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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을 이끄는 정세균 의장(왼쪽)과 장영달 원내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세상사를 너무 팍팍하게 볼 필요는 없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하면 얼추 이해되는 대목이 눈에 띄는 법이다.

사학법 재개정 문제가 그렇다. 정치란 어차피 주고받기를 업으로 하는 영역이다. 사학법을 주고 국민연금법과 로스쿨법을 얻겠다는 데에야 원칙론을 마냥 들이대기도 힘들다. 국정을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고뇌어린 결단을 내린 것이라면, 원칙을 거두고 여건을 헤아리는 자세도 필요하다.

분명히 하자. 역지사지의 자세는 상대가 진정성과 성실성을 보였을 때에만 성립된다. 이것을 기준으로 묻자.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국정에 성실히 임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 결단을 내린 건가?

'위장 이혼' 자인하는 나약한 열린우리당

그렇게 보기 힘든 구석이 있다. 먼저 열린우리당.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보도를 종합하면 '딜'을 주도한 곳은 청와대다. 지난 14일 개헌 발의를 유보한 뒤 각 당 원내대표(또는 의장 포함)를 청와대로 불러 사학법 재개정 협상을 직접 중재하려 했지만, 열린우리당이 거부했다고 한다.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경향신문>)이라고 한다. 그 후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과 한덕수 총리가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국회 교육위원들에게 '사학법 후퇴'를 종용(<한겨레>)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종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어차피 맥락은 바뀔 게 없다. 청와대의 설명은 '종용'이 아니라 '원만한 처리'를 '요청'했다는 것이지만, 그 '원만한 처리'가 사실상 '사학법 후퇴'와 연결될 수밖에 없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확인되는 게 있다. 열린우리당(지도부)의 나약한 기회주의다. 청와대의 요청에 따르면서도 공개된 장소에 나와 '조정당하는' 것을 꺼려하는 모습엔 허장성세의 흔적이 배어있다. 이왕 후퇴할 것이라면 '밀려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결단한 것처럼 보이려는 쇼맨십이 깔려있다.

하나 더 있다. 지위다.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함으로써 열린우리당은 여당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열린우리당이 바라던 바였고, 그래서 열린우리당 스스로 제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당내 반발기류보다 청와대의 설득과 압박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을 여지없이 노출했다. '위장 이혼'이란 세간의 혹평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새삼, 스스로 확인했다.

'용돈연금' 비판 자초한 청와대

▲ 노무현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음 청와대.

나름대로 일관성은 있다. 주요 국정과제였던 국민연금법과 로스쿨법이 국회의 눈치 보기와 이익단체의 저항에 막혀 장기표류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 했다. 전부를 취할 수 없으면 '살을 주고 뼈를 갉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차기정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국정을 매듭짓기 위해선 '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형상으로는 그렇다. 군살을 쏙 뺀 S라인 처방 같다. 하지만 아니다. 옷을 한 겹만 벗기면 다른 체형이 나타난다. A라인이다.

각설하고 하나만 비교하자. 국민연금법이다. 애초 정부안은 보험료율을 9%에서 12.9%로 올리고 급여율은 평균소득의 60%에서 50%로 낮추는 것이었다. 이 안이 '딜' 과정에서 보험료율은 그대로, 급여율은 40%로 낮추는 것으로 조정됐다.

산수 수준에서 계산한다면 무리인 것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 재정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국민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후를 보장한다는 국민연금 취지를 무색케 하는 조정이다. 급여율을 40%로 낮추면, 월 180만원을 버는 근로소득자가 20년 후에 받는 돈이 36만원으로 줄어든다. 당초 급여율에선 54만원을 받게 돼 있다. 우리나라 한 달 최저생계비 43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용돈연금'이란 말이 나온다.

이걸 두고 국정 매듭짓기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쪽에선 좋게 말해 실적 쌓기고 나쁘게 말해 한건주의라고 한다.

겉치장에만 신경 쓰는 여권

이런 혹평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내년 상반기에 국민연금 재정을 재계산하도록 돼 있다. 이 계산 결과에 따라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급여율은 재조정될 수도 있다. 어차피 1년 뒤에 재계산돼야 할 게 국민연금 재정이고 보험료·급여율이라면, 그리고 국민연금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는 개정이라면 차라리 차기 정부, 차기 국회로 넘겨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보험료율과 급여율을 하루 빨리 조정하지 않으면 앉은 자리에서 국민연금을 까먹는데 어떻게 한가한 얘기를 하느냐는 말도 있지만, 그건 국민연금만 놓고 하는 얘기다. 정말로 '플러스 마이너스 셈법'을 하려면 사학법 재개정과의 함수관계를 놓고 하는 게 맞다. 간단히 말해 사학법을 내주고서라도 움켜쥘 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면, 역지사지의 자세로 헤아리겠지만 국민연금법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A라인이란 말이 적절하다. 얼굴은 번지르르한데 밑으로 내려갈수록 복부비만 증세를 보인다. 자칫하다간 국민연금과 사학법을 모두 삼겹살을 만들게 할 수 있다.

닮았다. 열린우리당이나 청와대 모두 '모양새'에 신경 쓴다. 속살이 아니라 피부 미용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다.

태그:#사학법, #국민연금법,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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