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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진돗개 왕 바우는 친구가 사랑하고 아끼는 진돗개였다. 세월이 무상한지라 바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아니하고 그 손자들이 대를 이어 바우의 혈통을 지켜가고 있다.
▲ 바우 2000년 진돗개 왕 바우는 친구가 사랑하고 아끼는 진돗개였다. 세월이 무상한지라 바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아니하고 그 손자들이 대를 이어 바우의 혈통을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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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는 보름 전에 우리 집에 온 진돗개 어미 암컷이다. 친구가 길렀던 '바우' 후손이라 종자가 좋단다. '바우'는 전국 진돗개 품평회에서 챔피언에 올랐으며 자식들도 3번이나 대상을 수상한 경력 때문에 '호야'의 혈통은 썩 좋다고 소문난 모양이다.

요즈음 일과 중 아침 저녁으로 '호야'와 산책하는 시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아침 산책은 출근시간에 쫓겨 30여분 정도로 그치나 저녁에는 시간 여유가 있어 한 시간 반 정도 할애한다. 혈당 관리에 많은 도움이 된다.

개와 산책하는 습관에 관한 얘기는 시랑헌에 묻혀있는 '일오'(세퍼드 수컷)의 생존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오'와 나나(진돗개 암컷)를 같이 기를 때 벌어진 일이다. 나나는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지만, '일오'는 위협적인 생김새 때문에 우선 보는 사람이 공포감을 느낀다. 이 때문에 '일오'는 항상 묶여 있거나 울에 갇혀있어야 했다.

불쌍한 '일오'를 위해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산책시켜주기로 집사람과 다짐했다. '일오'를 보호해야 할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오'와 산책은 꼭 해야 할 의무가 됐다. 

'일오'가 떠난 지도 1년 8개월이 되어 그의 추억도 이제 많이 엷어졌다. 시랑헌에서 살려면 아무래도 개가 필요할 것 같다. 집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어 항상 긴장해야 했던 '일오'의 악몽들을 되살리며 세퍼드 입양에 반대다.

진돗개는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다. 어미가 되면 쉽게 주인으로 받아드리지 않아 강아지 때부터 길러야 한다. 시랑헌으로 이사 가기도 전에 서둘러 친구에게 또 좋은 강아지를 한 마리를 부탁했다. 세 번째다.

친구는 잘 됐다고 하면서 좋은 수컷 종견을 알고 있으니 '호야'를 기르다가 발정하면 '둘 사이의 새끼를 받으면 좋을 것이다'고 권했다. 친구가 재직 중에는 사옥에서 '호야'를 길렀으나 1년 전에 퇴직하면서 부인의 관절염 때문에 아파트로 이사 갔다. 이 때 '호야'를 처분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임시로 담양에 사는 친구에서 맡겼으나 내가 보살피면 더 좋겠단다. 거절할 이유도 없고 거절해서는 안될 사연이다.  

'호야' 때문에 잃고 얻은 것

12월 둘째 주말, '호야'를 데리러 광주로 갔다. 담양에 살고 있던 '호야'는 좁은 우리에 갇혀 있었으며 영양상태도 좋지 않아 보였고 꼬리에는 피부병이 발생하여 털이 빠진 데다 너무도 더러워 버려진 개 같았다. '호야'를 싣고 떠날 준비가 끝났다. 저녁 10시경이다.

시랑헌에 도착했으나 전에 '일오'가 사용했던 집은 창고 뒤 편에 처박혀 있다. 지붕을 아스팔트 슁글로 덮어 나와 집사람 둘이서 옮기기에는 너무 무겁다. 그렇다고 '호야'를 영하의 추운 날씨에 밖에서 재울 수도 없고, 거실에 재우기는 너무 더럽고 악취도 심했다.

결국, 추운 겨울 한밤중에 어두운 창고 뒤에서 무거운 개 집을 옮기다가 집사람이 석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차! 싶었다. 급히 뛰어 내려가 집사람을 부추겨 일으켰다. 다행이 집사람은 몸에 별 이상이 없어 보인다. 퍽 놀란 모양이다.

집사람을 보살펴야 할 것 같아 급히 방으로 들어가면서 '호야'를 현관 못에 걸어놨다. 새벽에야 집사람이 안정하고 잠든 것 같다. 불현듯 '호야'가 생각나 현관으로 나갔으나 '호야'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한 순간 잃어버린 허탈한 심정이다.

진돗개 어미는 새 주인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 밤에 찾아 나설 수도 없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호야!"를 몇 차례 불러봤다. 어둠을 타고 시랑헌 언덕을 올라오는 기척이 나더니 '호야' 내 앞에 엎드리며 꼬리를 흔든다.

"으~음!  과연……"

목줄을 잘 단속했다. '호야'가 대견하고 만족스럽다.

동트는 모습을 맞으러 수행터를 다녀오는 산행을 준비한다. 오늘은 '호야'와 함께다. 어제 저녁 돌아와 내 앞에 엎드린 '호야' 모습이 생생해 내 곁에서 산책할 줄로 착각하고 목줄을 풀어줬다. 목줄을 풀어줄 시기가 빨라도 한참 빨랐고 진돗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무런 걸림이 없는 '호야'는 굴레 벗은 망아지가 아니라 목줄 없는 진돗개가 됐다. 산책길로 힘껏 오르내리며 천방지축 날 뛴다. 제지하기 위해 부르는 "호야!" 소리는 허공 중으로 맥없이 흩어진다.

해방되어 자유를 맛본 '호야'는 내가 한 발짝 접근하면 두 발짝 물러나 나와 간격을 좁히지 않는다. 새벽부터 3시간 가량 실랑이를 하다 보니 지쳐버렸다. 별 수 없이 시랑헌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전했다.

시집에서 호야. 신랑 덕구가 맘에 들었는지 덕구의 배설물을 쫒아다니며 냄새를 맡는다.
▲ 호야 시집에서 호야. 신랑 덕구가 맘에 들었는지 덕구의 배설물을 쫒아다니며 냄새를 맡는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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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는 지금까지 여러 번 집을 옮겼고 사옥에서 여러 사람이 다뤘으니 귀소본능이 없거나 약하다고 하면서 시랑헌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고기를 구워 준비하고 있다가  '호야'가 나타나면 처음엔 멀리 던져 주고 다음은 조금 더 가까이 던져 유인하면 다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와 집사람은 양면작전으로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대전으로 올라와 두 번 째 목욕을 시키고 나니 본 모양이 드러난다. 처음 산책을 시작 할 땐 제멋대로 끌어 힘들더니 요즈음에는 목줄에 '호야'가 달려있는지 모를 정도로 보조를 잘 맞춘다. 덕분에 요즈음 같은 겨울 밤에도 즐거운 산책을 할 수 있다. 계룡산도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다.

집사람은 지난번 시랑헌에서 개 집을 옮기다가 허리를 다친 모양이다. 지난 열흘 정도는 통증이 가볍게 느껴져 물리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전 주말에는 통증이 사뭇 심해 날밤을 지새는 고통을 당했다. 날이 밝은 대로 병원에 입원할 생각이었다.

집사람 거동이 불편해 내가 집안 일을 했다. 출근준비, 입원준비, '호야'단속 등 일이 뒤섞이다 보니 서둘렀던 모양이다. '호야' 밥을 들고 다시 현관으로 들어 갈려고 보니 '호야'가 현관 밖으로 나와 있다. 자동으로 닫혀야 하는 현관문이 종이상자에 걸려 문이 닫히지 않은 모양이다. 시랑헌 사태와 똑 같은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사라져 버린 '호야' 때문에 집사람을 집에 두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서도 자주 집으로 전화 했다. 돌아올 시간이 됐는데도 '호야'는 나타나지도 않는단다. 큰 걱정이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호야'를 잡았단다.

어떻게 잡았느냐고 물었더니 혹시, 이웃집 개들과 어울려 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맨 윗집으로 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애들과 어울려 놀고 있더란다.  상당히 떨어진 거리였지만 집사람이 "호야!" 불렀더니 즉시 달려오다가 도중에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달려왔단다.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서 "그 년! 혼 좀 내주지 그랬어?" 했더니 집사람이 "당신이 '호야'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어?" 하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집사람은 친구들과 놀기를 포기하고 자기에게 달려온 '호야'가 대견하고 기특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호야'는 요즈음 발정 중이다.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집사람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 번 주 내내 혼자 살림을 하며 '호야'를 돌본다. 잡종이 범하지 못하도록 '호야'를 현관 아니면 창고에 가둔다. 이번 주말에는 정읍으로 시집갈 예정이다.

호야는 정읍에 사는 덕구에게 시집을 갔다. 덕구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살고 있었지만 시집가는 호야에게는 멀고 험한 길이었다.
▲ 시집가는길 호야는 정읍에 사는 덕구에게 시집을 갔다. 덕구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살고 있었지만 시집가는 호야에게는 멀고 험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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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를 시집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여유있어 주변의 풍광도 눈에 들어온다.
▲ 노령산맥 준령 호야를 시집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여유있어 주변의 풍광도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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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혈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정읍까지 오가는 것도 내 입장이지 '호야'의 입장이 아니다. '호야'는 목걸이 없이 놀러 돌아다니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사랑을 나누고 싶을 것이다.

집사람은 "당신이 '호야'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어?"라고 말했지만 내심으로는 "당신이 힘겹게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 내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욕심 때문에 5일째 병원에서 고생하는 집사람에게 면목이 없다.

모두가 내 탓이다. 나의 소유욕이 빚은 결과다. 
내가 한없이 가련하고 초라해진다.
그래도, 스스로 가치를 발하는 '호야'가 잡종보다 좋다.  
언제나 소유보다 무소유를 선택하게 될까?

돌아오는 길, 내장사 주차장은 신식썰매장으로 변해있었다. 멋진 추억이 많은 아이들은 자라서도 행복할 것이다.
▲ 신식썰매 돌아오는 길, 내장사 주차장은 신식썰매장으로 변해있었다. 멋진 추억이 많은 아이들은 자라서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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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진돗개, #호야, #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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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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