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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에서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데니즐리로 내려왔습니다. 거기서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안탈리아로 향합니다. 안탈리아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버스를 타고 하룻밤을 달렸습니다. 16시간 가까이를 달린 버스 여행 끝에 도착한 곳이 샨르우르파입니다.

고된 밤버스 여행에 긴 시간을 써가며 도착한 도시였습니다. 도착하기 전,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아침 길가의 풍경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황량한 바위산과 노란 흙으로 뒤덮인 지형. 여기서는 이스탄불보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나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더 가깝습니다.
 
샨르우르파
 샨르우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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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르우르파는 역사가 깊은 도시입니다. 샨르우르파 인근에는 '괴베클리테페'라는 유적도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9500년 즈음부터 만들어진 일종의 신전입니다. 신석기 초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으로, 확인된 것 가운데에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종교 생활 흔적입니다. 사실 종교 생활을 떠나서도, 이렇게 거대한 유적을 그 시대에 만들었던 흔적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죠.

역사가 아주 깊은 도시인 만큼, 이 도시는 여러 종교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브라힘)의 탄생지가 산르우르파에 있기 때문이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성인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의 탄생지이니, 종교적인 권위로는 빠질 수 없는 도시입니다.
 
아브라함 탄생지
 아브라함 탄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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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태어났던 당시, 이 땅은 아시리아의 지배에 있었습니다. 아시리아의 님로트 왕은 이 해에 태어난 아이에 의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아이들을 무차별로 학살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의 어머니는 동굴로 피신해 아브라함을 낳았습니다. 모세나 예수의 사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영아살해에 대한 전설이죠.

아브라함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지 못했고, 결국 몸종 하길을 통해 이스마일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99세가 된 아브라함은 신의 계시를 받고, 100세가 되어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가 이사악이죠.

신화에서는 이스마일의 자손이 아랍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마일이 집안을 떠난 뒤 사막을 헤메다 우물이 샘솟는 기적을 만났고, 그곳이 지금의 메카였다고 하죠. 이사악은 에서와 야곱을 낳았고,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됩니다. 이 열두 지파가 나뉘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아랍인, 유대인, 사마리아인 모두의 선조가 되는 것이죠. 이 지역에서 탄생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인일 수밖에요. 이 세 종교를 비롯해 유사한 여러 종교를 함께 묶어 "아브라함계 종교"로 칭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 탄생지의 모스크
 아브라함 탄생지의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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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르우르파에는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이 남아 있습니다. 동굴 옆은 모스크와 함께 조성되어 있죠. 성지를 찾아 온 사람들은 동굴에서 나오는 물을 담아갑니다. 동굴 옆에는 연못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연못에도 아브라함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시리아의 우상숭배를 비판하자, 아시리아의 님로트 왕은 아브라함을 화형에 처하도록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을 묶고 불을 지폈는데, 불이 물로 변하고 장작은 물고기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때 만들어진 연못이 바로 이 연못이라는 전설이죠.

연못에는 여전히 물고기들이 살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모스크와 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성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경건하게 기도를 올립니다. 크게 울리는 아잔 소리가 넓은 성역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전설의 배경이 된 연못
 전설의 배경이 된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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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이곳은 아브라함의 탄생지가 아닙니다. 한참이나 성지 이야기를 하다가 말하기는 어색하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아브라함의 탄생지가 샨르우르파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라는 인물 자체가 여러 집단의 설화가 모여서 만들어진 인물이기도 하고요.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이 탄생한 곳은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es)'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갈대아(Chaldea)'는 바빌로니아의 남부 지역을 말합니다. 바빌로니아 남부에 있는 우르(Ur)라면, 사실 너무 당연하게 수메르 문명의 도시 '우르'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탄생지도, 지금은 이라크의 영토가 된 우르 유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지요.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이설이 있습니다. 수메르의 우르 외에도 여러 곳이 아브라함의 출생지로 지목되었죠. 원래 '우르파(Urfa)'라 불리던 샨르우르파도 유력한 후보지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설은 아브라함의 탄생지는 이라크의 우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탄생지에서 보이는 튀르키예 국기
 아브라함 탄생지에서 보이는 튀르키예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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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샨르우르파가 성지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탄생지를 방문하기 위해 샨르우르파를 방문합니다. 성지를 만드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고증보다는, 그저 사람들의 발걸음일 때가 더 많지요.

동굴에서 물을 받고, 한참이나 기도를 하는 사람들 뒤에 저도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아브라함이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떤 기적을 행했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지에서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간절함과 정성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저는 불신자입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성지에 와 기도를 올리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일으킨 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연못도 제게는 그저 전설의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지를 찾아온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폄하할 생각도 제게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이 어디냐는 아닙니다. 신화 속 인물이 발을 딛고 선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그 치열한 논의에도 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발릭크르 연못과 모스크
 발릭크르 연못과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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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만드는 것은 신화를 역사로 만들려는 무의미한 노력이 아닙니다. 성지를 향한 발걸음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겠지요. 그들의 신앙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신화의 현장이 어디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제 눈앞의 사람들이 어떤 마음일지가 궁금합니다. 그들이 어떤 기도를 올리고 있을지가 더 궁금합니다. 그 신앙과 정성으로 지금 이 순간, 현재에서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불신자인 제가, 경건한 기도를 올리는 신앙인의 발걸음을 굳이 따라가보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튀르키예, #터키, #샨르우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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