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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들이 이제 두 번째 월급을 탔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월급을 받은 만큼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아들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대부분은 '관계'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위로는 상무님으로부터 실습하러 온 '인턴 사원'까지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 직장인 만큼 그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관계'의 모양들이 등장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어디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만들어지고, 그 다리는 사람과 사람을 함께 하도록하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고민'을 안기기도 한다.

늦은 밤 아들과 함께 두런두런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도달하게 되었던, 그 관계에 대한 우문현답을 해준 그림책이 있다.
 
 친구가 필요하니?
 친구가 필요하니?
ⓒ 벨 이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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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센 리하르트

<친구가 필요하니?>는 지금처럼 단행본 위주가 아니라 전집으로 그림책이 팔리던 시절부터 인기가 있었던 독일의 그림책 작가 헬메 하이네의 그림책이다. 그런데 분명 제목은 친구가 필요하냐고 묻는데, 정작 이야기는 '까마귀 엄마'로 부터 시작된다.
'알이란 게 다 똑같지 뭐.'

팔짱을 끼고 계란 한 판을 들여다보는 예비 까마귀 엄마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 엄마 화창한 일요일 자신의 알을 낳고서는 생각이 바뀐다. 자신이 낳은 알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아이를 낳아본 엄마라면 다 공감할 장면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아직 핏기도 사라지지 않은 붉은 갓난쟁이가 엄마에게는 신생아실 최고의 미남, 미녀로 보이기가 십상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매일 매일 씻겨도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는 작은 손과 발이 하도 예뻐서 자다가 일어나 이불을 들춰 들여다 보곤 했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부터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 속에서 나온 아이 리하르트에게 엄마 까마귀는 말한다.
 
'리하르트, 리하르트, 너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까마귀가 될 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까마귀가 되는 이 비논리적인 논리의 전개, 가장 이쁘고 귀여웠던 아이가 자라면 가장 공부를 잘해야 하는 논리랑 뭐가 다르겠는가.

그런데 엄마가 세계의 전부였던 어린 리하르트에게 그런 엄마 말은 진리였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까마귀가 되라는 엄마의 독려에 힘입어 리하르트는 자신이 독수리와 소를 때려눕히는 상상을 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정말 힘센 까마귀가 되어 자신의 날개 위에 까마귀 다섯 마리를 올려놓기도 하고 찾아온 까마귀들을 때려눕혔다. 그런데 힘센 까마귀가 됐는데 정작 친구들은 리하르트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늙고 새하얀 까마귀가 나타나서 자신이 힘센 까마귀라고 자랑하는 리하르트에게 말한다.
 
'너와 싸워 이기는 자, 그가 너의 친구이다. 리하르트와 리하르트를 싸우게 하라.'

너랑 싸워 이기는 자가 네 친구

리하르트와 리하르트를 싸우게 하라니, 리하르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까마귀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이름의 엄마의 생각이 곧 리하르트의 '사고 방식'이 된 것이다. 이걸 대상 관계 이론에서 '내적 표상'이라고 한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엄마의 생각이 리하르트에게 내재화된 것이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상대방이 생각하는 '나'를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 상대방의 생각을 거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어릴 적에 늘 '덜렁거린다'고 야단을 맞았었다. 뭘 해도 꼼꼼하지 못하고 덜렁거리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내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다. 20살이 넘도록 그런가 보다 하고 자랐다. 덜렁거리기는커녕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꼼꼼하게 집착하는 면조차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몇 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어른이 될 때까지 주변에서 나를 규정한 '내적 표상'에 나 자신을 가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부모들이 자신을 바라본 '표상'에 자신을 가둬두고 살아간다. 늙고 하얀 까마귀가 자신과 자신이 싸우도록 하라는 말은 엄마가 리하르트를 가둔 규정을 깨고 자신을 객관화시키라는 말일 것이다. 하얀 까마귀의 말은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오라'는 '정언'과도 통한다.

리하르트와 리하르트와 싸운다? 그런데 한 사람의 리하르트가 엄마를 내적 표상으로 가진 리하르트라면 또 다른 리하르트는 누구일까? 그림책에서 보면 리하르트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부분은 하얀 선으로만 그려진다. 그런데 리하르트에게 나타난 하얀 까마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하얀 까마귀는 누구였을까? 리하르트 내면의 소리가 하얀 까마귀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너와 싸워 이기는 자가 너의 친구라는 말은 이제 네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너의 선택에 달렸다는 말이 아닐까. 엄마는 리하르트에게 제일 힘센 까마귀, 즉 1등이 되라고 했지만 리하르트는 친구가 필요했다. 리하르트와 리하르트가 싸우는 과정은 바로 그 리하르트가 원하는 진짜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세상 살이 우리는 늘 '관계'로 인해 힘들다. 하지만 정말 '그들'로 인해 힘든 것일까? 어쩌면 우리도 리하르트처럼 아직 나와 나의 싸움이 끝나지 않아서가 아닐까. 내가 되고 싶은 리하르트는 어떤 모습일까? 친구가 필요하다면 우선 내 마음부터 확인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친구가 필요하니?

헬메 하이네 (지은이), 김서정 (옮긴이),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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