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5 21:49최종 업데이트 20.12.2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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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우수상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삶을 위한 수업>은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하루 만에 완독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읽을 수도 있지만, 차마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책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물리, 천문학을 가르치는 헤닝 아프셀리우스의 교육 철학과 그만의 교육 방식을 접하고 난 뒤 나는 하루에 한 명씩, 모두 10명에 이르는 덴마크 교사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그렇지만 깊이 있게 경청하기로 했다.

그들이 가르치는 교실에는 일방적으로 교사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학생이 아닌 교실의 주체인 '젊은 어른들'이 있었다. 교사들은 그들만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교실의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각자의 속도에 맞게 성장하는 학생들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교사들은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덴마크의 '삶을 위한 수업'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인 듯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정말로 교육의 희망이라곤 없는 것일까?

그때 그 시절, 특별했던 세계사 수업 
 

덴마크 교사들의 교육 인터뷰를 읽는 동안 줄곧 중학교 시절 우리 학년을 담당했던 세계사 선생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 pixabay

 
<삶을 위한 수업> 속 덴마크 교사들의 교육 인터뷰를 읽는 동안 줄곧 중학교 시절 우리 학년을 담당했던 세계사 선생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워낙에 외워야 할 인물이나 사건들이 많아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과목인 데다 졸음이 몰려드는 오후 시간대에 시간표가 배정되었는데도, 희한하게 세계사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평소 공부에 대한 열의가 높지 않던 친구도 세계사만큼은 예습 복습에 열심이었다.

비결은 특별한 선생님과 수업 방식에 있었다. 세계사 선생님은 한 번도 칠판에 판서를 하거나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 수업을 한 적이 없었다. 대신 매 수업 시간마다 학생 2명을 정해 그날 배울 교과 진도를 알려주고 직접 선생님이 되어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된 학생들은 보통 그날 배울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정리해 전지에 옮겨 적었다.

수업 시간이 되면 칠판에 걸린 전지를 바탕으로 강의를 하고, 이어서 다른 학생들은 질문을 던졌다.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다 함께 고민해볼 만할 질문이 나오면 그것을 주제로 즉석에서 토론을 이어지기도 했는데, 사실상 이 모든 과정은 교실 안의 모든 학생들이 충분히 수업 내용을 숙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세계사라는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인기는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업이 늘 새롭고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낯선 수업 방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황당하기만 했다. 하지만 학생들 스스로 준비하고 이끌어가는 수업은 예상외로 재밌었다. 같은 내용에 대한 관점은 학생들 수만큼 다양해서, 각자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들려주는 세계사 수업은 지루하기가 어려웠다.

같은 학생의 입장이었던 만큼 선생님이 된 발표자와 다른 학생들이 질문과 답변을 하기도 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절대로 학습의 질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간, 기말 고사에서 우리 학년의 세계사 과목 평균 점수는 예년에 비해 월등히 높은 데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국어, 영어, 수학처럼 주요 교과목에 들여야 할 노력을 비주류 과목에 할애하는 자녀들을 달가워하지 않던 학부모들도 자발적으로 책과 씨름하는 자녀들의 변화에 점차 설득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두 명의 발표자가 하루 50분의 수업을 소화해야 하는 만큼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가지고 적당히 시간을 때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5분의 수업을 위해 두세 배의 공부를 해야 했고, 대체로 그 노력은 수업 시간에 보여주는 다른 친구들의 열기로 보상받았다.

한편 무엇이 학생들의 흥미를 끄는지는 학생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발표자의 성향과 관심사에 따라 이해를 돕기 위한 각양각색의 자료들을 활용하곤 했다. 어떤 친구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을 예로 들며 프랑스 시민혁명의 원인이 되는 당시 시대상을 설명하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중간중간 카이사르 시저가 했다는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명언을 인용하면서 로마 공화정의 후반기 흐름을 지루하지 않게 소개하기도 했다.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수상했을 정도로 수학에 일가견이 있던 친구가 르네상스 시대에 발생한 인문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가 실린 미술책을 가지고 온 날은 특히 인상 깊었다. 수학, 과학 등 자연 과학의 힘을 빌려 대상의 실제 모습을 강조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의 대표적인 예로 보여주면서 인문주의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넓혀가고 있었다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수업에 익숙했던 우리들이 모든 걸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고 준비해야 하는 새로운 분위기의 교실에 적응할 수 있었던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실수를 하거나 부족하더라도 선생님이 우리를 무시하거나 무안을 주지 않으라는 믿음이 그것이었다. 선생님은 추가 설명이 필요하거나 설명에 오류가 있을 때에만 첨언을 하는 정도로 최소한으로 개입하곤 했다.

절대로 수업시간에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가지고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경우도 없었다. 학생들 누구나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발표자가 되어 스스로 성장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도울 수도 있었다. 우리는 모두가 몰랐던 친구들의 세상을, 그리고 자신의 세상을 끊임없이 넓혀가고 있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겠지만 20여 년 전인 당시에도 우리의 세계사 수업은 상당히 획기적이었던 모양이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학교 선생님들까지도 종종 수업 참관을 왔던 기억이 난다.

지켜보는 눈이 생겼다고 해서 특별히 더 잘하는 학생을 발표자로 세울 필요는 없었다. 그만큼 그때의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선생님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나만의 행복을 발견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행복한 삶, 행복한 사회는 교육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덴마크 교사들이 바라본 교실 밖과 안의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실은 학생들이 거쳐 가는 삶이라는 긴 과정의 일부였다. 학생들 각자가 자기 인생의 주체로,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긍정적인 자기 인식을 키우며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공간이었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닌 존중하고 이해해야 할 젊은 어른으로 대한다.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삶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고, 학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우리가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며 교육자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개탄하는 동안, '교실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은 뒤로 밀려났다. 그런 가운데, 덴마크의 교사들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교실에서 꾸준히 교사와 학생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향하는 교육 흐름을 감안한다면 엄격한 질서가 지배하는 예전 교실의 잘못된 가치관과 관습을 대물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생이 없는 교실에서 교사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들이 사라지고 학생들만 있는 교실도 제 기능을 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학생들은 성장을 위한 다양한 자극과 도움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교사 역시 학생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삶을 한층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사회의 일부인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인간 대 인간의 교류에서 출발해야 한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해 귀센스텐 귐나시움의 정치, 역사 교사인 안데르스 슐츠는 학생들을 '젊은 어른'이라고 표현했으리라. 다만 학생들을 존중하고 대우하면서도 교사로서 일정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절묘한 균형'을 빼놓지 않는다.

이 특별한 저울추는 교실마다 다른 지점에서 멈추는 만큼 끊임없이 학생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덴마크 교사들은 이러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학생이었던 나는 어느덧 중년의 초입에 접어들었으니 세계사 선생님도 오래전에 교직에서 물러나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계시리라 짐작된다. 아주 가끔 세계사 선생님이 생각날 때가 있다. 솔직히 그때 배운 것들은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세계사 수업이 다가올수록 커지던 설렘, 수업 시간 내내 반짝임을 잃지 않던 친구들의 눈빛은 생생하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교실 뒷자리를 지키고 계시던 선생님도.

선생님은 그 뒤로도 행복한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계셨을까, 어느 순간 아니면 점점 의욕을 잃어버리진 않으셨을까. 만약 선생님의 도전이 멈췄다고 해도 실망하고 싶지는 않다. 20년 전에는 교사 한 사람의 꿈틀거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 교실 안에도 '삶을 위한 수업'이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는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아이들이 있는 덴마크 교실의 장점을 배우고, 이를 우리 교육 현실에 적용하자는 사회적 공감대로 발전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다. 우리 안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소중히 키워, 우리만의 방식으로 '삶을 위한 수업'이라는 꽃을 피워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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