툭 털고 일어나니 뭔가 훌쩍 가벼웠다. 하늘, 들꽃, 억새 등 세상은 더욱 예쁜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오름은 일상의  쉼표가 되고, '힐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제철'은 음식 앞에만 붙이라는 법 없다. 제주의 오름, 지금이 딱 제철이다.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오름 전체가 억새로 덮이는 아끈다랑쉬오름은 지금 장관이다. 이뿐 아니라 모양과 느낌이 다른 오름이 제주에는 380개가 넘는다. 느낌 아는대로, 느낌대로, 골라서 오르면 된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내게 오름은 인생의 한 수를 가르쳐주는 멋진 스승이고 제주에 사는 행복이자 특권이다.

올해 아끈다랑쉬오름의 억새는 유난히 키가 크다는데.... 많이 끌리면 겨울이 오기 전에 휘리릭 다녀가시길.

가을, 제주 오름에세 쉽게 만날 수 있는 억새.
 가을, 제주 오름에세 쉽게 만날 수 있는 억새.
ⓒ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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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을 쓴 박은경씨는 제주도 대평리에서 '곰씨비씨'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그:#오름,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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