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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갑니다. 매일 매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이 넘는 상황에서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의 여유조차 갖기 힘들 정도로 위축된 시절입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한없이 작아지는 대신 우리 자신을 잘 돌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필요합니다.
 
 미스 럼피우스
 미스 럼피우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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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이 <미스 럼피우스>라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미스 럼피우스에게도 한때는 앨리스라고 불리우는 아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닷가 도시에서 살던 앨리스의 할아버지는 뱃머리 장식품이나 나무 인형을 깎는 예술가였답니다.

어린 앨리스는 할아버지를 도와 곧잘 색을 칠하는 일도 했지요. 그리곤 저녁 때면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머나먼 세상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상 이야기를 들은 앨리스는 나도 어른이 되면 아주 먼 곳으로 가보겠다고 했지요.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네가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구나.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 
"알겠어요."
 
 미스 럼피우스
 미스 럼피우스
ⓒ 시공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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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대답은 했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어요. 훌쩍 자란 앨리스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듯이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일도 하고 여행도 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미스 럼피우스'가 된 앨리스는 바닷가 고향 마을로 돌아옵니다. 바닷가 근처에 작은 집을 구하고 꽃씨를 뿌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미스 럼피우스는 여전히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라시던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이듬해 봄 미스 럼피우스는 자신이 뿌린 꽃씨가 아름다운 루핀 꽃을 피워낸 것을 발견했어요. 산책을 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 푸른, 보라, 장밋빛의 루핀 꽃이 피어있는 걸 발견한 럼피우스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엄청 많은 꽃씨를 사서 마을 곳곳에 뿌리고 다닙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음 해 봄 마을의 들판에도, 언덕에도 온통 루핀 꽃으로 가득 찼습니다. 정신 나간 늙은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뿌렸던 꽃씨가 마을을 아름답게 만든 것입니다. 꽃을 보고 아이들이 그녀를 찾아옵니다. 찾아온 아이들에게 그녀는 자신이 경험했던 저 먼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당부합니다. 
 
 미스 럼피우스
 미스 럼피우스
ⓒ 시공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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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아름다워지는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 어떤가요? 그저 꽃씨를 뿌렸을 뿐인데, 한 해가 지나서 마을이 아름다워졌지요. 저는 씨를 뿌리고 다니는 럼피우스를 보면서 올 한 해 이른바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정부에서는 정부 시책의 성공 사례인 양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자신의 일상보다 세상의 평안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꽃씨를 뿌리는 마음' 덕분 아니었을까요.

꽃씨를 뿌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어찌 보면 쉬워보입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결과를 '마음'만으로 지속해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나무를 심는 사람>이 오래도록 베스트셀러였던 이유도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숲을 기원하며 나무를 심는 사람의 '마음'이 헤아려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내가 욕망하는 것을 잠시 접어두고, 모두를 위해 자제하고 조심하는 생활을 유지해야 합니다. 꽃씨를 심거나, 나무를 심었던 그 심정처럼, 내 마음의 중심을 '나'보다 '우리'에게 놓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퍼지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솔선수범 자신들이 먼저 조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마스크'를 끼는 데 충실했고요. 사회적 격리라는 이변에도 질서 있게 발 맞추었습니다. 외국에서 벌어지던 갖가지 해프닝과 심지어는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환자들이 많이 발생한 곳에 의료진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접어두고 달려가 의료 봉사를 했습니다. 병실이 부족해 대기를 해야하는 상황에서도 끈기있게 기다렸습니다. 외국을 갔다 돌아온 사람이 전합니다. 공항에서부터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대응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민주 시민 사회'로 성장했다는 말이 실감난다고요.

'나 한 사람 쯤이야' 대신, '나부터라도'란 생각을 하고 저마다 도리에 충실했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한동안 외국과 달리 꽤 안정적인 시절을 누렸습니다.  

그럼에도 역병은 하늘의 일인지라,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확진자의 증가로 인해 한국은 다시 한번 중요한 기로에 섰습니다. 3단계로 갈 것인가 고민하는 때, 다들 마음이 위축된 것 같습니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기 위해 들른 카페는 과거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습니다. 그 너른 공간의 테이블 위에는 의자들이 올려져 있고, 그 빈 공간을 사장님이 키우는 유기견이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장사가 잘 되던 카페는 이렇게 개점 휴업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 그 주변 '브런치' 카페는 '식당'이라 손님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장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고 억울할 만도 한 상황,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담담하게 커피를 건넵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조용히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댓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평안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강남의 거리는 해가 저물 무렵이면 '이곳이 그 휘황찬란했던 거리인가' 싶게 인적이 드물어집니다. 연말 송년회는 취소되고, 공부 모임은 '줌'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퐁당퐁당 무려 1년째 제가 하고 있는 공부는 해를 넘길 듯합니다. 

미스 럼피우스가 뿌린 꽃씨가 아름다운 루핀 꽃으로 마을을 가득 채우기까지 기나긴 겨울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시절이 바로 그 땅 속의 꽃씨가 꽃으로 피어오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시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힘을 내서 꽃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이 혹독한 겨울을 견뎌보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미스 럼피우스

바버러 쿠니 (지은이), 우미경 (옮긴이), 시공주니어(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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