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5 20:36최종 업데이트 20.12.2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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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우수상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덴마크 교사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삶을 위한 수업', 그것은 우리 학교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교육 방식이었다. ⓒ pixabay


<삶을 위한 수업>을 보자마자 책 표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에 압도당했다. '삶을 위한' 수업이라니, 제목도 너무나 멋진 말이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끊이지를 않았다. 내가 바라는 교육, 내가 꿈꾸는 교육이 이 책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더 감사하게 만든 것은, 이런 교육을 내가 이미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덴마크 교사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삶을 위한 수업', 그것은 우리 학교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교육 방식이었다(나는 독수리기독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우리 학교가 어떻게 '삶을 위한 수업'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지, 내가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행복한 수업'에 대해 잠시나마 나누고자 한다. 만약 <삶을 위한 수업>에 나오는 10명의 덴마크 교사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자신의 교실과 놀랍도록 비슷한 우리 학교의 교실에 감탄할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 배움은 교실 밖에서도 

제일 먼저, 우리 학교는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의 교육 철학 중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바로 '과정주의'다. 물론 우리 학교도 1년에 4번 중간, 기말고사를 본다. 하지만 그 부담은 일반 학교 학생들보다 훨씬 적다. 나는 그 이유를 교육과 신앙에서 찾는다.

우선, 우리 학교는 선생님들부터 점수에 연연하시지 않는다. '시험은 나 자신을 점검하기 위한 수단일 뿐, 종이 위에 적힌 점수는 아무런 힘도 가지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느냐지.' 우리는 1학년 때부터 교실에서, 복도에서 이런 말들을 끊임없이 듣는다.

나도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전에 경험해 왔던 시험 스트레스를 많이 느꼈지만, 이제는 학교에 분위기에 적응해 시험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옛날에는 시험 기간에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면, 지금은 그 과정에서 얻는 것들에 집중하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준비를 충분히 해놓은 뒤에 시험 며칠 전에 문제집을 푸는 대신 좋아하는 책을 읽는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과정주의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과정주의의 참된 근거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결과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과정에 충실했다면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과정주의는 진정한 교육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참된 신앙인이라면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과정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이 믿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른다.

두 번째로, 우리 학교는 배움의 범위를 교실뿐만 아니라 일상으로 확장시킨다. 덴마크 교사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실생활과 연결되는' 수업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기억나는 몇 가지 사례들만 소개하자면, 먼저 작년에 우리 학년이 했던 '물 절약 프로젝트'가 있다.

당시 우리는 과학 시간에 '수권과 해수의 순환'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일반학교와 달리 우리는 교과서 진도를 다 끝내고 나서 우리가 배운 내용을 물 부족 문제로 확장시켰다. 우리는 직접 물 부족 사례와 물 공급 실태, 물 발자국 등 물과 관련된 세계적 이슈와 움직임들을 스스로 조사하면서 배워나갔다. 그리고 나서 조별로 '물 절약 프로젝트'라는 것을 시작했다.

우리는 학교 안에서 어떻게 하면 물을 더 절약할 수 있을지 서로 의논하고, 이 의논 결과를 직접 실행으로 옮겼다. 가령 우리 조는 절수 수도꼭지를 인터넷으로 구매한 후 학교 화장실 곳곳에 설치했고, 다른 조들은 포스터를 들고 캠페인을 벌이거나 양치컵을 구매해서 학생들이 양치를 할 때 컵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나누어주었다. 이런 모든 노력을 통해 우리 학교가 절약한 수도세는 저 멀리 개발도상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 자원을 후원하는 데 쓰였다.

이 경험은 나에게 '우리 같은 학생들도 학교에 뭔가를 할 수 있구나. 교과서에서 배운 간단한 지식이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이처럼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배움이 '삶'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한다. 그리고 항상 무언가를 배울 때, 이것이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학생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한다.

한 예로, 올해 수학 시간에 통계 단원을 처음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몇 달 전 우리는 통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통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께서는 각자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실제로 몇몇 기업들이 데이터를 왜곡해서 이익을 얻는 사례들을 보여주셨다. 그러면서 우리 학교에서 통계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올바른 가치와 선한 목적을 가지고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나는 선생님의 이 말씀을 통계 단원을 배우는 내내 마음속에 간직했다. 그래서 산포도와 분산, 표준편차와 중앙값을 공부할 때 속으로 '나는 과연 무엇에 가치를 두고 데이터를 바라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통계를 배울 때 분산을 계산하고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데만 그칠 수도 있다. 오히려 그게 훨씬 편하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 나갔을 때 정작 중요한 것은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보다 그 데이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이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게끔 하셨다. 우리가 배우는 수학 공식이 인생에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알려주신 것이다.

'삶을 위한 수업'은 이미 시작됐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마지막으로, 내가 손꼽는 우리 학교의 장점은 바로 학생과 선생님의 친밀한 관계이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으신다. 내가 초등학교 때(나는 공립초등학교를 나왔다) 경험했던 선생님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이다. 오죽하면 우리가 담임 선생님을 '제 2의 엄마'라고 부르겠는가.

이러한 선생님들의 남다른 애정은 무뚝뚝한 학생들까지 마음을 열게끔 만든다. 그래서 9학년 쯤되면 우리 학교에는 선생님들에게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상의하는 학생들이 많다. 나 또한 처음에는 선생님들을 경계의 대상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부모님만큼 선생님을 의지하고 신뢰한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고민이 생기면 담임선생님께 털어놓는다. 그러면 선생님은 부모님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시면서 도움이 되는 피드백과 소중한 조언을 주신다.

한 번은 8학년 때 공부 스트레스로 인해 정말 힘든 적이 있었다. 정말 너무 힘든 나머지 나는 용기를 내서 방학 때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일반학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즉시 만나자고 하셨다.

그 날 우리 둘이 서현역 한 카페에 앉아서 밤늦게까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던 그 시간을 나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울음을 쏟아내면서 선생님께 다짜고짜 하소연하던 나의 모습, 이를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받아주시면서 따뜻한 위로와 진심 어린 조언으로 나를 달래주셨던 선생님의 사랑,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신 덕분에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나를 위해 고민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 한 명을 한 명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신다.

우리에게 선생님의 존재는 권위자가 아니라 '동역자'이고, 선생님들에게 우리의 존재는 학생이기 전에 '사람'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주체와 객체를 구분 짓던 벽이 사라지고, 스승과 제자가 사랑으로 연결되며 허물없이 소통하는 곳, 그곳이 바로 진정한 학교가 아닐까.

어쩌다 보니 독후감이 학교를 소개하는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굳이 이렇게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우리 학교와 같은 교육이 조금이라도 한국 사회에 퍼져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들 '한국 교육이 문제다'라고는 하지만, 정작 실제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아니,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어느새 무너져 버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한국에도 이런 학교가 있구나, 덴마크 교육이 저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구나를 깨닫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좋은 교육의 특권을 누릴 수 있지만, 나보다 열악하고 냉담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부족한 글을 통해서라도 행복한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우리 학교의 방식만이 정답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선생님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덴마크 교사들처럼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믿음을 여러분에게 주고 싶었다. 우리도 행복한 배움, 행복한 교육, 행복한 삶을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을 가진 학생들, 학부모들, 선생님들이 학교라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모일 때에, '삶을 위한 수업'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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