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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공정여행을 해보겠노라고 무수히 필리핀 이푸가오 지역을 들락날락했다. 신발이 찢어지기도 몇 번, 언젠가 한 번은 그런지도 모르고 멍하니 걷다가 인대가 늘어나는 불상사를 겪었다. 절뚝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지나가던 지프니 한 대가 나를 태워주었다.

 

심심찮게 외국인을 볼 수 있는 게 이푸가오 사람들이지만, 같은 자리에 앉게 되면 무수한 호기심이 발생하나 보다. 아이들은 나를 쿡쿡 찔러보기도 하고, 어른들은 이것저것 물어보는 가운데 화기애애하게 목적지를 향해 지프니는 달려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아까부터 시큰둥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독기서린 말을 한 마디 내뱉었다.

 

"뻔뻔하기는…."

 

보통 때는 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건만, 우연찮게 알아들은 그 말이 유쾌하진 않았다.

 

이후, 바타드를 들락거릴 때 내가 공정여행이라는 것을 하러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그 아주머니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 분은 다름아닌 바타드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내가 누군지 기억하나요?"

"네. 지난 번에 한 번 지프니에서 뵈었어요."

"한국에서 왔지요?"

"네."

"그래서, 그 때 나도 모르게 뻔뻔하단 말을 했던 거예요."

 

말인 즉슨 그랬다. 몇 몇 한국 사람들은 이곳을 들락날락하면서 사정이 딱하다며 도와준단 말을 쉽게 내뱉곤 했다는 것이다. 도와준다는 것이 돈을 준다거나, 어떤 기계를 준다거나, 옷이나 학용품을 준다는 것 따위였는데, 사실상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었나보다.

 

"한국에 언론에서도 몇 번 취재를 왔는데, 그들도 똑같은 약속을 하더군요. 물론 지켜지진 않았지만."

 

뻔뻔하단 말은 그거였다.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자신보다 외향이 못하다고 도와준다고 말하는 오만함과, 그렇게 뱉어놓고 지키지도 않는 무책임함, 그리고 그런 허황된 이야기로 인해 무기력해지는 이푸가오 사람들, 이 세가지 것에 대한 탄식.

 

그렇게 교장선생님과의 오해는 풀렸다. 이런 교훈 이후 공정여행 참가자들이 원주민들과 약속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저희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주위 사람들한테 알릴게요."

 

원주민들은 우리 얘기를 듣고, 그곳을 찾는 한국 사람들이 예의차리길 바랐다.

 

 

그들의 망가짐에 당신은 일조하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술냄새 나요!"

"사람들이 매번 씹는 빨간 열매 같은 거, 마약이라고 하던데 저래도 되나요?"

 

바타드에 이틀 머무르면서 시시때때로 만나는 사람들이 위와 같으니, 참가자들이 부정적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그 사람들과 함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계단식 논의 돌벽을 보수하러 가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돌벽 보수는 여행을 오는 이들 탓에 벌어지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여행객들이 더 좋은 풍경을 보고 싶다고,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마구잡이로 돌벽을 밟고 다닙니다. 돌벽은 밟아야 할 곳이 있고, 그러지 말아야 할 곳이 있죠. 밟아야 할 곳도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보수해줘야 하고요. 여행객들이 끊임없이 밀려드니 보수를 해도해도 끝이 없는 상황이 온 것이죠."

 

사이먼씨는 돌벽이 무너지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이에 더해 지구의 반바퀴나 돌 수 있는 규모의 계단식 논을 이제까지 유지한 비결은 우리나라의 품앗이 같은 돌벽 보수 시스템 덕분이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모두 서비스업에 달려들면서 일손이 모자르게 된 것도 문제였다. 거기에 지렁이 잡을 일손이 부족하니(지렁이가 움직이면서 공간을 만들어 돌벽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옴), 여행객들이 자신들 몰래 지렁이를 잡아와 밭에 풀어났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이곳에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원래도 고된 돌벽 보수 일을 두곱절 세곱절로 해야되니, 사람들 몸은 당연히 힘이 부쳤다. 그러니 일을 할 때마다 술의 힘을 빌리고, 빨간 열매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데 나 역시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푸가오 사람들은 더 없이 화통했다. 일을 잘하는 참가자들에겐 '미스터 바코(필리핀 말로 기계라는 뜻)'라고 치켜세우고, 돌벽 사이에 잡초를 제거하는 참가자들에겐 힘들거라며 쉬엄쉬엄하라고 손사래를 쳤다.

 

"돌벽 보수하는 거 찍어간다고 전통복장 입고 와서 일하라는 외국인들은 많아도, 자기가 밟는 돌벽만큼 보수하고 간다는 사람들은 처음본다."

 

이푸가오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온 톳씨가 이런 말을 건넬 때, 사이먼씨는 혹시 그런 사진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준비해주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참, 더러운 세상의 이치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넉넉치 않은 여비와 정확한 개념도 잡지 못하면서 공정여행 한다고 돌아다니는 나를 이푸가오에서 가장 먼저 믿어준 사람은 사이먼씨였다. 14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그의 산장을 찾았을 때 했던 그의 말이 떠오른다.

 

"솔직히, 너의 공정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 안 했다. 그런 머리 아픈 여행을 누가할까 생각했거든. 그런데 같이 온 사람들 얼굴이 정말 재미있어 보여."

 

이틀을 머물고 그의 산장을 떠날 때, 한 잔 걸친 술 탓에 볼이 발그레했던 사이먼씨는 눈물을 내비쳤다.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네가 공정하게 계산해서 준 숙박비는 좋은 일에 쓰도록 노력할게."

 

옆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사이먼씨는 마을의 교회와 등산로를 정비하는데 자기 재산 내놓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매끈한 서양식 정장과 폼나는 차, 지갑 속에 두둑한 현찰과 카드가 대접받는 세상. 직접민주제를 할 수 없어 대신 일하라고 뽑아놓은 사람들은 선거철에나 한 번 볼 수 있고, 지나가는 거지가 빵 하나 훔치면 잡혀가지만 흔히 말하는 거물이 되면 수백억을 훔쳐도 풀어주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 멋대로 이푸가오를 재단해서 바라본다. 그들에게 여기 사람들은 여전히 불쌍하니 한 푼 주고, 술이나 마약에 의지해서 사는 한심한 사람들일 것이다.

 

최소 함께한 참가자들만이라도 이런 더러운 프레임에서 비껴날 기회를 공유했다는 게, 행복했다. 다만, 무엇하나 분명하고 또렷하지 못하게 공정여행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나란 존재의 역량이 걱정될 따름이다.

 

젊음, 열정으로 복원하는 세계문화유산 대학생 공정여행 캠프 

NGO 아시안브릿지 필리핀은 2010년 1월 12일~18일까지 필리핀 루손섬 북부 이푸가오 지역에서 '젊음, 열정으로 복원하는 세계문화유산 대학생 공정여행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위의 기사는 당시 있었던 여행으로 쓰인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 이기사는 SBS 유포터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공감만세)’은 '공정여행‘을 계속 고민하는 친구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관심있으시면, 카페(http://cafe.naver.com/riceterrace)에 들러주세요!


태그:#공정여행, #아시안브릿지 필리핀, #필리핀, #공감만세,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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