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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회사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옥상 텃밭 상자를 분양했었다. 상추나 깻잎, 고추 같은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한동안은 잘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직원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텃밭이 오래 갈 리 없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텃밭을 꾸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여름에는 흙이 마르지 않게 물도 수시로 줘야 하고, 잠시 신경을 못 쓴 사이 온갖 병충해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열매를 바라며 심어놓은 씨앗이 발아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씨앗으로 키우기 힘들까 싶어 사온 모종도 흙의 환경이 달라져서인지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회사 생활이란 어떤가. 출근해서 퇴근시간까지 업무를 잠시라도 놓치면 퇴근시간이 미뤄지기 십상이고, 긴장의 끈을 잠시 느슨히 하는 점심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일에 몰두하다가 겨우 한숨 돌릴 퇴근 무렵에야 겨우 옥상 텃밭이 생각난다. 

회사 옥상 텃밭
 
회사 옥상 텃밭 상자에서 채집한 방아잎
▲ 도시텃밭생활자 회사 옥상 텃밭 상자에서 채집한 방아잎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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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텃밭에 물 주러 가야하는데... 이미 퇴근 시간이 임박했네, 내일은 꼭 가야지!"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이미 텃밭 식물들은 저 세상으로 가버린 후인 것이다. 게다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명 마이너스의 손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는 식물을 선물 받아 키워도 며칠 후면 비실비실, 좀 더 있으면 버석하게 말려버리곤 했다.

그러니 '시간도 없고 바빠 죽겠는데 텃밭 상자가 웬말이냐, 회사 일이나 잘 하자' 하며 신청조차 하지 않았었다. 역시나 직원들의 옥상 텃밭은 실패로 돌아갔다. 옥상의 텃밭 상자들은 관상수와 함께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어느 날, 잠시 숨 돌리러 올라간 옥상에서 나는 옥상을 점령하고 있는 그 식물을 만났다. 평범한 오후였다. 너무 졸려서 커피 한 잔을 사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황량할 줄 알았던 텃밭 상자에는 무언가 가득 심겨 있었다.

"아니 이게 뭐지? 뭔가 낯설지가 않은데" 하며 옥상을 점령하고 있던 식물의 이파리를 뜯어서 향을 맡는 순간, 그 냄새는 나를 어린 시절 어느 순간으로 데려갔다. 이 녀석의 정체는 바로바로 '방아잎'이었다.

엄마는 보양식으로 꽤 자주 추어탕을 끓여주셨다. 된장을 풀어 얼갈이 배추를 듬뿍 넣은 추어탕에는 잘게 썬 방아잎과 제피(산초)가루와 간마늘, 청색 홍색 고추 다짐을 넣어서 먹곤 했다. 포근한 된장 국물에 알싸한 방아와 제피 향이 너무나 독특했다. 강하고 독특해서 잊어버리기 힘든 그 잎을 나는 서울 한복판 회사 텃밭 상자에서 얼마전 다시 조우했다.

다시 만난 방아
 
옥상텃밭 방아잎
▲ 방아잎 옥상텃밭 방아잎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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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는 참 신기하다. 너무나도 잘 자란다. 번식력도 탁월해서 텃밭 전체를 점령한 수준이다. 이렇게 잘 자라주면 나야 너무 고맙지. 순간 내가 마이너스의 손인 것도 잊을 지경이다. 게다가 회사 사람 그 누구도 저 식물(植物)이 식물(食物)이라는 것을 모른다. 말 그대로 옥상은 '나만의 비밀 정원'인 것이다.

그날 이후 너무 졸린 오후, 가끔 일회용 커피컵을 들고 몰래 옥상엘 간다. 심지 않았는데, 물도 안 주는데도 너무나 잘 자라는 방아 잎을 수확하러 가는 것이다. 이파리를 하나 둘씩 따서 컵을 차곡차곡 채운다. 서울 산지 직송 방아잎을 수확하며 '집에가서 잘게 썬 방아잎을 듬뿍 넣어서 부추전이나 호박전을 부쳐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덤이다.

하나씩 둘씩 채워지는 컵을 보면 식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즐거움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 맛에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 것이었구나' 하면서 머릿속에 뭘 좀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회사 옥상에 자리잡은 방아에서 핀 꽃
▲ 방아꽃 회사 옥상에 자리잡은 방아에서 핀 꽃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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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아는 슬슬 꽃이 피기 시작했다. 앞으로 조금만 지나면 꽃이 지고 한살이가 끝나버릴 것이다. 아쉬움이 밀려오기 시작하지만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심지 않은 방아는 또 다시 머리를 내밀고 올라오겠지.

한편으론 '본격적으로 정원을 확장해 볼까' 하는 발칙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러다 비밀 정원 때문에 퇴사도 못하겠네'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생각은 다시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혹시 당신은 직장인인가? 지금 너무 졸린가? 만일 그렇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서 옥상엘 가보시길 바란다. 어떤 식물이 몰래 자라고 있을지도.
 
일회용 커피컵에 담은 방아잎
▲ 방아잎 채취 일회용 커피컵에 담은 방아잎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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