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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김홍업 후보가 개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로 앞서 나가자 무안읍 사무소에서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형민우

줄기는 두 개다. 자승자박과 전략부재다. 한나라당의 재보선 참패 이유를 설명하는 두 개의 줄기다.

자승자박을 강조하는 이들은 공천비리를 대표사례로 꼽는다. 대세론에 젖어 구태를 반복한 게 결정적 패인이라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다. 지난해 5·31지방선거를 되돌아보면 쉽게 확인된다. 당시 한나라당의 공천비리는 도를 넘었다. 현역 중진의원들이 연루된 공천비리까지 터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전례가 없는 압승을 거뒀다. 공천비리는 곁가지다. 그 자체만으로는 재보선 참패 이유를 구성하지 못한다.

전략부재를 강조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4·25재보선의 특징을 '무노'(無盧)로 규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실종된 선거, 즉 정권심판론이 먹혀들지 않는 선거였는데도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비한나라당 세력에 바친 보양식

흘려버릴 얘기가 아니다. 바로 이 전략부재 때문에 자승자박의 강도가 세졌다. 비한나라당 세력이 자신들을 에워싸는데도 반사이익만 믿고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 선거구도가 정권 심판이 아니라 한나라당 심판으로 짜여지는데도 기민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그 결과 1년 전만 해도 큰 변수가 되지 못했던 공천비리를 스스로 키워버렸다. 비한나라당 세력에게 보양식을 바친 셈이다.

재보선은 이미 끝났다. 손 흔든다고 버스가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문제는 다음, 즉 대선이다. 한나라당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조선일보>가 제시한 게 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12월 대선에서 어떻게 하면 선거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안은 셈"이라고 했다.

단순명료한 전망 같다. '무노' 때문에 졌으니까 '반노' 전선을 짜는 건 시급하고도 요긴한 과제 같다. 논리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대선 성격이 그렇다. '지는 해'에 대한 심판보다는 '뜨는 해'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게 우리 대선이다. 정책에 대한 평가보다는 인물에 대한 선호가 투표결과에 더 많이 반영되는 게 역대 대선이었다.

다른 요인도 있다. 설령 대선이 정권 심판, 정책 평가로 간다 해도 한나라당이 '반노' 전선을 짜기가 용이하지 않다. 요즘처럼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궁합을 잘 맞춘 적이 없다. 한미FTA에 대해서는 거의 '찰떡궁합'이고, 사학법이나 국민연금법을 놓고 주고받기를 하고 있다. 대북정책은 진통이 있긴 하지만 한나라당 스스로 바꿀 채비를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한나라당은 어디서 '반노' 동력을 끌어올 수 있을까?

닭 쫓던 개가 될 수 있다. 범여권은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이게 성사되면 열린우리당은 사라진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도 엷어진다. 범여권은 지붕 위로 폴짝 뛰어오르고 한나라당은 그 지붕만 쳐다보는 형국이 연출될 수 있다. 한나라당으로선 '공성'이 아니라 '수성'을 신경 써야 할 처지다.

한나라당 30% 득표율이 시사하는 것

▲ 한나라당 강재섭대표 등 지도부가 25일 밤 당사에서 재보선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결과가 참패로 나타나자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한나라당이 역대 재보선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투표층 쏠림현상이었다. 보수성향의 장·노년층이 재보선의 주된 투표층이었다. 이번 4·25재보선도 예외가 아니다. 선관위가 잠정집계한 투표율은 27.9%다. 주로 어느 연령층이 투표에 참여했는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

이런 재보선에서조차 한나라당은 평균 30%대의 득표율에 그쳤다. 정당지지율 50%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50%의 정당지지율이 '좋아서'가 아니라 '미워서'에 기인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수치다. 동시에 '미워서' 등 돌린 대상이 없어질 경우 유권자가 언제든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음을 뜻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장·노년층이 이러할진대 중·청년층이야 오죽하겠느냐는 말이 절로 나올 법 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당내 경선이 과열되고, 그에 비례해 도덕성 시비가 크게 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 한 주자가 대선 본선에 나선다 해도 또 다시 도덕성 검증에 휘말릴 것이 자명하다. 정권심판은 고사하고 후보심판론을 방어하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비한나라당 구도 하에서 도덕성 문제가 격전거리가 되는 대선, 한나라당으로선 재앙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웃었다. 재보선 결과를 접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여긴 걸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단견이다. 경기 화성을 제외하고는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 선거구 어느 곳에서도 후보를 내지 못한 참혹한 처지만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4·25재보선을 비한나라당 세력의 승리라 하더라도 그 열매가 열린우리당에 돌아가는 건 아니다.

열린우리당, 남의 불행에 미소지을 때?

▲ 25일 치러진 대전 서을 지역 보궐선거 개표결과 꾸준히 앞서나가는 국민중심당 심대평후보가 승리를 확신한 듯 주요 당직자들과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준호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연합공천이라고 하지만 그건 그들만의 얘기다. 엄밀히 말하면 대전서을과 전남 무안신안의 승리는 국민중심당과 민주당의 승리다.

복잡해진다. 두 당이 4·25재보선 결과에 고무돼 지역 패권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다할 공산이 크다. 범여권 통합을 이룬다 해도 그건 최종단계의 얘기다. 마지막 과실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4·25재보선 결과를 가솔린 삼아 각개약진의 가속페달을 밟는 게 유리하다.

열린우리당이 통합의 주도권을 쥐기는커녕 오히려 위축된 상태에서 다른 통합대상이 각개약진 속도를 올리면 어떤 현상이 빚어질까?

일각에선 후보 중심의 통합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열린우리당이 4·25재보선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게 확인됐으므로 열린우리당을 축으로 하는 세력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따라서 후보 중심의 통합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럴까? 분명히 하자. 유력한 범여권 통합주자로 꼽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4·25재보선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비한나라당 후보 지원유세조차 하지 않았다. 지분이 없다. 4·25재보선의 과실을 나누자며 몸을 들이밀 여지가 없다.

오히려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은 지역 지분을 새삼 확인했다고 자평한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정당별·지역별 각개약진은 불가피하다.

각개약진을 하더라도 최종 단계에서 대통합을 이뤄내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각개약진 과정에서 지역기반을 다지면 그게 곧 통합후보의 지지기반이 되니까 나쁠 게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대통합, 근거 없는 낙관론

공학적으로 보면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합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대통합을 이루지 못하면 공멸이니까 어떻게든 통합 후보를 낼 것이란 낙관적 기대를 깔고 있다.

하지만 세상사엔 변수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누르는 만큼 튀어나오는 법이다. 지역주의를 강화하면 할수록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게 돼 있다. 그렇게 공생해서 뭣 하느냐는 주장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지역주의 부활에 반대하는 세력이 독자노선을 선포할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다.

이러면 대선 구도는 복잡해진다. 한나라당에 비한나라당이 맞서고 여기에 반지역주의 세력이 제3지대를 형성하는 다중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

비한나라당 세력 결집이 한나라당에게 재앙이라면 반지역주의 세력 태동은 비한나라당 세력에게 악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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