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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정적인 아키노 상원의원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후 부인 코라손 아키노 여사는 1986년 평화적인 민중봉기(People Power Ⅰ)에 의해 마르코스를 축출하고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당시 대통령 아키노는 신 헌법을 제정하고, 개혁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쿠데타 시도로 인한 정치불안, 전국적인 자연재해, 미군 철수 등의 잇단 악재를 맞고, 농지개혁이나 외채문제 등에 있어서 개혁의지를 끝가지 견지하지 못하면서 그 성과에 대해 오늘날에도 시시비비가 많다.


여하튼,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인 아키노 대통령은 지난 1일(토), 그 운명을 달리했다. 세계 각국의 인사들은 그녀를 성명을 발표하여 그녀를 추도하고 있으며, 필리핀 정부 역시 오는 5일(수)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그녀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여느 정치인에 비해 아키노에 호의적인 필리피노들, 과연 그들은 아키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치는 몰랐지만 깨끗한 그녀, 아키노"

 

30대 중반의 헤르난데스는 필리핀 과학기술대학(Polytechnic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출신으로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퀘존 시티(Quezon City)의 고급 빌리지에 살고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그녀는 대학 재학시 수많은 시위에 참가한 이른바 '운동권'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독재자 '마르코스'의 카리스마 혹은 스타일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마르코스) 당시 필리핀 경제는 호황이었다. 직업을 찾기가 쉬웠고, 경제가 발전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똑똑하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문제라면 그의 독재 탓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과, 부정부패를 일삼은 부인 '이멜다', 그리고 몇몇 측근들이었다."


그녀는 마르코스의 치부에 대해선 누구보다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마르코스 재임기간동안은 그래도 좋았다'는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할만큼 해봤지만 세상이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자괴감이 섞여있는 말투였다. 이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몇 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치는 몰랐지만 필리핀에 찾아보기 드문 깨끗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키노였다."


그녀는 아키노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마르코스의 카리스마와 스타일을 지지하는 그녀의 입에서 뜻밖에 대답이 나오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키노는 비록 대지주 집안 출신이었지만 그 본인은 항상 깨끗했으며, 여느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횡령이나 비리는 그 주변인들이 저질렀다."


그녀의 말인 즉슨, 필리핀 정치인 중에 그녀처럼 깨끗한 사람은 없었다는 소리였다. 아키노 인간됨, 그녀는 그 부분을 높게 샀다.


"아키노가 능력만 조금 있었더라면..."


그녀의 상황인식에서 나는 불현듯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났다. 그가 그랬다기보단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황인식이 그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의 희망이었던 그녀, 하지만 출신의 한계가 발목을 붙잡았다."

30대 초반의 발로피노스는 10년째 대학생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보홀 섬, 그것도 아주 외진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동네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학생으로 손꼽혔고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필리핀국립대학(Universtiy of The Philippines)에 입학했다.


문제는 그 스스로 생활비와 학비를 벌고, 때론 홀어머니의 생활비를 부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휴학을 해서 돈을 벌고, 다시 복학을 하고, 또다시 휴학을 하는 생활을 반복한 결과 10년 가까이 대학을 다니게 됐다. 본인이 살아가는 바랑가이(우리나라의 '동')에서 그는 영웅시 되었지만, 메트로 마닐라 학교 근처에서 살아가는 그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다.


"아키노는 우리 모두의 희망으로 불렸다. 필리핀 민주주의의 역사를 그녀가 쓰기 시작했고,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었으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평범한 필리피노라면 그녀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아키노에 대한 그의 호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지주 집안 출신이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토지개혁 및 여러 사회개혁 정책은 대부분 좌초되거나 일부만 시행되게 됐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개혁이 진행되길 바랐을지 모르지만, 필리핀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인 대지주 가문들이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뒀을리 없고, 본인 역시 자신의 출신 한계를 완벽히 뛰어넘진 못했다고 본다. 그랬기에 그녀에게 능력이 없었다는 꼬리표가 붙는 것이 아닐까?"


아키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당시, 그가 살아가던 가난한 동네에선 그녀에 대한 지지가 대단했다고 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취임하자마자 놀라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 기대했지만, 실제 개혁의 속도는 더디고 많은 정책들이 좌초하자 사람들에게 돌아온 건 공허한 패배감이었다.


"나같이 가난한 사람이 고학력자가 되면 대부분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어온 뒤 필리핀에 돌아와서 떵떵거리며 사는 삶을 꿈꾼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마르코스 축출이후 이런 생각은 훨씬 심해졌다. 많은 이들이 혁명에 지쳤고, 바꿔야 한다는 구호가 진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단 내 삶부터 꾸리고 보자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나 역시 학생운동의 산실인 필리핀 국립대학을 다니고 그 목적과 취지에 동의하지만, 내 삶을 꾸리기에도 벅찬 게 사실이다. 돈이 최고라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표현한 발로피노스, 하지만 그 역시 사회를 지배하는 최고의 수단이자 권력은 돈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피력하며 대화를 귀결했다. 태풍이 온 탓일까, 하늘에선 연신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항상 노력했던 아키노, 하지만 그녀는 도구에 불과했다"

 

퀘존 시티에서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는 30대 초반의 에스페레토는 아키노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사람이었다.


"아키노는 많은 사람의 희망과 소망을 한 몸에 받고 탄생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구에 불과했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땐 그녀는 정치경제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했을 뿐이다. 대지주 집안 출신인 그녀의 내력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키노의 대통령 수행에 대한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혹자는 마르코스 시대 때를 추억하는 것 같지만, 그가 재임하는 동안 이루어진 횡령만으로도 필리핀의 전체 경제는 항상 휘청거렸다. 하지만 아키노 정부는 최소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이라도 했다. 마르코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아키노 같은 품성의 능력 있는 사람이 대지주 집안 출신이 아닌 가난한 출신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이었어야, 대부분이 가난한 필리핀의 정치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게 그녀의 논리였다.


"식민지 시대 이전, 필리핀은 통일된 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었다. 우리 스스로 정부를 구성한 것은 겨우 반세기를 지나가고 있고 대부분 미국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그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가 짧은 것이 우리나라 필리핀이다. 하지만 필리피노는 머리가 좋고, 무엇보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환경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민주주의와 사회발전 속도가 더디다고 우리가 못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요즘들어 국제사회가 필리핀에 드리우는 각종 비판의 잣대에 대해 이렇게 일갈을 내뱉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아키노의 대통령 이후 필리핀은 또 한 번의 평화적인 민중봉기(People Power Ⅱ)를 맞는다. '의적' 배우 출신의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축출시킨 것이다. 이유는 그의 횡령 때문이었다.


대다수 필리피노는 만성적인 정부 혹은 정치인의 횡령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깨끗하고 건실한 이미지의 정치인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길 요구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독재정권, 민주정권 하에 갖가지 횡령 사건 및 인권 침해, 그리고 정부 비판자에 대한 살인 사건까지 그들이 스스로 어떤 일을 진행하기엔 지치고, 두렵고, 패배감이 큰 것이 그들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내기보단 누군가를 기다리는 현재의 상황을 탄생시켰다.


필리피노는 기다린다. 능력있는 포스트 '아키노'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피플파워, #마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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