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나라당이 어려운가 보다. 다수의 언론이 한나라당의 '위기'를 진단한다. 자가 진단도 있다. 전여옥 최고위원은 "싸울 의지도, 스피드도 없는 초식공룡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위기상황'이다.

이유가 뭘까? 대개가 지도력 부재를 꼽는다. 그래서 강재섭 대표에게 눈길을 보낸다.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등', 관리형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표적인 위기징후로 거론되는 4·25 재보선과 관련해 원칙없는 공천을 한 점과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합동유세를 성사시키지 못한 점 등을 지적한다. 선거법 관련 '황당법안'과 대북정책 혼선을 제어하지 못한 점도 거론한다. 여기에 지역구 유권자의 선거법 위반 과태료를 대납한 점도 악재로 꼽는다.

나눠 볼 필요가 있다. 과태료 대납이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강 대표측의 명백한 잘못이지만 나머지 사안은 다르다. 강 대표로서도 속수무책인 면이 있다.

합동유세나 정책혼선엔 같은 동인이 작용한다. 바로 대선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합동유세를 거부하는 이유는 뻔하다. 단순한 재보선 지원유세가 아니다. 자신의 대선유세를 겸하고 있다. 성격이 이러할진대 합동유세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정책혼선도 마찬가지다. 선거법 개정이나 대북정책기조 조정은 대선판을 자기 당(후보)에게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한 시도다. 그 결과에 따라 정책변경을 주도한 의원은 특정 주자의 '공신'이 될 수 있다. 과열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안을 두고 강재섭 대표의 리더십을 운위하는 건 과하다. 강 대표가 '관리형'으로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관리형'에 걸맞는 '관리 리더십'이라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 하지만 이 또한 과하다.

원인은 '한 지붕 두 가족'

<한국일보>가 제대로 전했다. "대선주자들의 힘겨루기"가 문제다. "의원들은 지도부보다 대선주자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고 줄서기에 신경이 곤두 서 있"는 지도부는 "공천은 고사하고 사고 지구당의 위원장 하나 마음대로 정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하다.

문제의 본질은 '한 지붕 두 가족'이다. '가장'도 아닌 사람이 이미 쪼개져 반목하는 집안의 화목을 이끌어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의 위기 단계다.

'새우꼴'이 된 강재섭 대표야 그렇다 치자. 새우를 가운데 놓고 마구 비벼대는 두 고래는 어떻게 될까?

어느 한쪽은 승자가 되고 어느 한쪽은 패자가 된다. 8월이 되면 갈라질 운명이다. 이 때 패배한 고래는 어떻게 처신할까?

두 사람 모두 경선결과에 승복한다고 했다. 하지만 승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백의종군도 있고 사보타지도 있다.

문제는 승복 행위가 사보타지로 나타나는 경우다. 경선에서 패배한 사람이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고 뒷짐 지는 경우다. 이러면 한나라당의 '총력전'은 물건너 간다.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나아가 두 캠프간의 감정대립이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한 지붕 두 가족'은 '불구대천'의 관계로 악화될 수 있다.

감정만이 아니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승자 독식의 대통령제 하에선 대통령 당선자의 경쟁자였던 사람은 기가 눌리고 세가 줄게 돼 있다. 혹여 자신의 경쟁자였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앞날이 캄캄해진다.

▲ 지난 2월 22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란히 앉아 각각 다른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더 큰 위기는 대선 후보 경선 뒤

한나라당 의원모임인 '희망모임'이 내놓은 제안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당 분열을 막기 위해 경선에서의 1위는 후보가 되고, 2위는 자동으로 당 대표가 되도록 당헌을 개정하자고 했다.

당내에서 "전당대회에서 뽑힌 대표가 있는데 어떻게 황당한 주장을 하느냐"는 비판이 나와 해프닝성 주장으로 끝났지만 희망모임의 제안엔 심각한 고민이 깔려있다. 스스로 밝힌대로 당 분열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는 고민이다.

충분히 근거가 있는 고민이다. 대통령 당선자의 경쟁자가 반대 정파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정파가 와해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같은 당 안의 경쟁자는 경우가 다르다. 승자가 독식하는 게 행정권력만이 아니다. 정당권력도 독식할 게 분명하다. 그럼 경쟁자의 존립기반은 크게 위축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뒤늦게라도 경선 승리자 캠프의 끝줄이라도 차지해 보신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건 평의원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경선 패배자는 위상이 다르다.

길은 두 갈래다. 깨끗이 마음 비우고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백의종군하는 길이 있고, 경쟁자의 대선 패배에 대비하는 길이 있다. 전자는 실리를 버리고 명예를 얻는 길이고, 후자는 오욕을 감수하고 생명력을 지속하는 길이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다. 선택할 때도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선택 여하에 따라 한나라당에 '진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태그:#정치, #한나라당, #경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