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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북부에는 총칼이 두려워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는 버마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지난 해 그들 중 일부인 카렌족 사람들의 마을을 찾은 자리에서 난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됐다.


"당신은 태국 사람인가요?"

"아니."

"당신은 버마 사람인가요?"

"아니. 난 카렌족이야. 그래. 그런데, 내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서 물어본 그 질문이 그렇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8일(토), 버마 민주화세력이 군부세력을 대상으로 항쟁을 시작한지 21년째 되는 날이었다. 버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지 여사는 현재까지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고, 버마의 민주화는 요원한 것만 같다.

 

버마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람들

 

버마 민주화를 위한 연대 필리핀 지부(Free Burma Coaltion Philippines)에서는 지난 8일,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퀘존시티(Quezon City)에서 버마 민주화 항쟁을 기리고, 또한 바라는 행사를 개최했다.


필리핀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필리핀에서 공부하고 있는 버마 대학생들이 참석한 이 자리는 서로간의 생각을 공유하고, 버마 민주화 항쟁 당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비욘드 랑군(Beyond Rangoon)을 시청했다.


"영화(비욘드 랑군)가 우리 가슴 한켠을 찡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나이가 어렸고 당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핍박받았지만, 지금 역시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우리의 민주화를 지지해주는데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고 버마 민주화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10여 명의 버마 대학생들은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했다. 이들의 안전이 염려되었는지 중간에 사진 촬영을 자제해 달라는 주최 측의 설명이 또 한 번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 날 행사에 참여한 필리핀의 한 학생은 참가자들의 생각을 이렇게 대변했다.


 

"우리는 당시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정확히 우리의 민주화 과정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버마에 군부독재가 있었듯이 필리핀에도 마르코스 독재가 있었고, 버마에 아웅산 수지 여사가 있듯이 우리에겐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있습니다. 버마의 민주화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후 식후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한 젊은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게 없었다. 생각외로 활달하고 밝은 버마의 대학생들, 그리고 그들과 무수히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필리핀의 활동가들이 주변에 많았지만 갈수록 난 위축되어 갔다. 우리에게도 그에 못지 않았던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지난해 촛불집회를 목도했지만 어떻게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내 손에 주어진 어떤 것이 그저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아온 내가 한심했는지, 그들을 볼 면목이 갑자기 없어진 탓이었다.

 

멋쩍은 웃음과 몇 마디를 나눈 뒤 연대의 자리를 피해 애꿎은 밤 하늘을 보고 또 쳐다보았다.

 

"우리에게도 로라와 같은 상황이 필요하진 않을까?"

로라, 영화 <비욘드 랑군>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남편과 아들이 강도의 손에 죽은 것을 보고 삶을 잃어버린 로라, 언니와 함께 관광차 찾은 버마에서 그녀는 아웅산 수지 여사와 버마 사람들의 민주화 항쟁의 모습을 보게된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가고 핍박밨지만 그들의 꺾이지 않는 신념은 삶에 회의적이었던 그녀를 바꿔놓는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버마의 대학생들 표정은 진지했다. 로라와 버마인들이 버마 국경을 벗아나 태국으로 망명하는 장면에서 총을 든 군인 한 명이 그들을 돕는 모습이 나온다. 영화 내내 군인들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쫒는 모습만을 비추다가 감독은 사람들의 오해의 눈초리가 염려됐는지, 이 슬픈 현실이 죽이고 도망가는자가 아닌 다른 곳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박하사탕>이나 <화려한 휴가> 역시 암시하는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너무 당연한 듯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법을 점점 잃고 있다.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될 수 있으면 질문을 하지말고 조금 거칠게 다루더라도 절대 불평하지마."


태국 북부에 있을 때, 잠깐 버마를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그 때 태국 사람들은 버마에 들어서서 여권 검사할 때 내 말을 꼭 명심하라며 해준 말이다.


"나는 약간 무섭습니다. 지금 이런 자리도요."


버마의 대학생이 행사에서 한 말이다.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든, 경험으로 느끼든 버마의 군부독재가 주는 공포는 국경을 넘고, 사람을 거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버마의 민주화의 소식은 들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아웅산 수지 여사를 석방하라는 각계각층의 요구는 관철될 기미가 없다.


언제 아웅산 수지의 동상은 그들의 나라의 서고, 민주화 항쟁 기념탑은 수도 한복판에 자리잡고, 이 슬픈 역사의 현실을 아이들이 올곧게 배울 수 있을까?


우리는 당연한 듯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버마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그들의 외침은 지구촌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 위 행사는 NGO 아시안브릿지(Asianbridge)가 초청받은 자리에 동행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버마, #미얀마, #아웅산 수지, #비욘드 랑군, #민주화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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