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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의지와 상관없이 많이 지쳐 있었다. 말로는 문제 없다지만 땀으로 적셔진 그의 몸이 더위와 오르막의 역경지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확연했다. 거친 숨소리가 안타깝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이 일차 목표로 삼은 몸무게가 괄목할 정도로 빠졌으면 하는 마음에 무심한 시선만 건넨다. 때론 침묵이 곧 격려고 배려다.

 

쿠바의 일상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다가 수업시간이 되면 이내 자리로 돌아가 수업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도로 옆에 땅을 일구어 소의 힘을 빌려 밭을 가는 늙은 농부의 모습도 익숙한 풍경이다. 남자의 손에 자신의 머리를 내맡기고 이발하는 장면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자니 손님과 이발사가 모두 나를 보고 미소를 띄워 준다.

 

 

페달을 밟으며 길을 밀치고 가는 내내 나는 내 기억 속의 시골고향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20년 전 내가 살았던 흔적의 편린들이 먼 나라에서 아주 비슷하게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특별한 모습은 쿠바에서 좀처럼 찡그린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열과 낙천주의로 대변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가난까지 숨길 수는 없다. 그런데 쿠바는 다르다. 무력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소도시나 농촌에서는 아직 자본주의의 마약을 맛보지 못해서일까? 분명 상행위를 함에도 물질의 가치가 인생의 우선 순위에 있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들에겐 가족이나 이웃과 담소를 나누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것, 그리고 브라질이나 멕시코 연속극을 열광적으로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여가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물론 문화생활에 있어 선택할만한 여지가 사실상 없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에게서 보이는 삶의 질은 가난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어 보였다. 아마 사회주의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그때까지만일지도 모르겠지만.

 

쿠바의 풍경에 푹 젖어들고 있을 때에 J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현지인과 대화할 때도 얼굴이 상당히 굳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이 스스로 일 처리를 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종종 보게 되었다. 작은 마을에 도착해 경찰서에 문의 후 다시 현지인에게 한 가정을 소개받았을 때도 J가 주인과 15CUC(한화 약 2만원)로 방값을 조율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식사와 숙소 모두 내가 일처리하던 것인데 경험이 쌓이자 스페인어가 능숙한 J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 초보자로서 한 가지 서툰 것이 있었다. 나는 주인을 따로 만났다.

 

“숙박비는 10CUC로 하기로 했어요.”

 

J가 깜짝 놀란다. 사실 이 숙소는 공식적으로 나라에서 허가해준 곳이 아니다. 시골 작은 마을에 여행자를 배려할만한 숙소가 마련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만 경찰의 허락 아래 특정 집을 지목해 머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주인에게 그걸 미끼로 협상테이블을 차리진 않았다. 물론 그럴만큼 스페인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우리가 지금 저경비 자전거 여행 중이며 5CUC가 두 청년의 하루 밥값이 넘을 만큼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무척 좋아 보이는 당신의 집에서 조금만 더 싸게 묵을 수 있게 해 준다면 오늘 밤 우리를 기쁨의 잠자리로 인도하게 되는 것을, 쿠바인들의 격한 배려에 대한 나의 감동과 기대가 늘 옳았음을 온 몸을 쥐어짜내며 설명했을 뿐이다.

 

내 협상의 전제조건은 상대방의 강점을 인정해 주고 나를 낮추는 것부터 시작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힘을 선용하는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다. 그러면 긴장상태의 토론모드는 어느새 화기애애한 합의모드로 바꿔짐을 보게 된다.

 

 

숙소를 잡고 나서 쉴 때에도 J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육체적으로 피곤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문제라도? 녀석이 저녁을 굶겠다고 선언했다. 식사를 거르는 것이야 종종 봤지만 오늘은 자못 심각해 보였다. 다이어트를 위한 금식이 아니라 감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80km를 오면서 한 끼만 먹은 상태였다. 나는 J의 의견을 존중하고 식사 대신 망고만 깎아주었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일은 터졌다. 우리는 출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에서 날이 선 감정 대립 상태를 맞았다. 난 일찌감치 출발 준비를 마치고 30여분 이상이나 기다리던 터였다. 반면 J의 행동은 느려터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 나무라진 않았다. 물론 굼뜬 동작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이 여행을 긴장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J의 여행리듬을 맞춰줄 필요가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J는 흥분하면 영어로 대꾸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아침에 짐 고쳐매는 걸 도와주다가 그만 그 부분에 대해 논쟁이 오간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끼리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J는 달랐다. 이민 1.5세의 청년으로 한국인끼리 영어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마인드였다.

 

사실 뭘로 해도 알아먹는 언어사용이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핵심은 바로 높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평소에는 한국어로 높이다가 화 날 때만 영어를 쓰는 그의 행동이 나로선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나이나 직위에 관계 없이 대체로 수평적 관계로 설정되는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완전한 한국문화에 젖은 나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You’는 곧 반말로 간주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방이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언어선택의 내면엔 또다른 불만이 싹터 있었다.

 

 

“형이 내게 하는 말은 꼭 군대 명령식 같아요. 내가 군대같은 문화를 경험하려고 이 여행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나도 얼마든지 혼자 잘할 수 있다구요.”

 

“J가 서투니까 내가 조언하는 거잖아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매번 실수하니까. 그리고 행동도 사실 너무 느려요. 상대방을 생각해 줘야죠.”

 

우린 자전거 핸들을 잡은 채 그동안 쌓여온 서로에 대한 감정을 가감없이 토해내고 말았다. 7살이나 많은 내가 친해진 후에도 늘 그에게 존대하는 것, 자유분방한 그가 정해진 스케쥴에 따라 규격화된 행동을 따르며 의사를 제한받는 것 둘 다 자신과 서로를 위해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해를 고착화하게 된 원인이 되어 버렸다.

 

자존심 조금만 굽혔다면 영어도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내 조언이 누군가에게 잔소리나 명령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니 리드하는 입장에서 그의 생각과 문화를 다 포용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때였다. J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폭포수처럼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말이다. 자신이 잘못했단다. 자기도 스스로의 모난 부분을 잘 알고 있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고쳐지지 않는단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훌륭한 인격을 갖춘 부모님 생각에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 덩치에 그러고 있자니 웃을 수도 없고, 나 역시 미안했기에 어깨를 토닥거리며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처음 J의 동행에 대해 수락을 결정한 이유도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은 그의 순수함을 봤기 때문이다. 과장이나 거짓이 없고,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에 진실성이 맘에 들었다. 가끔 너무 솔직한 게 부담이 되긴 했지만 가식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나보다야 백번 나을 일이었다. 눈물을 훔치는 곰 같은 녀석이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그 자리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자전거 여행은 고사하고 이런 어려운 경험이 처음인 J가 이해될 때도 많았지만 화가 나도 꾹 참아야 할 때도 많았다. 스무 한 살, 항상 성인 대우를 바라는 그는 그러나 아직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애였다. 아직은 좀 더 세상에 부딪혀 성숙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J는 나에게 기도하고 가자며 부탁했다. 절대자에게 위안을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도로 옆 가게에 앉아 쌓인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풀고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 주었다. 서로를 더 이해하고 축복하는 시간이었다. 웃음을 다시 찾았고, 신뢰를 회복했으며, 더 좋아질 여정을 소망하며 두 손을 모았다. 기도만으로는 아쉬웠는지 매일 과제처럼 읽던 바울서신(바울이 교회에게 쓴 편지)까지 더 읽고 정오가 되어서야 비로소 도로 위에 자전거를 올려놓게 되었다.

 

 

오늘은 구름이 낀 채 비교적 선선해서 라이딩하기 참 좋은 날씨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모든 것이 풍요로웠다. 다시 새 힘을 얻은 J는 오늘따라 초반부터 무리하게 과속하며 나를 앞질러 갔다. 하지만 이내 다시 내가 J를 앞질러 격차를 벌려나갔다. 얼굴이 금세 시뻘개진 J가 죽을둥 살둥 뒤따라오며 소리쳤다.

 

“형, 같이 가요!”

 

‘같이는 무슨 얼어죽을! 시간도 늦었는데 살 빼려면 더욱 빨리 달려야지.’

 

태연하게 침묵하며 격차를 유지한 채 바람을 갈랐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자 J가 오른손을 들어 V자를 그려보였다. 자전거 여행을 통해 내면적으로 더욱 성장해 가는 J의 승리의 모습이다. 그렇게 하루의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최근 도전과 열정, 감동의 북미 대륙횡단 스토리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를 발간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라이딩인아메리카,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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