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0 08:32최종 업데이트 20.12.3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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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우수상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지난 11월 85세 친정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친정엄마는 아버지 없이 혼자 식당을 꾸려나가야 해 힘들다고 짜증을 내는 통에 딱히 기분 좋을 일이 없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이번에 돌아가지 않으신 것만도 참 다행이다 스스로 위로하며 유튜브로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노래 'Pale Blue Eyes'를 듣고 있었다. 우울한 노래가 딱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냉기가 도는 집안 식탁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난로 삼아 마시며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가을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상황은 답답한데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높고 파랗고 햇빛은 찬란했다. 문득 바깥 기온이 궁금해 현관문을 열어보니 보기에는 따뜻할 것 같은 날씨는 차갑고 건조했다. 날씨보다 마음이 더 시린 것이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친정아버지의 협심증으로 심장 관상동맥 스탠드 시술을 받느라 병원 입원 수속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며칠 전 우리집 고2 아들이 폭탄선언을 했다.

"엄마, 나 학교 그만둘래. 자퇴하고 싶어."
"뭐? 자퇴?"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학교를 그만두겠다니... 내년이면 바로 고3인데 이제 1년 남짓한 학교를 왜 그만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절대 안 돼!"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소리를 빽 질렀다.

수학 과외 선생님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공부해서 검정고시로 의대에 갔는데 저도 그렇게 해보겠다는 아들과 며칠간 갈등상태였다.

"과외 선생님은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있지만 너는 종일 핸드폰 보고 게임만 하고 퍼져 잠만 자잖아. 1년만 더 버티고 고등학교는 졸업하자. 더는 자퇴 얘기하지 마. 엄마 요즘 외할아버지 병원 다니느라 힘든데 너까지 이러면 진짜 감당 안 된다."
"그럼 수학 과외라도 안 할래. 나한테 전혀 도움 안 돼.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듣겠어. 난 수학 머리가 전혀 아니야.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어를 공부해서 내신등급을 올릴래. 응?"


수학 과외를 하기 전에는 찍어서 평균 30점을 간신히 유지했다. 아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오는 의과대학생 선생님 과외를 받으면 시험 문제를 딱 2문제 더 풀 수 있다고 했다. 고2까지 잘 다니던 학교를 자퇴 하느니 저렇게 싫어하는 과외를 그만두는 쪽이 낫겠다 싶어 바로 그 날 과외수업을 끊었다.

그리고 아들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종합병원 수술방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것이 꿈인 아들은 4년제 국립대학 간호과에 진학하길 원하는데 성적이 전혀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대학 3년제 간호과라도 진학하려면 최소 4~5등급이 돼야 하는데 그에도 많이 모자라다.

"아들아, 사람이 전문자격증이 있어야 사회 나와서 밥벌이를 하고 결혼해서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질 수 있고 사회인으로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 지금 너의 성적으로는 의사, 변호사, 법조인, 선생님이 되고 싶어도 못되고 그나마 접근할 수 있는 직업군이 경찰, 군인, 전문 라이센스 따서 의료 기사로 일하는 건데 간호사가 꿈이면 지금보다 내신성적을 2단계 더 올려라. 그것밖에 답이 없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그런 와중에 대학생 딸이 카카오스토리에서 <오마이뉴스> 책 광고를 보고 주문한 <삶을 위한 수업>이 택배로 도착했다. 딸이 책을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우리 때문에 산다고 말하지 말고 엄마 스스로 행복에 겨워 엄마 인생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도 외할아버지 심장병이나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외삼촌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엄마 인생을 살아. 맨날 돈 없다고 말하면서 외갓집 일에 돈이 다 들어가잖아. 물론 외할아버지 병원비, 외삼촌 가게 옮기는데 보증금같이 신경쓸게 한두 가지 아니지만 가장 0순위, 1순위는 엄마 자신이면 좋겠어. 어려서부터 엄마 살아온 모습을 보면서 느낀 건데 엄마는 엄마 인생이 없는 것 같아. 엄마 스스로 사랑하고 존중했으면 좋겠어. 남일, 주변 일 때문에 그만 바쁘고 이제부터는 엄마 인생을 살아. 제발..." 

언제 컸는지 딸이 나를 이렇게 보고 있었구나! 딸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들으니 참 부끄럽고 할 말이 없었다. 행복하고 즐겁고 긍정적인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늘 돈 걱정으로 달달거리고 종종거리는 엄마 모습만 봤구나. 딸아, 미안하다. 너는 부디 엄마처럼 살지 마라. 너의 인생을 철저히 행복하게 살아. 진심으로 부탁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삶을 위한 수업>을 펼쳤다. 저자가 쓴 서문 '우리도 삶을 가르칠 수 있을까'의 첫 장을 넘겼다. 덴마크의 '행복 고구마 캐기'라는 저자의 표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고구마를 직접 캐본 나는 고구마 하나를 뽑으면 그 줄기에서 주렁주렁 매달려 따라 올라오는 고구마들을 기억한다.

한 아이의 행복한 수업, 행복한 교실, 행복한 학교가 행복한 사회, 행복한 나라를 만든다는데 우리 아들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행복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구나. 마음을 몰라주고 핀잔만 줬으니 아들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너 잘 되라고 줄기차게 학원을 보냈고 그렇게 싫다는 과외를 꼬박꼬박 시켰고 시험 성적이 나쁘면 아들을 호되게 꾸짖었었다. 어려운 형편에 너에게 이렇게 투자하고 있는데 왜 정신 못차리고 공부를 안 하니 넌 언제 사람 될래! 하며 내 방식대로 아들을 몰아붙였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아들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이 흐르고 나의 극성스러움을 반성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 모습을 아이들이 지켜보며 자랐다는 것에 너무 미안했다.

덴마크의 헤닝 아프셀리우스 수학선생님은 우주에 대한 사랑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난 그 문단을 읽으며 그분의 아름다운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했다. 우주 천체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라니 어쩌면 저리도 마음결이 고울까!

학생들이 공부를 하려면 수학, 천체에 대한 흥미 유발과 스스로 필요해서 배우려는 자기 주도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고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동기부여 되어 계속 학업을 하게 되는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이다.

배움이 즐거움이 되고 행복한 경험이 되니까 스스로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더 공부해, 더 빨리, 더 잘해'를 외치는 나를 봤고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너무 미안했다. 이제는 조금씩 '꿈틀리인생학교'의 '괜찮아'를 마음속으로 연습하고 있다.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옆을 볼 자유를 누려도 돼!'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배우고 공부하는 거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어. 오늘 지금 나부터 꿈틀거리겠다는 저자의 말씀처럼 행복한 삶을 위해 한 걸음씩 꿈틀거려 보겠다.


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 오연호 (편역), 오마이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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