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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1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지역은 수도권입니다. [편집자말]
청량리 민자역사가 들어서기 전인 2008년 청량리역 앞 풍경
 청량리 민자역사가 들어서기 전인 2008년 청량리역 앞 풍경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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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생활은 2006년 초봄에 시작됐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기대와 불안으로 며칠 밤을 잠 못 자고 뒤척였다. 좁은 목포 시내에서도 길을 못 찾고 헤매기 일쑤인 내가, 서울에서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철을 무사히 타고 다닐 수 있을까?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복만 입고 다녔기 때문에 캠퍼스에서 입을 옷도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서울 여대생들은 어떻게 화장을 할까, 어떤 가방을 멜까 등등 궁금한 것은 끝도 없었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점점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청량리역에서 내려 광장으로 걸어 나왔을 때, 내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이랬다.

"여기, 서울 맞아?" 

광장은 휑하고 지저분했고, 눈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죄다 낮고 칙칙했다. 화사한 젊은이들이 활보하리라 여겼던 기대도 빗나갔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가 지긋했고 어딘가 움츠러든 자세였다. 군데군데 노숙자들도 눈에 띄었다. 역에서 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판자에 포스터를 붙인 조악한 상영표를 보도에 세워둔 성인극장이 있었다. 같은 건물에 성인용품점의 간판도 보였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들이 그 앞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신입회 환영회에서 "목포에서 올라오니 어떠냐"고 묻는 서울 선배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여기가 목포보다 훨씬 후졌는데요. 저 진짜 '허버' 놀랐어요!"

선배들은 청량리 일대가 개발이 덜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말도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반박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 그건 정말이었다.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당시만 해도 청량리는 내가 살았던 목포의 동네보다도 훨씬 '후진' 또는 '도시 같지 않은' 풍경이었다. 한여름에 웃통을 벗고 느슨한 반바지만 걸친 채 헤헤 웃으면서 맨발로 광장을 걸어 다니던 비대한 남자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전국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라는 청량리청과물도매시장에서는 각종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싼값에 흥정해 살 수 있었다. 대학 생활의 꽃, 엠티를 가는 날이면 아침 일찍 광장에 모여 시장으로 향했다. 몇몇씩 무리를 지어 장볼 거리를 나눈 다음 입구에서 흩어졌다. 고기, 야채, 김치, 과일 등 골목 안에는 없는 게 없었다. 스무 명이 먹으려면 삼겹살을 어느 정도 사야 하는지 정육점 주인과 상의하고 값을 흥정하는 동안, 나는 사투리와 표준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서울이라는 것을 잊는 경험을 했다. 양손에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경춘선을 타기 위해 광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던 순간 아, 여기는 서울이구나 새삼 알싸하게 깨닫곤 했다.

 청량리의 젊음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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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광장은 지하철이 끊기고 으슥한 시간이 되면 또 다른 사람들의 활동 무대가 된다고 했다. 가끔 늦은 술자리가 있던 다음 날이면 "어제 아무개가 광장에서 예쁜 누나한테 잡혔다더라" 또는 "젊은 여자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아줌마였다더라" 하는 남자 선배들의 은밀한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꼭 그것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해가 저물면 역 주변은 어쩐지 혼자 다니기가 무서웠다. 역사 뒤로는 어둡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미로처럼 뻗어 있었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사람들이 그곳을 들락거렸다.     

그때 나는 어렴풋하게 느꼈던 듯하다. 서울도 다 같은 서울이 아니라는 것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서울은 하나의 동일한 이미지이지만, 그 안에서도 공간은 결코 균질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서울스럽지 않은', '후진' 공간 덕분에 나는 위화감 없이 서울과 대학에 적응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다닌 학교가 청량리가 아니라 예를 들어 강남이나 신촌 정도에 있었다면, 나는 그만큼 서울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고 대학 생활도 훨씬 힘겨웠을지 모른다.

공간이 모두 균질해진다면...

그런데 내가 학교를 떠날 무렵부터 청량리 풍경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공사 중이던 새로운 청량리역사가 완공돼 지하 3층, 지상 9층의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안에 백화점과 영화관, 대형마트가 입점했다. 큰 도로가 났고, 주변 건물들도 모두 다시 짓거나 인테리어를 새로 꾸며 업종을 바꿨다. 과일가게, 채소가게, 구둣방 대신에 프랜차이즈 카페, 도넛가게, 아이스크림 가게가 들어섰다.

졸업한 뒤 오랜만에 청량리역에 갔을 때, 나는 꼭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광장 곳곳에는 현대적인 조형물이 설치됐으며, 늦은 시간인데도 조명이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활보하는 사람들도 싹 바뀌었다. 화사한 옷차림의 젊은이들로. 대학 시절 그 시간에 광장을 지날 때 느꼈던 조마조마하고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밤이지만 혼자 걸어도 전혀 무섭지 않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 궁금했다. 이곳에 있던 사람들 - 노숙자들, 움츠린 듯보이던 이들, 또 나를 두렵게 만들던 여자들 - 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크고 화려하고 미끈한 공간은 점점 범위를 확장하면서 낡고 어둡고 우중충한 공간을 밀어낸다. 이 방향성은 서울과 지방을 가릴 것 없이 마찬가지다. 공간과 함께 그곳에 깃들였던 사람들도 밀려난다. 서울 도심에서 주변으로, 점점 더 눈에 띄지 않는 먼 곳으로. 크게, 화려하게, 미끈하게, 모든 공간은 점점 남김없이 균질해지고 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태그:#청량리역, #전국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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