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왜 늦가을에 존 레논을 떠올리게 될까?

앨범 속의 존 레논
▲ 가을의 노래 앨범 속의 존 레논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쌀쌀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이 되면, 나는 언제나 존 레논을 떠올린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 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10여년 전부터일 것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존 레논이 가을의 정취를 노래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가을의 우수와 쓸쓸함을 노래하는 존 레논. 이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살았던 시대상황이, 그렇게 한가한(?) 노래를 하도록 허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늦가을에 존 레논을 떠올리는 이유는, 그가 네 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날짜가 12월 8일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지나면 존 레논이 죽은 날이 다가오고, 그럼 또 한해가 지나가는 것이다.

물론 죽은 존 레논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때가 되면 열심히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 가사를 음미하고, 그는 왜 그렇게 일찍 죽어야만 했을까, 생각한다. 이런 의문에 대한 특별한 답도 없다. 그런 행동을 나는 거의 10년 가까이 반복하고 있다. 그러니 이건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의식인 셈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 사람처럼 치열하게 싸워본 적도 없다. 그가 사망했던 1980년에,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했다. 이런 내가 그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해마다 이 맘때가 되면 그를 생각하는 걸까.

그것은 존 레논이 1971년에 발표한 노래 이매진(Imagine) 때문이다. 팝 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라디오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여러 차례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가 깔린 부드러운 멜로디, 그 위로 겹쳐지는 존 레논 특유의 비음이 섞인 목소리. 가사를 이해하기 전에는 나도 이 노래가 그냥 평범한 사랑 타령인 줄만 알고 있었다.

내가 그때까지 존 레논에 대해서 그만큼 무지했다는 이야기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영미권의 록음악에 빠져있었지만, 당시 나의 취향은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였지 결코 비틀즈는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이매진'이 나오면, '이런 노래도 있구나, 듣기 좋은데'라고 생각한 것이 전부다.

뮤지션에서 반전운동가로 변한 존 레논

존 레논의 일생을 다룬 책들
▲ 가을의 노래 존 레논의 일생을 다룬 책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이매진'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은 영화 <킬링 필드>를 보고 난 다음이다. 이 영화는 캄보디아 현대사의 한 부분을 미국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왜곡해 버린 결과물이지만, 적어도 마지막 장면 만큼은 내 기억에 남아있다. 헤어졌던 두 기자가 서로 만나서 끌어 안는 장면에 바로 '이매진'이 흘러나온다.

그때도 몰랐었다. 왜 그 장면에서 이 노래가 나와야 하는지, 이 노래가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 부분에 삽입된 것인지. 그때부터 '비틀즈 이후의 존 레논'에 대해서 관심을 두었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라고 말하는 존 레논은 지금 생각해도 신선한 충격이다. 그는 다른 어떤 노래에서보다도 '이매진'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과 철학, 몽상가적인 기질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질수록 그는 참 극단적인 인생을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삶을 생각할 때면 '존 레논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성공한 뮤지션에서 급진적 정치인으로, 반전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변한 모습도.

미국 대선에서 닉슨이 승리를 거두자 "우리는 닉슨조차도 이길 수 없어!"라고 말하고는 알코올에 빠져들었던 그의 모습도. 그리고 죽을 때까지 비틀즈의 동료였던 폴 매카트니와 화해하지 못했던 것까지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끊임없이 싸웠다는 점이다. 그렇게 극단적이었기에 죽음 또한 그런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존 레논을 총으로 쏘았던 데이비드 채프먼은 철창으로 갔고, 존 레논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음모 이론이 세상에 떠돌았지만 나에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존 레논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음악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나에게 존 레논은 일종의 화두였다. 그 사람처럼 치열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세상을 향해서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내 귓가를 울린다. 휴대폰 통화 연결음도 '이매진'으로 설정했고,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언제나 그의 죽음을 생각한다.

존 레논이 죽고 나서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가 바라던 세상은 아직도 요원하다. 많은 것이 변했으나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그대로인 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8일은 다가올 것이다. 그럼 나는 열심히 그의 노래를 들을 테고, '해피 X마스 Happy Xmas(War Is Over)'의 가사를 음미하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는 물론 평화롭고 행복할 테지만, 아직 세상에는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존 레논의 노래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노래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듣는 사람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는 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도 그런 희망이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나의 가을' 노래 응모



태그:#존 레논, #비틀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