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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국정농단 법관(임성근)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헌정사상 최초였다.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비마다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미뤘던 국회의 헌법상 의무를 이행하자"면서 "이번 탄핵소추의 진정한 실익은 정쟁으로 시끄러워 보이는 와중에도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설계된 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민생 문제가 다급한 시점에 생뚱맞게 법관 탄핵이 웬말이냐"며 "정히 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면 첫 대상은 김명수 대법원장"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이번 탄핵소추안의 발의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1심 무죄판결 이유를 살펴보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판사라는 이유로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에 편승해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임 판사의 행위가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성근 탄핵소추, 설득력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오른쪽)과 이탄희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별관에서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하고 있다.
▲ 헌정사 첫 법관 탄핵소추, 의결서 헌재 제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오른쪽)과 이탄희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별관에서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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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세월호 7시간' 등 관련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검찰이 수사 후 기소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항소,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한 임 판사는 2월 말에 퇴직이 예정돼 있어(재임용을 신청하지 않아서) 국회 탄핵소추안을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판단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 중 6인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법관 탄핵이 결정되고, 탄핵결정으로 파면된다. 헌재가 탄핵 결정을 하면 5년간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고, 변호사 등록이 금지된다.

그동안 대한민국 헌정사에 있어서 법관 탄핵은 두 차례 시도됐으나 모두 소추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1985년 12대 국회 때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한 불공정 인사가 논란이 돼 탄핵소추안 처리를 시도했지만 부결됐고, 2009년 18대 국회 당시 신영철 대법관의 광우병 촛불집회 재판 개입 문제로 민주당이 탄핵안을 발의했지만 시한이 지나 자동폐기됐다.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두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법관 길들이기' '법원 겁박'이라면서 강력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당사자인 임 판사는 법사위원회에서 조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소추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부끄럽다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끄러움을 남긴다. 우선적으로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법관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법률적으로 완전한 양심을 가지고 행동해 왔기 때문에 탄핵이 이뤄질 만한 일이 없었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탄핵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결국 이것은 국회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법관들의 비위가 여러 차례 문제가 됐었고, 일부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유죄판결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비위가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법원 판사들의 제식구 감싸기식 태도로 무죄판결을 받았던 적도 여러 차례다.

그럼에도 법관에 대한 탄핵이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회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사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가 제역할을 다하지 못한 게 된다. 심히 부끄럽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탄핵소추의 대상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으로 '이들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헌법 제65조 제1항)'. 검사의 경우 검찰청법 제37조에서 탄핵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법관을 탄핵의 대상으로 규정한 이유는 법관이 기소돼 재판을 받더라도 동료 법관들에 의해서 무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검사도 동료 검사들에 의해서 제식구 감싸기 태도로 기소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검찰청법에서 탄핵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검사나 법관의 경우 구체적인 법률 위반이 아니라 하더라도 헌법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당연히 탄핵 사유가 된다고 해석된다.

아무튼 검사나 판사의 경우에는 다른 공직자에 비해 자신의 법률적 지식이나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법의 심판을 회피할 가능성이 크므로 탄핵의 사유를 폭넓게 해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 개입'이라는 혐의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자료사진).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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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판사는 2015년 이른바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후 공소가 제기됐다.

뿐만 아니다. 2016년 프로야구선수 도박 사건 약식명령 재판을 정식 재판으로 회부하려는 판단을 막고 약식으로 사건을 종결하도록 한 혐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 재판 당시 선고 이후 등록된 판결문에서 양형 이유를 수정하고 일부를 삭제하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임 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임 판사의 행위가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것이어서 '부적절'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징계대상일 뿐 형사처벌의 대상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는 법관의 재판업무에 개입하는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임 부장판사의 (당시) 지위나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인 이유로 직권남용죄의 형사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범죄구성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어서 "이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무죄이유를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합의부의 재판은 합의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고, 재판장의 의사와 독립돼 있어 재판장이 혼자서 이를 결정할 수도 없다. (임 판사의 요청을 받은) 부장판사들은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신의 법적 판단 및 합의부 내의 논의 등을 거쳐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재판부와 합의해 결정을 했다"면서 "임 부장판사의 요청과 부장판사들이 소속된 재판부의 재판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됐다. 다른 사안도 담당 판사가 동료 판사들의 의견을 듣고 독립적으로 결정을 하는 등 임 부장판사의 요청과 약식명령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무죄이유를 설명했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임성근 판사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확정된 사실관계에 대해 법률적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부만 문제가 된다.

판결 이유를 자세하게 읽어보면 재판부가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면서도 마지못해 임 판사의 행위가 헌법정신에 반하는 것임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임성근 판사의 행위가 판사로써 적절한 행위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행위임을 넉넉하게 인정할 수 있다.

'수오지심'이 필요할 때
 
지난 4일 부산고등법원 모습.
 지난 4일 부산고등법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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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국회가 탄핵소추안 발의를 하지 않은 것 자체가 삼권분립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국회에 주어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사법부를 견제할 유효적절한 수단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가지는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를 바란다면, 대한민국이 법치주의를 추구하는 정상적인 국가임을 인정받고 싶다면, 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되레 늦은 감이 있다. 검사가 기소를 하자마자, 최소한 1심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자마자, 곧바로 탄핵발의를 했어야 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관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추진하는 탄핵소추안 발의를 정치적 논리를 들어서 반박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당도 탄핵소추안 발의를 미루고 미루다가 임 판사 임기종료를 1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못해 탄핵소추안 발의를 한 것이라 이 역시 부끄러운 대목이다.

앞으로도 다른 법관들에 의해 임 판사와 같은 행위가 반복돼도 좋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법관들은 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두고 수오지심(羞惡之心,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결국 임성근 판사에 대한 '때늦은 탄핵발의'는 우리 헌법이 가지는 가치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우를 범했던 것이다. 사실 모두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정범씨는 법무법인 민우 변호사입니다.


태그:#임성근탄핵소추, #임성근부장판사탄핵소추, #법관최초탄핵발의, #판사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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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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