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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하염없이 가을비가 내리고 날이 개었다. 가벼운 책 한 권을 들고 거리로 나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며칠새 찬 바람도 많이 늘었다. 엷어진 가을햇살 속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따금 뒤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가을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여행 떠날 생각을 한다.

사실 올해도 몇 차례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년 벽두부터 건실한 목표를 세우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봄꽃의 기운이 감지되기가 무섭게 틈틈이 소풍을 계획했었다. 목표가 이뤄지면 지금의 일도 집어치울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으로 여름 휴가지의 소란스러움과 추석 명절의 혼잡함도 거뜬히 버텨냈다.

그런데 그만 오늘 오후 투명한 일몰의 시간에 목격하고야 말았다. 공중에 사선을 그으며 느리게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새 하나. 쿵 하고 가슴 속이 울린다. 성공적인 성과들이 있었고 능력을 인정받는 칭찬들도 들었지만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나는 행복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자문해야 할 계절이 된 것이다. 참으로 여행이 필요한 계절이다.

낯선 프랑스 이름의 꾸뻬씨도 그렇게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진 파리의 유능한 정신과 의사지만, 자신이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점점 지쳐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무엇이 불행하게 하는지 찾아볼 작정이다. 그리고 특별히 준비한 작은 수첩에 여행에서 발견한 행복에 관한 배움들을 적어가기로 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이지연 화가의 일러스트
▲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이지연 화가의 일러스트
ⓒ HAN DONG 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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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꾸뻬는 불치병으로 인해 자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만 하는 자밀라를 만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자신의 나라(아마도 이라크)와 가족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있어 행복은 '자신의 나라가 평화롭고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 또한 자신의 남동생들이 컸을 때 전쟁터에 죽으러 가지 않는 것, 그녀의 또 다른 여동생에게 좋은 남편과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것과 방학을 갖는 것,그리고 장차 그 아이들이 커서 의사나 변호사나 숲을 지키는 사람, 또는 예술가, 아니면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꾸뻬는 비행기에서 내려 행복에 관한 배움 하나를 수첩에 덧붙였다.

배움 17 _ 행복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일매일 되풀이해 주어지는 당연한 삶의 환경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들로 넘쳐나는 대도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배고플 때 음식을 먹고,병에 걸려 몸이 아프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그리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여러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고, 박물관과 수영장, 여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장소들도 있다. 우리가 사는 나라의가난한 사람들조차 전세계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는 않는다.

배움 20 _ 행복은 사물들을 보는 방식에 있다
배움 23 _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행복을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현재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십 년 전 국내에 소개된 <꾸뻬 씨의 행복 여행>(오래된미래, 2004)은 실제 파리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프랑수아 를로르(Francois Lelord)가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여러 개의 이야기 플롯이 교차하고 있어 단편 소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도의 명상센터에서 생활한 뒤 영화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 오유란씨가 류시화 시인의 소개로 번역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 청년 미술상을 수상한 화가 이지연씨의 밝고모던한 그림들이 책 중간중간에 쉼터를 마련해준다.

서문에서 를로르는 "어린 시절, 삶에 대한 너무도 많은 것들을 얌전히 기다리라고만 배워온 나같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나서는 여행이야말로 삶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이다"라고 적었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계획한 일들을 끝내야 한다는 다급함에서 벗어나, 열심히 일한 나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정직하게 내 자신과 나의 행복을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깊어가는 가을, 가벼운 마음으로 를로르의 책 한 권을 들고 나의 행복을 기록할 여행길에 오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기도 하니까.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오래된미래(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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