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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을 지나며

▲ 삼랑진역
ⓒ 정애자
삼랑진은 엄국현 시인의 고향. 일행은 시인의 마을을 지난다. 삼랑진하면 엄국현 시인의 등단시, <돌이>의 정다운 이름이 먼저 떠오르고 삼랑진(三浪津) 그 이름에 강여울이 햇살처럼 일렁인다. 삼랑진역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부산에서 출발해 밀양역을 통과하기 직전의 간이역. 숱한 간이역을 지나는 경부선은, 낙동강을 껴안고 달리고, 낙동강은 보리피리의 기억으로 거꾸로 흐른다.

낙동강의 하류는 김정한 선생의 <모래톱 이야기> <수라도>의 소설 무대. 시인의 마을에 소설적인 낙동강이 흐르고, 경부선은 쉼없이 낙동강을 따라 하행선과 상행선으로 윤회한다.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경부선의 간이역들은, 달리는 차창 안에서 보면 대개 엽서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여행길은 아무래도 빠른 KTX보다 무궁화호가 좋다. 무궁화보다 더 느린 통일호가 좋다. 사라진 비둘기호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는데. 시간이 느긋한 여행객에게는 기차 속도는 방해물. 먼 거리든 가까운 거리든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항상 즐겁다. 초등학교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간다. 배낭에 든 도시락과 몇 개의 과자봉지 그리고 음료수만으로도 행복하다.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일행의 목적지는 밀양 삼랑진 만어사 너덜겅.

오리나무, 마을 버스정류장

▲ 간이버스정류장
ⓒ 송유미
오리나무 버스정류장은 오리 쯤 걸어온 사람들이 쉬었다가 가는 정류장일까. 손때가 묻고 의자에 칠이 벗겨진 간이버스 정류장은 한산하다. 길을 묻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버스정류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다. 그러나 삼랑진에서 삼랑진의 만어사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누구는 버스를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걷자고 하고, 누구는 택시 대절하자, 차 가지고 올걸 등등 여러 소리가 나온다.

아침 일찍 출발했으나, 일행이 다 모여 기차를 탄 시각은 9시. 삼랑진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어느새 점심시간. 어영부영 하다보면, 무박의 여행이라 갈 길이 멀다. 더구나 택시 기사의 마음에 따라 미리 요금을 정하니, 모두들 마음이 달라진다. 마을 버스를 타기로 했지만, 일행 중에는 완전 무장한 등산복 차림으로 만어사까지 걸을수 있다고 장담한다. 기다려도 마을 버스는 오지 않을 거라고 누가 콜택시를 불렀다.

콜택시로 10리쯤 달려, 다시 가파른 포장길을 2km 넘게 헉헉 숨을 뱉으며 힘들게 거북이처럼 올라갔다. 낮게 깔린 운무가 허리를 감싸는 듯 산은 가만히 있고 일행들은 숨소리와 발소리 위에 발소리를 더 했다.

재앙의 흔적, 소리나는 너덜겅

절은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만어산(일명 자성산) 정상에 있었다. 전생에 몇 번은 왔다갔듯이 낯익은 절은 기대보다 크지 않다. 일주문도 없는 절마당에는 고려 시대 세워진 3층 석탑이 반겨준다. 대웅전의 기둥에 세로로 쓰여진 '비청비백역비흑(非靑非白亦非黑,청도 백도 아니고 또한 흑도 아니다)의 글귀에 한참 머문 시선의 머리 위로, 날아갈 듯한 대웅전 처마에 달린 목어 한마리가 바람결에 흔들리며, 하늘의 연못에 파문을 그린다. 외따로 산신각이 높이 앉아 있다. 와우, 누가 먼저 탄성을 지른다. 미륵전에서 내려다 보는 너덜겅이라 불리는 암괴지대에 일행들은 환호성 !

▲ 만어사장관, 너덜겅
ⓒ 박창희
여행길에는 세 사람이 있으면 그 중 한 사람은 스승이라고. 누가 바다의 용궁에서 혁명을 일으켜 올라온 물고기들이 바다에서 부르는 용왕의 호통에 뒤돌아보다가 석어가 되었다고 입에 침을 튀며 설명하기 시작하자, 무식하게 그게 아니다, 누구는 지질학자처럼 이야기를 꺼낸다. 2억년전인 고생대에서 중생대 초의 퇴적암층인 청석. 돌이 철분을 많이 함유해서 쇠붙이가 되었다는 이 소리. 이 소리는 왠지 그럴 듯하다.

또 한 일행은 역사학자처럼 다시 이야기를 물고기처럼 뒤집는다. 가야 수로왕 때 옥지라는 못이 있었고, 그 못에 독룡이 살았는데, 만어사의 나찰녀와 이 독룡이 사귀었기 때문에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로 내려, 이를 부처님의 설법으로 물리쳤다 한다. 그 재앙의 흔적이 너덜겅이라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일까. 불화 한장이 그럴 듯하게 뇌리에 그려지는데, 여기에 또 덧붙인다.

이 수만마리의 석어들은 모두 악기처럼 풍경 소리가 난다고. 그러자 일행 중 가장 큰 스승이 돌과 돌의 이마를 부딪히자, 돌은 저 만큼 지느러미 푸득이며 도망간다.

빗물소리가 들린다
지붕 밑에 누워서 자꾸만 미안해진다
아름답다는 일들만 씻겨가고 나는 참 어둡다
지워지지 않는다 천방지축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아
살면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은 지워야 하겠느냐
미안하다 자꾸만 미안해진다
비뿌리는 하늘처럼 비울 줄도 알아야지
밤이 칼을 빼서 내 가슴을 찔렀으면 좋겠다
(빗물소리-엄국현)일부


삼랑진의 낙동강, 삼랑진의 멋과 맛

▲ 오리나무
ⓒ 송유미
삼랑진의 깊숙이 들어와 흐르는 낙동강과 밀양강을 품고 사는 삼랑진, 마을의 이름들은 모두 옛선인의 이름처럼 정겹다. 송지(松旨)·용전(龍田)·미전(美田)·삼랑(三浪)·율동(栗洞)·우곡(牛谷)·검세(儉世)·안태(安台)·행곡(杏谷)·임천(林川)·숭진(崇眞)·청학(靑鶴)·용성(龍星) 등 골목길 어디서 갓을 쓰고 두루막을 입은 선비들이 걸어나올 듯 한 마을. 13개의 동리가 있고, 이 마을 사람들은 주로 밭농사, 그외 과수 농사.

일행의 여행의 반환점은 삼랑진역. 여기서 모두 각자 또 갈길이 다르다고 뿔뿔이 흩어져야 할 시각. 삼랑진역사 앞에 아주 맛이 있는 추어탕 집이 있다고 누가 이끈다. 오래전 와본 희미한 기억으로는, 그 추어탕 맛을 기억하는 그 추어탕 집을 찾지 못하고, 역사 앞에 초록이파리를 뒤집는 수다스러운 바람소리와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의 자태에 넋을 놓는다. 어디선가 기억의 보리피리 소리 하나 들려온다.

보리피리 하나 흘러간다
보리 문둥이 썩은 염장이 흘러간다
낙동강, 구비 구비 돌아서
일곱개 늑골을 울리며
보리 피리 하나 흘러간다
고무신 거꾸로 신고 달아난
젊은 어미의 퉁퉁 불어터진 젖줄이 흘러간다.
주먹밥 뭉쳐들고 떠난
푸르게 멍든 내 청춘이 흘러간다.
어느해 가뭄에 허기지게 불어대던
입술 다 불어 튼 보리 피리 하나 흘러간다.
흐르고 넘쳐도 바닥을 보이지 않는
사천삼백삼십구년을 하루처럼 살아온
아직도 정정한 단군의 긴 수염이
내 몸 속을 낙동강처럼 흘러간다.
<낙동강-자작시>전문


▲ 삼랑진 역
ⓒ 정애자

덧붙이는 글 | 특별기획/철도와 함께 하는 여행 기사 응모


태그:#만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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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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