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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올리버는 <생이 끝났을 때>라는 시의 첫 두 연을 이렇게 쓰고 있다.

죽음이 찾아올 때
가을의 배고픈 곰처럼
죽음이 찾아와 지갑에서 반짝이는 동전들을 꺼내
나를 사고, 그 지갑을 닫을 때


나는 호기심과 경이로움에 차서
그 문으로 들어가리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 어둠의 오두막은.


작년 연말 한 해의 허물을 벗어놓을 무렵, 나는 정말 호기심에 찬 커다란 눈으로 '어둠의 오두막'에 들어서듯 <죽음>을 펼쳤다.

 EBS 다큐프라임 <죽음> 겉그림.
 EBS 다큐프라임 <죽음> 겉그림.
ⓒ 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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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접근하는 방식이야말로 그 문화가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고 생명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여준다. 성공과 소비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로부터 죽음을 잊게 함으로써 쾌락과 소비를 조장한다. 외면하고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죽음은 은폐되기 일쑤다. 그러나 죽음은 갑작스럽게 우리 삶 가운데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내가 가장 가까이 죽음에 다가섰던 것은 자동차 사고와 어머니 임종 때였다. 한 번은 이른 새벽, 한적한 시골 곡선길에서 균형을 잃은 차가 길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혼자 타고 있던 차는 두어 번 굴렀는데, 그 짧은 순간 정말이지 근사체험자들의 증언처럼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사람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구급차가 도착해 구겨진 차에서 나를 꺼냈을 땐, 안전벨트 덕분에 왼팔에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을 뿐 기적처럼 멀쩡했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날로부터 완전히 뒤바뀌었다.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미루지 말고 곧바로 시작해야겠다는 가득한 의욕이 실제로 실행되었다.

또 한 번은 영양제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간 어머니께서 점점 심장박동이 약해지진 일이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는 이미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계셨다. 나눠야 할 이야기도 많은데, 병원은 하루 두 번 30분 면회만을 허용했다. 이해되지 않았다.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정리해야 할 환자와 가족들이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끝까지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도, 우리는 그냥 산다. 시간을 보내고 세월을 보낸다. 하지만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면 그저 세월을 보내지만은 못한다.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 죽음을 앞둔 사람 곁을 지키는 것은 그저 세월을 흘려보내지 않는 방법을 알려 줄지도 모른다."
- <죽음>, p265

<죽음>은 국내 최초로 '죽음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노력으로 화제가 되었던 EBS 다큐프라임 <데스>를 텍스트로 담았다. <죽음>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들의 삶은 크게 변할 것이다. 사실 죽음은 매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사건이다. <죽음>은 '죽음 교육'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뼛속 깊이 새기고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인생수업>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도 죽음은 삶의 가장 마지막 순간이라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 벽두는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기 가장 좋은 때인지도 모른다. 죽음은 인생을 기념하고 축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메이 올리버의 <생이 끝났을 때>의 나머지 두 연으로 짧은 '어둠의 오두막' 이야기를 끝내야겠다.

그리고 주위 모든 것을 형제자매처럼 바라보리라.
각각의 생명을 하나의 꽃처럼
들에 핀 야생화처럼 모두 같으면서 서로 다른.


생이 끝났을 때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생애 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다고.
세상을 두 팔에 안은 신랑이었다고.
단지 이 세상을 방문한 것으로
생을 마치지는 않으리라.



EBS 다큐프라임 죽음 - 국내 최초, 죽음을 실험하다!

EBS <데스> 제작팀 지음, 책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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