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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받았습니다. 사소한 친절에 과분한 선물을,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입니다. 그림책이라 하면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 그림책을 열면 당황하게 됩니다. 강이나 연못 바다에 있어야 할 물고기가 공원에 있어서?

동물들이 옷을 입고 말을 하는 게 다반사인 그림책 세계에서 빨간 물고기가 공원을 헤엄치는 거야 그리 이상할 일이 아니죠. 그보다는 빨간 물고리를 따라 공원으로 들어가보니 양면을 가득 메운 공원 그림에 글이 한 줄도 없다는 사실에 잠시 봐야 하나 하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
ⓒ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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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우리가 그림책을 '보는' 방식이라는 게 대부분 몇 줄이 안 되도 '글'의 지시에 따라 그림을 이해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에는 글이 한 줄도 없어요.

아니, 사실은 없는 게 아니라 순서가 바뀐 겁니다. 그림을 다 보고나면 그때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는 차치하고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이끄는 건 '그림'입니다.

그것도 276×276㎜ 커다란 판형 만큼이나 너른 공원에 가득한 사람들로 인해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보통 그림책에서는 메인 스토리를 이끄는 그림이 있고, 그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배경'이 있는데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에는 모든 그림이 '평등'합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책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당신에게 '전경'으로 다가온 이야기는? 
 
 루빈의 컵
 루빈의 컵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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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지금 여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가 '전경'으로 떠오른다고 합니다. 많이 알려진 루빈의 컵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즉 지금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각자 이 그림에서 '컵'이 보일 수도 있고, 사람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목된 대상 이외의 것은 '배경'이 되는 것이지요.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이런 게슈탈트 심리학의 '전경'과 '배경'으로 다가가면 어떨까요? 공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보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그림책을 펼쳤을 때 우선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 그림책을 받았을 때 제 개인적으로 아직 힘들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것들을 집어먹으며 저를 세상 속으로 억지로라도 밀어넣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책장을 펼쳤을 때 저의 눈을 사로잡은 건 가장 왼쪽 구석진 곳에 눈을 내리깔고 어깨가 축 처진 채 걸어가던 제 또래의 여성이었습니다.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
ⓒ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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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에도 꽤 지쳐보이던 이 여성, 아니나 다를까, 다음 장에서 머리가 빙글빙글 어지러운 듯 하더니 몇 장을 넘기자 그만 가로등에 기대어 쓰러져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그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지 그냥 걸음을 옮깁니다. 그 사람들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그녀가 나인듯 안타까워하면서 책장을 넘기는데 그녀 또래의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그녀를 부축해 세웁니다. 다행이다 했는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가로등에 기대어 정신줄을 놓을 거 같던 그녀가 그녀를 두고 떠나는 남자를 향해 엄지와 검지로 휘파람을 불어댑니다. 그러더니 언제 쓰러졌냐는 듯이 그를 향해 뛰어가고 그와 함께 뛰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아주 짧지만 기적적인 이 상황은 뒤에 이어진 <갑자기 늙었다는 기분이 들다>의 마그다 이야기예요.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자녀들은 독립하고 남편과 사별한 마그다는 장을 볼 때만 밖으로 나온답니다.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 산책하는 연인들을 보면 더 외로워져서 그곳을 지나치지 않았던 그녀가 공원 둘레길을 걷다 어지러워 중심을 잃고 쓰러진 거지요.

그런 마그다의 이야기를 읽자 왜 제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구석진 곳에 있는 그녀에게 눈길이 갔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물론 이어지는 이야기는 '판타지적 로망스'입니다. 해피엔딩이지요. 그 '해피엔딩'의 스토리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놓아버렸던 늙은 여인이 활기차게 뛰어가는 엔딩은 그 자체로 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에 나와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선물로 준 '인연'처럼 그 희망은 '사실'이 되어 여기에서 여전히 씩씩하게 글을 쓰는 저를 있게 했습니다.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
ⓒ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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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가 마음에 들어오나요? 나무에 기대어 앉은 장발의 남자? 비가 오는데 우산을 들고도 비를 맞는 여성? 축구를 하는 무리의 아이들 뒤에서 부러운 듯 바라보는 아이. 벤치에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여성. 간식을 먹는 손주를 지켜보는 할머니. 홀로 연주하는 음악가. 이외에도 공원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림책의 반 정도의 페이지에 걸쳐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물론 그림이 끝난 후에 앞서 마그다의 이야기처럼 곤잘로 모우레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스페인의 그림책 작가인 곤잘로 모우레는 아프리카 난민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에는 에콰도르에서 이민온 소년, 스웨덴에서 영감을 찾아 이곳으로 온 시인 그리고 키에프에서 온 플루티스트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방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몽상적이고, 때로는 따스한 사람들의 인연이 사람사는 세상의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꼭 그림을 통해 머릿속으로 저마다 그려본 이야기가 곤잘로 모우레의 이야기와 통할 필요는 없을 거에요. 아마도 작가 역시 그걸 의도했다면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겠지요. 이야기가 그림의 뒤에 자리한다는 건, 그림을 통해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요. 

공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아온 이야기, 그게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의 '전경'이 아닐까 합니다.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로 인해 연말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보자던 약속은 취소되고, 전시회나 음악회도 무산되었고, 가게들은 아예 문을 닫기도 합니다. 다시 '나'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거리에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이처럼 처량맞을 때가 있었던 가요. 

늘 한 해가 마무리될 때면 흥청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라는 '충고'가 방송에서 전해졌지요. 올해는 그 '충고'를 제대로 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 됐습니다. 흥청거리던 연말 약속과 모임에 자신을 묻은 채 보내던 송년의 시간,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들여다 보며 보낼 수밖에 없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공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이야기처럼 스산한 연말 그림책을 보며 지금 자신에게 다가온 '전경'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면 어떨까요? 지금 여기서 무엇이 나의 마음을 울리는지, 내 마음은 무엇을 향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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