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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왜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야만 하는가

나는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문체에 녹아있는 영웅 찬양, 보수주의관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가는 당대의 역사적 조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최근까지 장기불황에 빠져있었던 일본에서 <로마인 이야기>가 리더십 서적으로 각광받게 된 시대배경 속에서 본서가 빛을 발했던 이유를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렇게 저자의 역사관을 용인한다면 내가 <로마인 이야기>을 읽으면서 한국사회라는 시대배경 속에서 유용한 문구를 뽑아 새로운 문맥을 만드는 것 또한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론에서 서둘러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관점을 뽑아낼 수 있는 <로마인 이야기>의 풍부한 텍스트의 매혹만큼은 인정하고 싶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왜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풀어나가 보도록 하자.

[본론]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인프라

▲ 아피아 가도
ⓒ 한길사
내가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다시 읽으면서 주목하게 된 열쇠단어는 바로 '인프라'였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인프라는 도로, 항만, 철도 따위의 "생산이나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시설"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굳이 <로마인 이야기>를 읽지 않더라도 대중매체를 통해서 로마시대에 발달한 목욕탕 문화, 상하수도, 도로체계의 우수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관용어가 익숙한 것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정작 인프라라는 용어가 로마사 사료를 연구하면서는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는데 인프라 대신에 찾은 단어가 바로 '몰레스 네케사리에(moles necessarie)'였다. 번역하면 '필요한 대사업'이라는 의미로 이 단어가 포함된 문장에서는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이라는 구절이 함께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로마시대의 인프라는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저자의 발견이자 해석이다. 여기서 당시 로마의 공공성에 대한 중요성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다.

로마를 언급할 때 가장 익숙한 격언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처럼 로마의 도로 건설을 먼저 살펴보자. 로마시대에 건설된 가도는 오늘날 아스팔트 포장을 해서 여전히 도로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로마가 상당한 수준의 토목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도의 건설에 로마가 열중했던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반란, 전쟁 발생 시 군 병력의 신속한 이동을 목적으로 한 군용도로 역할이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일찍이 도로를 국가의 동맥으로 보고서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서 국가가 발전한다는 생각이 연유했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가 승리하여 귀속된 패전국에서도 도로 건설을 도모하고 지방자치권을 인정하여 이들 국가들을 배제, 고립시키지 않고, 상호 교류를 조장했던 사실에서 로마는 승자와 패자가 함께 공동운명체로서의 삶을 모색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오늘날 인프라 구축에서도 매우 중요한 상수도 체제는 로마시대에도 중요한 사업으로 여겨졌었다. 본디 로마는 물이 부족한 지역은 아니었으나 보다 안정적이면서 깨끗한 물을 공급한다는 취지하에 원거리의 수원을 끌어다가 도시에 공급하는 수로 사업을 벌였다. 그래서 주민들은 기존의 지하수를 이용한 우물물 그리고 빗물과 더불어 수로를 통해 운반되는 수돗물을 복합적으로 이용하였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맞은 한국의 경우 최근 진보적 관점에서 그동안 수자원공사를 소실점으로 한 중앙집권화된 상수도 체계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면서 분권적인 소규모 상수원 개발이 대안으로 주창되고 있다. 권력의 위계적 측면에서 본다면 근대화시기에 거대화, 권력화가 된 수자원공사만을 통한 용수 공급은 생태적, 경제적으로 그 비효율성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굳어버린 경로의존성으로 인하여 '코끼리'가 돼버린 수자원공사를 '냉장고'에 넣는 것은 가히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로마시대의 용수공급체제가 수돗물과 더불어 우물물, 빗물 등을 적극 활용한 것을 상기할 때, 그리고 로마시대의 인프라 구축이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취지였음을 생각한다면 현 정부의 일원화된 상수도 체계는 자신의 권력지분이 우선되고 정작 국민은 뒤로 후퇴한 주객전도가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특히나 한미 FTA에 결합되어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는 한 국가의 공공사업 기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임에도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FTA 체결에 앞장섰으니 점입가경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의 대표적 피해사례로서 상하수도 시설을 백텔이라는 미국 기업에 헐값으로 매각한 약소국 볼리비아를 들 수 있다. 상하수도를 인수한 백텔은 로마가 물값을 받지 않았던 반면 백텔은 수돗물값을 오히려 대폭 인상시켰고, 로마에서는 수돗물과 함께 빗물의 사용을 권장했던 반면 백텔은 빗물저장이 강수량을 줄어들게 한다는 희한한 논리를 들면서 빗물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만들고자 했다.

결국 볼리비아에서 민중 폭동까지 발생했음을 상기한다면 '역사는 진보한다'는 테제가 얼마나 무력하고, 우리가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다른 분야는 모르더라도 국정만큼은 로마시대로 회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정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에서는 다양한 인프라를 곳곳에서 서술하고 제10권에서는 인프라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본 감상문에서는 가도, 수도와 함께 마지막으로 로마시대에 우편제도를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오늘날에는 전자우편 등으로 인해서 편지 쓰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행사, 새해인사, 청첩장 혹은 군대에 가 있는 자식, 친구들에게 펜으로 직접 쓴 편지를 보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편이 기술결정론에 의해서 쉽게 사라진다고 예단하는 것은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인간적인 감성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이용비용을 늘린다는 것은 로마사람들이 일찌감치 인식했던 공공성을 망각한 처사다.

로마시대에 처음 우편제도가 생기게 된 연유는 카이사르가 갈리아와의 전쟁에서 신속한 정보 전달을 하기 위해서 군사정보 전달만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를 조직한데서 비롯되었다. 물론 초창기에는 황제나 장군들을 위한 제도였지만 차츰 일반인들도 이용하게 되었고, 이는 앞서 언급한 사례인 가도나 수도에서처럼 승자인 로마뿐만 아니라 패전국 사람들 또한 누구나가 우편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편제도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제도가 되었다.

로마시대 우편제도를 'cursus publicus' 즉, 국영 우편배달 제도라고 불렀던 것은 로마인들이 애당초 다른 인프라와 함께 우편제도의 공공성(publicness)을 인지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수세기 전에 로마인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우편제도의 공공성을 직시하고 있는가.

현재 국내 우편사업은 정부에서 독점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우려했듯이 최근에 체결된 한미 FTA에 포함된 투자자-국가소송제는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보기 드문 저렴한 가격으로 따스한 인간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우편제도조차도 기업의 이윤논리에 따라 서민에게 부담스런 매체로 전락시킬 수 있다.

이러한 실 사례로 캐나다를 들 수 있다. 캐나다의 우편제도는 '캐나다 포스트'라는 공기업이 국내 우편사업을 독점하고 있는데, 미국의 세계적 택배기업인 UPS가 캐나다에 'UPS 캐나다'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서는 캐나다 포스트의 독점 운영으로 인하여 자신의 회사가 차별대우를 받고 손해를 보았다면서 투자자-국가소송제를 통하여 막대한 배상액을 요구한 것이다.

여기서 투자자-국가소송제에 대해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FTA를 통한 미국식의 세계화는 로마시대의 타자를 용인하고, 공공성을 강조했던 세계화와는 전연 다르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강조하고자 한다.

[결론] '팍스' 접두어를 미국에 선사하는 것, 로마제국 입장에선 수치스러울 것

가도, 수도 등의 인프라 구축을 통하여 패전국에 대해서도 고립보다는 교류를 통하여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적 가치관인 로마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는 일단 미덕으로 받아 들일만 하다.

하지만 조금 더 각론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로마 남자를 점령지에 이주시켜 현지 여자와 결혼하게 하는 혼혈정책으로도 패자를 동화"(제10권 34쪽)하는 방법 등은 현재 중국에서 소수민족 자치구에 한족을 이주시키는 정책이나 스페인의 원주민 동화정책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 내선일체(內鮮一體) 방침에 따라서 일본인이 한국으로 이주한 점을 상기한다면 팍스 로마나를 전연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팍스 로마나에 비유되는 팍스 아메리카, 미국의 외교정책은 이라크 침공만 보더라도 타자에 대한 존중은 사라졌고, 인프라 구축은커녕 약소국의 경제를 단순화, 자국에 종속화시키고 오히려 갈등에 기반한 평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시대의 '팍스(평화)'라는 접두어를 미국에 선사하는 것은 로마제국의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울 것이다.

특히나 최근 가장 뜨거운 화두인 FTA를 통해서 미국이 멕시코 등의 중진국조차도 경제를 파탄시킨 사례들을 상기하면 팍스 로마나 치하에서의 상호호혜의 '교류'를 FTA를 필두로 한 미국이 강변하는 일방적인 시장개방을 통한 '교류'와는 그 의미에서 현격히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음과 같은 기술은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네오콘에게 <로마인 이야기>를 왜 필수적으로 읽어야만 하는지를 시사해준다.

"로마의 위정자들은 안전보장, 가도망, 우편제도, 수도와 공중 목욕장 정비, 위생 중시, 로마법 등의 '문명'을 보급하는 동시에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통치했다. 민족간 분쟁을 막는 것은 '팍스 로마나'의 중요한 요건이었다." (제10권 115쪽)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태그:#로마인 이야기, #한길사, #인프라, #가도,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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