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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휴~ 집 가고 싶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먹어 갈수록 결투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의 에너지(H.P)가 한 대 맞을 때마다 쭉쭉 줄어드는 것처럼 힘이 달린다. 평일 오후 세 시경, 특히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엔 몸의 에너지가 몽땅 소진된 느낌이다.

카페인이나 비타민 등등을 들이붓고는 다시 한번 일에 집중한다. 하나 하나 오는 일들을 버티며 쳐내다 보면 퇴근 시간은 꼭 오고야 만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딱 퇴근할 힘만 남겨놓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옷 갈아입고 침대로 직행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워킹맘은 퇴근은 두 번째 출근이다.

집에는 배고픈 두 김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차려 먹거나 시켜 먹을 법도 하지만 다른 식구들도 회사에서 학교에서 이미 에너지가 소진되어 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끈다. 근 1시간 걸려 저녁을 준비하는데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저녁 먹은 것들을 치우고,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이를 케어한다. 준비물은 없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은 없었는지 숙제는 없는지 등등을 체크하고 해치운다. 그러고 나면 어느덧 자야 할 시간이다. 허투루 보낸 시간은 없는 것 같은데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없다.

워킹맘은 시간이 없다

나는 차분하게 책을 읽고 싶다. 한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어본 것이 언제인가 싶다. 매일 간단한 그림도 하나씩 그리고 싶다. 기사도 쓰고, 일상을 차분하게 블로그에 기록도 하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아무것도 할 틈이 없다. 무엇을 하든 쫓기듯 하게 된다. 온라인에서 매일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는데 지난주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뭔가 몰두해서 일을 할 절대적 시간이 없다. 마치 이 세대 같다. 바쁜 일상 때문에 시간 쓰는 일도 릴스같이 짧게 짧게 쪼개진다. 그러다 보니 몰입이 되질 않는다. 뒤돌아서면 "어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하면서 금세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일쑤이다.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하고, 해야 할 일만 하고 살다 보니 삶이 재미가 없고 무기력해진다. 그렇다고 더 틈을 쪼개가며 머리 아프게 뭔가를 하고 싶지가 않다. 집중도 잘 되지 않고 뭔가 진행되는 것 같지가 않는다.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힘드니 주말 밖에 답이 없는데, 금쪽같은 주말에는 그저 쉬고만 싶다. 뭔가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보태고 싶지 않다. 누워서 뒹굴뒹굴 잉여로운 시간을 누리는 것,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누워서 시간을 보내보니 주말이 순식간에 삭제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평일 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까 주말엔 좀 쉬어도 돼'라고 생각해 보지만 내가 한 일들은 몽땅 '회사 일' 아니면 해도 해도 티도 안 나는 집안일이니까 더 내 손에 쥐어지는 게 없는 느낌이다. 주말은 나에게 자괴감만 남겨놓고 사라져 버린다.

퇴사를 하고 나면 나에겐 뭐가 남아 있을까? 문득 두려움도 몰려온다. 뭔가 준비도 하고 나 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꼭 마련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내가 사용 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의 몇 시간. 시간을 뚝 떼어서 마련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시간이 없다. 결국 주말도 부지런해지기로 결단을 내렸다.

쪼개진 시간을 덩어리로 만들어보니 

중학생이 되고 아이의 논술 학원 시간 수업이 토요일 오전 8시 40분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시간을 선택하는 대신 늦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역시 쉬운 일은 없다. 통으로 마련한 이 시간이 늦잠보다 더 뿌듯하기를 바랄 뿐이다.

토요일도 평일처럼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나는 학원 옆 카페에 자리 잡았다. 선물 받은 쿠폰들로 커피와 푸드를 찬찬히 주문하고 집중하기 좋은 자리를 빠른 속도로 스캔한다. 노트북을 충전시킬 콘센트가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은 필수이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켰다
▲ 8시 43분의 카페 카페에서 노트북을 켰다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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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리를 잡고 일에 몰두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더러는 공부를 어떤 사람은 독서를, 또 다른 사람은 노트북을 켜놓고 몰두를 하고 있다. 나도 재빠르게 자리를 잡고 컴퓨터를 켜고 밀린 글도 쓰고, 이렇게 기사도 쓰고 책도 읽었다.

생각보다 길었던 세 시간

그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을 보니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회사 일 말고 긴 시간 동안 연속해서 무언가를 집중해서 한 시간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참 오랜만이었다.

집에서는 집중해서 뭘 하다가 "아 참" 하면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잊기 전에 물건을 사기도 하고, 그러다가 뉴스를 보기도 하고 하면서 딴 길로 경로 이탈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른 장소 다른 환경에서 집중해 보니 집중도 높아지는 것만 같았다.

힘들면 바로 누울 수 있다거나 집중력을 흐트러트릴 만한 다른 것들이 없으니 더욱 집중이 잘 되어 진도가 잘 나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몸 뒤틀림이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잠시 후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내가 나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시키는 엄마가 될 수 없다"라는 일념으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여성이 일에 몰입하고 있다.
▲ 일에 몰입하기 카페에서 여성이 일에 몰입하고 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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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인 것 같다. 릴스 같은 쪼개서 쪽 시간을 사용하는 것보다 영화 한 편 보는 것처럼 통으로 붙여서 집중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것.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일의 능률이 올랐다.

한 가지 일에 꽤 긴 시간 집중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누리는 시간이 그동안 메말랐던 나의 정신적 허기를 가득 채워주었다. 앉아만 있기에 지겹다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장소에서 다 활동(예를 들면 운동)으로 채워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법에 익숙해져 보려고 한다. 잠을 좀 줄이더라도 토요일 오전 시간은 꼭 나를 위한 집중시간으로 사용해야겠다.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꼭 카페가 아니더라도 집중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이 시간들이 쌓이면 나이가 들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쓸 수 있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 쌓아가는 이 시간들이 인생을 잘 살게 해주는 비결이 되어 줄 것만 같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집중의시간, #워킹맘의시간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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