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버지'하면 나를 태우고 학교를 오르내렸던 자전거, 시멘트 독 때문에 말이 아니었던 손, 그리고 기차가 떠오른다. 아버진 지금은 없어진 통일호를 주로 타셨는데 요금이 싸다는 까닭이었다. 생전에 가장 비싸게 탄 기차라야 무궁화호였는데 그것도 내가 끝까지 우겨서 표를 끊었던, 단 두 번이었다. 늙은 몸을 이끌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입석으로라도 타신 걸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난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 어쩌다 내 모습이 들어 있는 사진을 보면 어색함이 가득하다. 사춘기였을 것이다. 사진 속 내 모습이 싫어 모조리 찢어 버린 일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 사진 속에 아버지가 없었다는 것이고,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 위창남
전남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시골집이 철거된다는 공문이 날아온 건 작년 2006년 9월이었다. 그 집은 아버지가 다 지으신 집이라 남다른 곳이기도 했다. 아버지 손때가 묻은 그 집이 철거된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진이라도 남겨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그 집을 딱 한번 가봤는데 아버지가 막 집을 지으려 할 때였다. 이번에 간다면 두번째인데 그것이 곧 없어질 집이라니.

10월 11일 수요일 저녁 10시 50분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여수행 무궁화호를 탔다. 이 기차를 타고 여수역 두 정거장 앞인 여천역에 이튿날 새벽 4시 조금 넘어서 내릴 것이다. 그럼 아침에 그 집을 둘러보고 카메라에 담은 뒤 바로 올라오는 것이 내 동선이었다.

▲ 중흥동 집
ⓒ 위창남
아버지가 기차로 부지런히 다니셨던 길을 내가 가고 있는 것이다. 밤이라 창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밤기차 여행은 그래서 별로다. 드디어 내가 내릴 종착역이 한 정거장 남았다. 뭐 빠진 것 없나 살핀 뒤 내렸다. 경사로를 조심스레 내려와 역을 나왔다. 역 앞 측백나무가 있는 노란 벤치에 앉았다. 그 자리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아침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꽤 쌀쌀해 그만두었다. 그 아버지의 집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 너무 일찍 가기는 그랬다.

잠시 새벽바람을 쐰 뒤 역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이라곤 달랑 나 혼자뿐이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누워 눈을 조금 붙였다. 중간에 역무원이 와 몇 번 깨긴 했지만 아침 8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역에 있는 화장실에서 잠시 세수를 한 뒤 택시를 타고 집이 있는 곳으로 갔다. 택시는 꽤 많이 달려 여수산단 지역을 조금 지나서 내렸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물어물어 드디어 집을 찾았다. 대문 앞에 서서 잠시 있다 256M인 메모리 카드가 다 찰 때까지 열심히 찍었다. 아버지 조그만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역에 도착해서였다. 오후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만 카메라가 없는 것이다. 그 집에서 여천역으로 가는 택시를 탈 때까지만 해도 있었으니까 택시에 두고 내린 듯했다.

그쪽 파출소에 전화를 해 자세히 얘기를 했다. 그렇게 열흘 넘게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카메라를 다시 샀다. 이번엔 메모리 카드가 1GB로 수백장을 찍어도 넉넉한 것이었다.

▲ 창밖 풍경
ⓒ 위창남
10월 25일 수요일 오전 8시 50분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탔다. 좌석은 5번 창가였다. 아버지도 기차를 탔다면 저쪽 문을 열고 들어오셨을 것이다. 오늘처럼 자리가 몇 군데 남아 있으면 앉아서 갔을 것이고 사람이 많았다면 서서 가셨을 것이다.

ⓒ 위창남
평일인데도 산에 가는지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가을 단풍 기차여행'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하긴 기차하면 여행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놀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타보신 일이 없었다.

▲ 여천역
ⓒ 위창남
갑자기 아버지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은 똑같은 풍경이 지루하게 펼쳐진다. 아버지는 창 밖을 감상하기보다 졸며 지나쳤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기차는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중간 중간 기차는 정거장에서 사람들을 내리고 태웠다. 조용히 눈을 감고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 집중했다. 뒤에서 사람들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 정치에 대한 이야기다. 창 밖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온다. 슬며시 눈을 뜨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솜뭉치 같은 구름이 떠다니는데 파란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지만 창이 있는데다가 반사까지 되어 눈으로 보는 그런 느낌을 담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가을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차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아까부터 들어올 때 인사하고 나갈 때 또 인사한다. 의자에 몸을 눕힌 채로 그걸 받기가 괜히 미안해진다. 밀고 다니는 손수레에 맥주와 안주, 과자를 넣고 돌아다니는 분은 벌써 몇 바퀴째 객차 사이를 도는지 모른다. 전에 기차를 타면 저기서 뭘 사먹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군것질을 무척 좋아하는 나였지만 나이를 먹고부터는 이상하게 군것질을 하지 않는다.

▲ 측백나무가 있는 벤치
ⓒ 위창남
내릴 역이 다가온다. 저번에 왔을 때는 새벽이었지만 지금은 오후 2시라 햇살이 환하다. 측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바람을 쐬고 그 집으로 갔다. 딱 한번 와봤던 곳을 보름 사이에 두 번이나 온 것은 아마 아버지가 날 다시 불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 서울로 돌아오는 무궁화호 안
ⓒ 위창남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


태그:#기차, #아버지, #추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