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 그리고 싱그러운 바람
▲ 까마구에이 지방의 풍경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 그리고 싱그러운 바람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푸른 초장 위에 세워진 나무의 더욱 진한 푸르름과 투명수채화를 칠한 듯 맑고 연한 하늘이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외주물집에 사는 사람들도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정겹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조금 더 가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 너른 풀밭에서 수백 마리의 소 떼가 제 운명 알지 못한 채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쿠바에서 가장 많은 소고기를 생산해 내는 지역다운 풍경이다.

어른이 되어도 아직 유년기 때의 장난기를 다 못버린 탓일까. 소를 보면 꼭 해보는 게 있다. "음메~" 소를 향해 소리쳐 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 큰 눈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보는 게 여간 재밌는 것이 아니다. 보통은 시답잖게 여기는 소들이 가끔 장단을 맞춰 "음메~" 하고 맞받아 쳐주면 더 즐겁기도 하다. 태생이 시골 촌놈인 나에게는 이런 장면만큼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곳도 없다.

웃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 웃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생각보다 훨씬 이른 정오쯤에 까마구에이(Camaguey)에 도착했다. 비록 이 지방은 쿠바에서도 가장 시골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곳이지만 까마구에이 만큼은 쿠바에서 세 번째로 클 정도로 규모가 있는 도시다.

도시의 느낌은 잘 차려진 밥상마냥 한 마디로 정갈했다. 하지만 길은 달랐다. 시내에 들어서자 여행자의 숙소 회귀본능을 무력화시킬 만큼 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다. 지도가 있어도 헷갈릴 정도니 이럴 땐 바둑판 도로가 그립기만 하다.

숙소를 시내에서 가까운 산 후안 데 디오스(San Juan de Dios) 광장 쪽에 잡고 천천히 이 도시를 구경해 보기로 했다. 문 밖을 나서자 참 곱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노랑, 파랑, 빨강의 적절한 색을 입힌 건물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시선을 잡아끈다. 불과 두 세 블록을 사이에 두고 시간의 경계를 흐트려 놓은 듯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묘한 대조가 또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한 남자가 동상과 똑같은 포즈를 취한다.
▲ “동상의 모델은 나였다구!” 한 남자가 동상과 똑같은 포즈를 취한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Nuestra Senora 교회 앞에 위치해 있다. 공원 주변에 청동 조각들이 인상적이다.
▲ Ignacio Agramonte 공원 Nuestra Senora 교회 앞에 위치해 있다. 공원 주변에 청동 조각들이 인상적이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까마구에이의 자랑은 교회다. 좁은 골목길을 방황하듯 돌아다니면 깜짝깜짝 놀랄만큼 예쁜 교회 건물들이 곳곳에 자태를 드러낸다. 보통 스페인 식민지 풍의 획일적인 교회가 연이어 세워진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의 교회들은 외관부터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저마다의 건축 양식의 특징을 살려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주변 풍경도 사정에 맞는 테마로 꾸며 넉넉한 휴식을 취할 공간으로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다.

쿠바인들은 무척이나 유비쿼터스(Ubiquitous)적이다. 문화나 성격, 나이나 지위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접촉을 실행하고 마음에 접속할 수 있는 대화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 단지 자전거 여행자의 특별함 때문만은 아니다. 자전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호기심과 친근함은 첫 만남에서도 경계심을 풀어버리고 장시간 대화를 하게끔 만든다. 대수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크게 웃는 그들을 보면 나도 따라 웃지 아니할 수가 없다. 행복은 환경으로부터 얻어지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 그래서 쿠바가, 까마구에이가 참 좋다.

노란색이 인상적인 교회 주변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콜로니얼 건물들이 눈길을 끈다.
▲ 산 후안 광장 노란색이 인상적인 교회 주변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콜로니얼 건물들이 눈길을 끈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심플한 표지판
▲ 산 후안 광장 심플한 표지판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각각의 교회 주변마다 특징이 있는데 이곳은 길을 따라 광장 안쪽에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산 후안 광장 각각의 교회 주변마다 특징이 있는데 이곳은 길을 따라 광장 안쪽에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감정을 증폭시킬 만큼 깊은 인상을 안겨주는 곳은 아니지만 마음 속 아주 작은 근심의 찌꺼기까지 강탈해 가버릴 정도로 평화로운 도시의 전경으로는 단연 최고다. 이렇게 화사하고 푸근한 곳에서 불안과 걱정을 하는 자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고요한 평화를 최대한 누리기로 했다. 아무런 간섭도 또 신경써야 할 것도 없었다. 그 어떤 훌륭한 계획도, 다짐도 그저 사치가 될 감정 상태였다.
 
까마구에이는 쿠바에서 소고기 생산량이 가장 많다.
▲ 시장풍경 고기를 파는 모습. 까마구에이는 쿠바에서 소고기 생산량이 가장 많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매운 고추를 컵에 담아 파는 모습
▲ 시장풍경 매운 고추를 컵에 담아 파는 모습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한 가지 갸웃거리게 만드는 사실이 있다. 쿠바에서 가장 큰 지방인 까마구에이에 그 수도 까마구에이는 쿠바에서도 세 번째로 큰 도시다. 그럼에도 외국 여행자들의 방문은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를 돌아다녀도 마주치는 여행자가 거의 없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도시를 그냥 지나치다니. 무엇이 여행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걸까. 그렇다면 결국 나만이 알고 있는 멋진 공간으로 기억되는 수밖에. 그것도 나쁘지 않다.

구시가지의 모습. 밤이 되어도 결코 위험하지는 않다.
▲ 뒷 골목 풍경 구시가지의 모습. 밤이 되어도 결코 위험하지는 않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이런 까마구에이의 낮은 당신의 밤보다 아름다울지 모른다. 까마구에이의 밤? 글쎄, 낮풍경에 너무 긴장을 풀었던 걸까? 조용하던 도시에서 또 다른 색깔의 밤을 경험하는 것은 이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최근 도전과 열정, 감동의 북미 대륙횡단 스토리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를 발간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 #자전거여행, #라이딩인아메리카, #비전트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