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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샨르우르파에서 역시 버스를 타고 디야르바크르로 향합니다. 이번에 타는 버스가 일정상 마지막으로 타는 버스입니다. 나머지 일정에서는 다행히 기차 노선이 있어서, 모두 기차를 이용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터미널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꽤 넉넉한 시간을 두고 숙소에서 나왔습니다. 다행히 별 지연 없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덕에 출발까지 꽤 시간이 남았습니다. 버스는 오늘도 늦었고, 출발 예정 시간보다 30여 분을 더 기다린 끝에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가 늦어진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샨르우르파로 들어올 때도 그랬지만, 디야르바크르로 가는 길에도 종종 검문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잔다르마(Jandarma)라는 군사경찰이 버스에 올라와 승객 모두의 신분증을 확인합니다.

불평을 좀 했지만, 검문과 그로 인해 늦어지는 시간을 나쁘게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튀르키예의 동남부 지역은 그리 안전한 지역이라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외교부에서는 샨르우르파, 디야르바크르 등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을 3단계 '출국권고'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나머지 지역은 1단계 '여행유의' 지역인데 말이죠.

이 지역이 출국권고로 분류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시리아나 이라크 등과 접경하고 있으니, 상황에 따라 위험에 노출될 수 있겠죠. 하지만 국내에도 위험한 요소가 있습니다. 쿠르드 분리주의자의 존재죠.
 
디야르바크르 성
 디야르바크르 성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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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인은 서남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국가 없는 민족'입니다. 4천만 정도의 인구로, 국가를 가지지 않은 민족 가운데는 가장 많은 수로 알려져 있죠.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튀르키예에 거주합니다. 그리고 이 쿠르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쿠르드인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디야르바크르입니다.

쿠르드인은 페르시아계 민족이지만, 쿠르드어라는 별도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종교는 주로 수니파 이슬람을 믿고 있죠. 튀르키예 밖으로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에 많은 인구가 거주합니다. 각국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죠.

어느 나라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쿠르드인의 처우도 많이 다릅니다. 이라크에서는 쿠르드인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자치정부도 꾸렸습니다. 이라크 대통령을 쿠르드인이 맡은 적도 있었죠. 시리아에서도 내전 중의 혼란을 틈타 쿠르드인이 자치정부를 꾸리고, 미군의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디야르바크르 성 안의 박물관
 디야르바크르 성 안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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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수의 쿠르드인의 거주하는 튀르키예에서는 역사적으로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쿠르드인은 튀르키예의 독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1919년 처음 독립전쟁이 벌어지고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됐을 때, 56명의 참석자 중 22명이 쿠르드인이었을 정도죠.

하지만 튀르키예가 독립한 뒤 쿠르드인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산악 튀르키예인'이라 칭하며 존재 자체를 부정했죠. 튀르키예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 역시, 쿠르드인 문제에서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1971년에는 쿠르드인을 연구하던 학자 이스마일 베식치(Ismail Besikci)가 "튀르키예 민족의 단일성을 해쳤다"며 징역 13년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몇 차례나 체포와 출소를 반복했죠.

폭력적인 탄압에 폭력으로 맞서는 쿠르드인도 있었습니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이 대표적이죠. 무장 집단을 꾸리고 튀르키예 군과 주요 인사에 대한 전쟁과 테러를 벌였습니다. 튀르키예군도 물론 소탕 작전으로 맞섰죠.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년 동안 이어진 대대적인 전투로 4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세력이 많이 축소된 상황이지만, 튀르키예의 PKK 소탕 작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이 출국 권고로 분류된 이유도 알 법하죠.
 
디야르바크르 성
 디야르바크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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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튀르키예는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는 국가입니다. 최근에는 쿠르드인에 대한 탄압도 완화되어가는 추세죠. 쿠르드계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은 한때 튀르키예 의회에서 제3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튀르키예 정부의 입장이 강경한 것도 사실입니다. 2009년에는 쿠르드계 정당이었던 민주사회당이 강제 해산되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인민민주당 역시 해산 위협과 주요 인사들의 체포를 겪고 있습니다.
 
디야르바크르의 시리아 정교회
 디야르바크르의 시리아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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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라는 본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각자의 입장과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민감한 문제를, 겨우 며칠의 경험을 가진 여행자가 손쉽게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요. 쿠르드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짧은 일정의 와중에, 디야르바크르 시내에 있던 시리아 교회에 방문했습니다. 시리아 정교회는 오리엔트 정교회의 하나로, 5세기 칼케돈 공의회부터 가톨릭이나 동방정교회와는 다른 길을 간 종파입니다. 오랜 기간 탄압을 받았지만, 여전히 시리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 소수 종파로 남아 있지요.

시리아와 가까운 땅이니, 디야르바크르에 시리아 정교회가 있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조금 신기한 기분은 들었습니다. 튀르키예에서도 소수민족인 쿠르드인의 땅에, 소수 종파인 시리아 정교회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디야르바크르의 골목
 디야르바크르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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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나오는 길, 작은 골목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모스크 앞 마당에서 축구를 하며 노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교회와 모스크가 있는 골목에서 자라는 쿠르드인 아이들.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짧은 시간을 스쳐가는 여행자에게 남는 것은, 복잡하고 민감한 정치적 문제보다는 그런 한 컷의 장면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튀르키예, #디야르바크르, #쿠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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