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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도저히 안 되겠다. 그래 결심했어. 커피라도 끊어보자."

나는 수십 년 간 커피 헤비드링커였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투 샷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시작했었다. 커피는 마시면 마실수록 진하게 마시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점심을 먹고 나서도, 그리고 회의를 한다거나 미팅을 할 때 혹은 아이디어가 풀리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커피를 찾았다. 그것도 진한 투샷으로.

커피는 반드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일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하루가 멍한 날이 많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일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하루가 멍한 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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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많이 마시거나 오후 3시 이후에 커피를 마신 날은 아무래도 잠이 잘 오지 않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커피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보다는 잠을 좀 덜 자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불면증이 심해졌다. 새벽 두시 즈음 어김없이 깼고 다시 잠들기는 힘들었다. 어영부영 새벽을 보내고, 일어날 시간 즈음에 다시 졸려지는 악순환의 연속.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일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하루가 멍해지고 주말만 기다려지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분명히 잤는데 잠을 자지 않은 것처럼 몸과 정신의 피곤이 계속 쌓여만 갔다. 잠만 다시 잘 자게 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것저것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결국 인생의 매우 큰 즐거움이었던 커피를 안 마셔보기로 결심했다.

근 20년 넘게 매일 마시던 것을 한순간에 끊다니. 이게 과연 될까? 싶었지만 불면의 고통은 커피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대수일까 싶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겠어.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하는 수밖에.'

일단은 커피를 대신할 몇 가지 대용품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커피의 맛은 조금 포기하되 분위기는 잃을 수 없다'라는 나만의 타협이었다.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각종 허브티부터, 임신 중에 마셨던 그래뉼 타입의 보릿가루 오르조, 루이보스티, 작두콩 차 등 뭔가 커피와 비슷한 느낌의 차들을 차례로 구매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곳에 커피를 연상시키는 것들을 차례로 치워버렸다.

커피가 아니어도

처음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커피 대신 보릿가루를 커피처럼 진하게 타서 먹으니 맛은 커피와 같지 않아도 느낌이나 분위기가 비슷해서 만족감을 주었다. '그래 이정도면 무난하게 끊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나의 착각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오후의 나른함은 커피를 마셨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곤함이 자기 전에 찾아오면 좋으련만. 쏟아지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느라 에너지를 엄청 써써 그런지 하루가 더 피곤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밤에 잠이 더 잘 왔는가 하면, 조금 나아졌다는 느낌 정도였지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커피를 마신 세월이 얼마인데 하루 이틀 끊었다고 당장 변화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커피를 안 마셔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다시 마실 명분은 충분하다'라는 명분을 얻었다. 이왕 시작한 것 미리 구매한 차들이 아깝기도 하니 적어도 당분간은 커피 안 마시기를 지속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커피 안 마시기는 어언 한 달에 이르렀다. 사실 커피를 전혀 안 마시진 않았다. 너무 마시고 싶으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어느 날은 아침 일찍 한 잔 마시기도 했다. 자몽에이드를 마시기도 했다. 커피 대신 여러가지 차와 음료를 마시다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것은 '꼭 커피가 아니어도 괜찮았다'는 것이었다.
 
너무 졸린 날엔 자몽에이드를 마셨다.
▲ 자몽에이드 너무 졸린 날엔 자몽에이드를 마셨다.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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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대신 마시기 좋은 오르조 티
▲ 커피 대신 보리차 오르조티 커피 대신 마시기 좋은 오르조 티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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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거나 차가운 보리차를 진하게 마셔도 커피처럼 구수했다. 은은한 맛이 주는 미각의 즐거움을 진한 커피를 마셨을 때는 깨닫지 못했다. 허브티를 마실 때는 물의 온도와 티백을 꺼내는 시간에 따라 맛이 오묘하게 달라져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시간과 온도를 찾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다양한 차들도 커피 못지않게 즐거움을 주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세상에 차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사무실의 스테디셀러 둥굴레차를 시작해서, 대나무 잎 차, 쑥차, 솔잎차, 팥 차 등등 세상에는 내가 아직 마셔보지 못한 차들로 가득했다.
 
커피 대용 티백들
▲ 커피 대신 마시는 티백들 커피 대용 티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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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한 오해

수면도 확 좋아졌다는 느낌은 잘 모르겠다. 여러 번 깨던 것이 조금 줄기는 했다. 그런데 효과는 의외의 곳에서 일어났다. 효과가 나타난 곳은 바로 피부였다. 아무리 크림을 발라도 건조했던 입가의 피부가 요즘은 세안 후에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당기질 않는다. 확실히 커피가 내 몸 안의 수분을 빼앗아 가고 있었던 것은 확실했나 보다.

비록 원했던 결과를 적확하게 얻은 것은 아니지만, 꼭 커피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이렇게 마셔 볼 차들이 다양하다는 사실이 참 즐겁다. 내가 생각했던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과값이라 더 의아하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더 즐거우면 된 거지.

단지 커피를 끊었을 뿐인데 맛을 즐기는 즐거움이 더 깊어졌다. 해보기 전까지 나는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던가. "커피 아니면 안 돼. 커피는 절대 못 잃어!"라고. 그러나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인생에는 내가 오해하고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제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봐야겠다(예를 들면 샐러드 먹기 같은 것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커피끊기, #노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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