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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친구들 모임인 카페에 올린 내 글에 야생화 사진작가인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2주 전에 가 본 섬진강변 매화꽃이 눈물 나게 예쁘데. 심난하게 하는 어려운 일들을 잠시 놔두고 가까이 있는 땅, 하늘, 풀들을 그냥 바라보게나,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자연이더군. 사랑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마음 주면 알게 되고, 알면 속살을 내 보여주지, 그러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관계 말이야.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정리하려고 하는 인위적인 그것 때문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지. 그냥 그대로 보고 느끼세."

태양은 모든 것을 존재 그대로 수용한다.
▲ 시랑헌의 봄날 아침 태양은 모든 것을 존재 그대로 수용한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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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떠오르는 태양 앞에 불만을 털어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온 세상을 두루 비추면서 광명을 가져다 준다. 태양은 생물과 무생물, 인간과 동물, 동물과 식물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포용하며 그들의 존재의미 자체이기도 하다.

욕심이 우선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 덜 떨어진 인간 욕심이 우선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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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하더라도 감수하며 살자던 초심은 많이 엷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랑헌은 커지고 복잡해져 간다. 수세식 화장실에 히노끼 욕조를 만들었더니 비가 들이치는 시랑헌 입구에 처마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처마를 달아내기로 했다.

서툰목수의 처마작업
▲ 처마 이어내기 서툰목수의 처마작업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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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작업에 필요한 목재를 찾아오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집사람만 남원으로 가고 나는 시랑헌에 남아 처마작업을 위한 준비를 했다. 집사람이 찾아온 목재는 내가 주문한 12자 길이가 아니고 절반인 6자이다. 공사를 포기하려다가 그래도 이것으로 해보자고 머리속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해나가는 엉터리 설계이지만 이것에 의해 기둥이 서고, 바닥과 연결하고 고정하여 태풍을 대비했다. 다음은 처마 서까래를 올린다. 

처마를 사랑헌에 이어내고 보니 처마도 어느덧 시랑헌의 일부가 되어있다. 한 낮에는 여름 날씨다. 툭 터진 공간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살랑거림은 인디언들의 표현대로 위대한 정령의 선물이다. 정자의 맛이 느껴진다. 오늘 점심은 새로 만든 처마도 되고 정자도 되는 이곳에서 해야겠다.

겨울철 공사를 피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있다.
▲ 시랑헌 앞동 바닥 재시공 겨울철 공사를 피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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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을 피할 목적으로 한 겨울에 시공한 시랑헌은 봄이되고 땅이 해동되면서 부풀었던 땅이 가라앉았다. 고임돌들과 마루 사이가 떠, 걸어다닐 때마다 삐끄덕거리는 소리가 보통 신경에 거슬린게 아니다. 처마공사를 마치고 손을 댄 김에 미루고 미룬 일을 해치웠다. 뜯고 다시하는 일은 처음 시공보다 몇 배 힘이 든다. 우선 즐겁지 않다.

산동~고달간 도로공사 기간 중에 시랑농장의 토목공사도 같이 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았다. 나와 집사람은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일도 하면서 감독도 할 수있는 거처를 만든것이 시랑헌이 되었다. 도로공사가 끝나고 나와 집사람의 주말 별장이 되었다. 생활하면서 불편한 것이 있으면 하나씩 해결한다는 것이 이제 시랑헌은 5개의 작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 되었다.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으나, 올해 중에 황토방도 하나 지어볼 생각이다.

시랑헌 뒷쪽 기단을 높이기 위한 시멘트공사
▲ 정박사는 무슨... 정씨이지 시랑헌 뒷쪽 기단을 높이기 위한 시멘트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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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를 달아내고 시랑헌 마루바닥을 수리하고 나니, 집사람이 여름 장마철이 오기 전에 물이 시랑헌으로 몰려들지 않도록 기단을 높이는 작업을 해야한단다. 시랑헌 뒷쪽 공간은 좁아 굴착기가 들어갈 수 없다. 할 수없이 질통을 메고 시멘트일을 위한 모래를 나른다.

산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산다는 의미이고 여기에 자아는 없다. 자연과 맞서는 순간 재앙이 되고 목숨까지도 내놔야 할 경우도 있다. 나를 낮추는 겸손과 자연과 일치하고 순응하는 지혜로 생존의 법칙을 다시 배워야 한다. 

서툰 조적공과 미장이의 하루 날품에 의해 완공된 기단
▲ 시랑헌 뒷쪽의 완공된 시멘트 작업 서툰 조적공과 미장이의 하루 날품에 의해 완공된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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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조적공, 미장공, 등짐인부를 했더니 시랑헌 뒤쪽에 산뜻한 수납공간이 생겼다. 다음 주 다시 서툰 목수로 돌아가 비 가리개를 해줘야 한다. 정말 시멘트일과 벽돌 쌓는 일은 나 같은 완전 무지렁이에겐 퍽 힘드는 작업이다. 집사람이 원망스러웠으나 나보다 더 녹초가 된 집사람을 탓할 수 없다. 집사람은 일꾼들 간식과 점심을 준비하는 것보다 힘들더라도 나와 같이 하는 작업이 행복하고 좋단다.

이제 비로써 시랑헌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복사꽃이 핀 곳을 무릉도원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 복사꽃 이제 비로써 시랑헌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복사꽃이 핀 곳을 무릉도원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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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시랑헌에 시집올 때만 해도 생존자체도 힘겨워 했는데 어느덧 시랑헌의 일부가 되어 조화로운 그의 목소리를 낸다.
▲ 시랑헌과 어울림 작년에 시랑헌에 시집올 때만 해도 생존자체도 힘겨워 했는데 어느덧 시랑헌의 일부가 되어 조화로운 그의 목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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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달걀 만한 열매를 두 개 맺은 배나무가 올해는 제법 세력을 보인다.
▲ 이화 작년에는 달걀 만한 열매를 두 개 맺은 배나무가 올해는 제법 세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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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 순백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조현 선생님의 다정가 시조가 절로 읖조려진다.

花月白三更天(이화월백삼경천)
啼血聲聲怨杜鵑(제혈성성원두견)
儘覺多情原是病(진각다정원시병)
不關人事不成眠(불관인사불성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잠 못이루는 밤의 대화를 위해 잘 키워 내 침실의 창가로 모셔가야 겠다.
▲ 이화(배꽃) 잠 못이루는 밤의 대화를 위해 잘 키워 내 침실의 창가로 모셔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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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꽃이 이리도 고울꼬? 내가 주문하고 사온 나무이지만 그 이름을 몰라 정식으로 인사를 못 나누고 눈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그대가 열매로 보여주기 전에 내가 먼저 그대의 정체를 알아내  정식 인사를 청할 것이다. "(사과나무??)
▲ 붉은 꽃 무슨 꽃이 이리도 고울꼬? 내가 주문하고 사온 나무이지만 그 이름을 몰라 정식으로 인사를 못 나누고 눈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그대가 열매로 보여주기 전에 내가 먼저 그대의 정체를 알아내 정식 인사를 청할 것이다. "(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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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 시 나의 점심이다. 무슨 거짓말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당뇨병과 그 합병증을 앓아 본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마와 밤은 고정 메뉴이고 두룹과 쑥국은 시랑헌 특식이다
▲ 점심식사 평상 시 나의 점심이다. 무슨 거짓말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당뇨병과 그 합병증을 앓아 본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마와 밤은 고정 메뉴이고 두룹과 쑥국은 시랑헌 특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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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점심시간이다. 먹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면서 한편으로는 별것도 아닌것 같다. 생명을 보전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먹는 음식을 돈 액수로 따져보면 이것을 먹으려고 이러한 일을 하는가하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산골에서 살자면 많은 돈보다 무엇에나 걸리지 않은 마음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두룹은 일단 싹이트면 그 성장 속도가 빨라 일주일이 지나면 줄기가 너무 단단해져 먹을 수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일년에 두차례 순을 딴다고 하지만 우리는 한 차례도 두룹나무에게 미안하고 황송한 마음으로 따서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다.
▲ 두룹 두룹은 일단 싹이트면 그 성장 속도가 빨라 일주일이 지나면 줄기가 너무 단단해져 먹을 수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일년에 두차례 순을 딴다고 하지만 우리는 한 차례도 두룹나무에게 미안하고 황송한 마음으로 따서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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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농부는 아무 쓸모가 없다. 덮고있는 마른 풀들을 걷어주니까 풀섶에 묻힌 철쭉들이 심호흡을 한다. 그 모습을 드러내며 반가운 인사를 전해온다
▲ 석축과 철쭉 게으른 농부는 아무 쓸모가 없다. 덮고있는 마른 풀들을 걷어주니까 풀섶에 묻힌 철쭉들이 심호흡을 한다. 그 모습을 드러내며 반가운 인사를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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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일을 끝내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발길은 언제나 아쉽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있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릴 수 있다.
▲ 또 하루의 일을 끝내야 하는 시랑헌 주말 일을 끝내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발길은 언제나 아쉽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있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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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들은 번식하여 가정을 이루고자할 때 집을 짓는다는데, 인간이 예외인지 아니면 내가 예외인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내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일치되는 삶을 살 수 있는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시랑헌 창고에는 내가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본집과 작업실을 지을 때 쓸 목재가 서서히 건조되어 가고 있다.


태그:#전원생활, #시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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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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