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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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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열정만으로 성공할 순 없지만 젊음과 열정이 있기에 포기할 수는 없다!'

지난 2007년, 따사로운 봄햇살에 입맞춤을 하며 '광야'를 모토로 뉴욕에서 출발한 나는 근 2년간의 자전거 여정 끝에 볼리비아 라파스에 도착했고, 지금은 잠시 쉬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있다. 북미와 중미, 카리브해 섬나라들과 북아마존 밀림 지역, 그리고 남미에 이르기까지 23개국을 도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또 수많은 자연들의 기기묘묘한 광경에 압도되어 감읍하면서 내 마음의 키가 조금은 더 자랐음을 확신한다.

정글을 벗어나 만난 끝없는 평원
▲ 북부 아마존 지역 수리남 정글을 벗어나 만난 끝없는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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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모험 본능은 미지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내딛는 것에 주저하지 않게 했으며,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감사하고자 노력했던 태도는 폐가와 폐차, 경찰서 찬 바닥에서 잠자고, 현지인이 마시는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며 혈변까지 쏟아냈던 때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신념으로 굳어졌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하늘 아래 나를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마련해 놓은 신의 축복이라고 더없이 행복했던 밤을 보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아시스 마을인 와카치나에서 경찰관이 초대해 준 저녁 식사
▲ 페루에서의 달콤한 저녁 식사 오아시스 마을인 와카치나에서 경찰관이 초대해 준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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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근무 중인 소방대원들과 함께 보낸 멋진 밤
▲ 야구 강국 푸에르토리코에서 야근 근무 중인 소방대원들과 함께 보낸 멋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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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설렘과 청춘의 비전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길 위의 숨을 빨아들일 때마다 나에게 깊은 묵상거리를 던져주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던 수많은 얘기들.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가라, 자고 가라, 정 안 되면 내 도네이션(donation)이라도 성의로 받아 달라'라며 하나라도 더 못 챙겨줘서 안달 난 미국인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눈망울로 다가와서는 카메라며 캠코더를 훔쳐 달아났던 멕시코인들과 그 아픔 못지 않게 세계 최고 피라미드 유적지의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동시에 미치도록 식탐을 자극했던 멕시코, 더러운 구정물에서 수영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니카라과 아이들,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졌으면서도 외부인을 피해 산 속에서 숨어 사는 인디오들이 있는 파나마.

한국인의 후예들을 만날 수 있어 더 마음이 동했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운 섬 쿠바, 진흙쿠키 때문에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 했던 위험한 나라 아이티, 단지 몇 명의 노인들만이 지키고 있어 더욱 쓸쓸해 보였던 그러나 가장 아름다웠던 푸에르토리코 한인 이민교회에서 올린 예배, 도로 옆으로 수백 킬로미터 정글이 뻗어 있는 미지의 아마존 수리남과 가이아나, 나그네에 대한 우정을 아끼지 않았던 너무나 멋진 콜롬비아 경찰들, 컴퓨터를 비롯한 전 재산을 싹 쓸어가 나를 울렸던 에콰도르의 미운 사람들, 그리고 이름 없는 곳들에 예정 없는 만남으로 남겨진 가슴 시린 추억들…….

내 여행에는 맛집이 없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현지인들과 동일하게 퍽퍽한 빵 한 조각에 설탕 가득 넣은 커피 한 잔이면 이미 서로 삶을 나누는 대화는 무르익고 있었다. 또 내 여행에는 호텔이 없었다. 역시나 감사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흔쾌히 초대해 준 현지인은 멋쩍은 미소를 내게 보냈다.

그러고는 오래도록 묵혀 둔 낡은 천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 침대에 펴주며 하룻밤 식구로 받아주었다. 혹은 중남미 어디서나 호의적이었던 소방서의 도미토리 침대 위에서 노곤한 두 다리를 쭉 펴면 세상 모든 근심을 털어낼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라도 격하게 사랑할 수 있는 용기

진흙 쿠키로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가난하고 위험한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
▲ 아이티의 미소 진흙 쿠키로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가난하고 위험한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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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온 친구라며 동네방네 사람들 다 끌어 모아 명멸하는 별들 아래서 불을 피워가며 고기를 구워주던 투박한 손과 사진 한 장 찍자 하면 시간을 내어 꽃단장을 하지만 끝내 경직되고 말던 얼굴, 낯선 마을에 들어서면 경계하기보다 우르르 몰려들어 외로움에 찌든 마음에 청량감을 안겨주던 아이들, 모든 것을 잃고 우울해 있자니 사막 샌드보딩 무료투어로 또 유적지 무료 입장으로 나를 미치도록 감동시킨 사랑의 온기들. 이것이 내가 몇 번이고 도난의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중남미에 홀딱 반할 수밖에 없는 짜릿한 자전거 모험이었음이 명징하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그럼 하늘빛을 담은 카리브해 바다도, 젊은이들의 환상인 뉴욕의 맨해튼 거리도, 콜로니얼 도시의 결정체인 과나후아토나 안티구아도, 광대한 경외감을 안겨 주는 그랜드캐니언이나 티칼 유적마저도 아닌 나를 향한 누군가의 진심 어린 눈망울이라고 감히 답할 수 있는 난 그래서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낀다.

이렇게 자전거 세계일주 2년이 되어가면서 여행 스타일도 조금씩 변화돼 가고 있다. 극한 경쟁 사회 속에서 세상은 갈수록 이기적이 되어 가고 남을 배려하기 힘든 사회 구조를 만들어간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그런 이기적으로 오염된 양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고집스런 자아가 점점 깨지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회복되는 훈련을 여행을 통해 하고 있었다. 이성적 접근이 아닌 오로지 사랑의 소통으로만 고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 누구라도 격하게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음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인디오 학교에서 2박 3일을 같이 보낸 그 진한 감동의 여운
▲ 파나마 인디오 아이들 인디오 학교에서 2박 3일을 같이 보낸 그 진한 감동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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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작은 도시 교회에서 만난 천사 같은 아이들
▲ 메리 크리스마스! 페루 작은 도시 교회에서 만난 천사 같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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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중남미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며 단순히 여행 이외에 또 다른 봉사의 열정을 투자해야 함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한 신의 은총을 받은 나의 조그만 보답일 수 있다. 천사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을 가진 남미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늘 마음을 가다듬고 배우게 된다. 사랑받지 못함보다 사랑할 수 없음이 작고 작은 나의 마음을 더욱 작게 만드는 것이라고. 모든 사랑의 시작은 작은 배려에서 출발한다고…….

두 개의 심장으로 두 바퀴를 굴려가며 두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 동시에 나를 사랑하고 성장시켜 주는 변곡점이 얼마나 많은지, 세상은 그리고 나와 인연을 맺은 친구들은 소리없이 인생의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들을 통해 배려는 큰 결심 없이도 베풀 수가 있고, 친구가 되는 가장 빠른 행동이란 걸 깨달았다. 동시에 배려는 시각장애인에게도 보이고 청각장애인에게도 들리는 아름다운 언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을 보며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할 줄 알았던 그들의 멋과 순수함에 나는 이미 마음을 빼앗긴 여행 홀릭(중독자)이 되어 있다. 그러면서 가끔 그들을 추억할 때마다 실내가 건조하단 핑계로 안경을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곤 한다.

이제 4년, 4만5천km 남았다

베네수엘라 작은 도시 어느 골목에 앉아...
 베네수엘라 작은 도시 어느 골목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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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좌절하지 마라, 내 생애 최고의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 페루 북부 사막 지대 함부로 좌절하지 마라, 내 생애 최고의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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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잠시 누리고 있는 꿀맛 같은 쉼이 끝나면 이제 남은 남미 일정을 소화하고, 이번 여행의 최대 난코스인 아프리카에 도전한다. 특별히 서부 아프리카를 목표로 두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긴장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향한 이해와 존중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 한 번 더 마음의 끈을 여며본다.

이미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혈맥이 뛰놀고 있다. 위험하고 척박한 땅으로 달려갈 준비를 거치며 내가 자전거 세계일주를 결심하게 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동기 부여를 다시 한 번 조용히 읊조려 본다. '목숨을 걸 만한 일이 없는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자전거 세계일주의 도전은 한계를 가늠하는 또 다른 한계의 선을 넘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애마 로페카(Ropeca, 히브리어로 '위로하는 자')와 함께 하는 꿈과 도전. 미지의 아프리카는 내 생애 최고의 광야 여행길이 될 것이다. 뒤돌아보면 중남미가 그려지고, 내일을 꿈꾸면 아프리카가 상상되는 내 삶은 정녕 축복이리라. 쉼을 통해 나와 여행을 반성해 본 후 다시 출발한다. 2년, 2만km를 숨가쁘게 달려온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멋지게 그리고 아름답게 달려가기를 기도해 본다. 이제 4년, 4만5천km가 남았다.

▲ 쿠바 자전거 여행 2008년, 스무살 청년 준호와 함께 한 쿠바 자전거 횡단. 아바나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1100km 여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배경음악 - 꿈이 있는 자유 '하연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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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아프리카에 대한 여러 가지 준비와 쉼을 이유로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머무는 동안 여행 경험(강연)을 나누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저서,'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http://www.vision-trip.net



태그:#멕시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라이딩인아메리카,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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