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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학습으로 지친 아이들을 위해 담임은 다양한 활동들을 화상채팅 수업과 접목시킨다.
▲ 파자마 입고 화상채팅 수업하는 날 가정학습으로 지친 아이들을 위해 담임은 다양한 활동들을 화상채팅 수업과 접목시킨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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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 학교에 근무할 때 학생들의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상점제'와 '벌점제'가 있었다.

학교는 교사에게 아이가 착한 일을 하면 파랑 카드와 플러스 점수, 못된 행동을 하면 빨강 카드와 마이너스 점수를 주도록 했다. 카드와 점수를 모아서 긍정적 강화로 상을 주기도 하고, 부정적 강화로 수행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반영하는 과목도 있었다. 각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다.

개인적으로 벌점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교사가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 그것도 부정적인 행동들을 골라 점수화 시킨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결과적으로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벌점 카드를 애용하는 교사와 거의 발급하지 않는 교사가 생기고, 교사 각자의 교육적 판단과 소신을 지키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벌점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교사는 고고한 척 더러운 일에 손 안 담그려는 얌체족처럼 여겨지기 쉬운 구조였다.

학생들도 벌점 카드를 주는 교사와 실랑이를 벌였다. 교사의 판단이 일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며 학생 서로간에 고자질도 했다.

결과적으로 반교육적인 행태였다. 학생간의 경쟁과 반목을 야기하고, 학생과 교사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교사와 교사 간에도 미묘한 불화를 낳았다.

나도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근무했으니 교사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권이 가을 낙엽 땅바닥에 나뒹굴듯이 짓밟힌 교육현장에서 고육지책으로 고안해낸 방법들이란 걸 현장의 교사가 모를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활동은 학생들의 부정적 행동을 개선하는 과정까지도 교육적이어야 한다.'

올바른 교육의 방향은 알고 있었지만, 좋은 대안 방법은 찾아낼 수가 없었다. 나 또한 경쟁과 비교를 밑거름으로 삼는 한국 교육을 받았고, 경쟁과 비교로 치닫는 사회에서 살아왔는데 대단한 아이디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설령 좋은 묘안이 있었다고 해도 한국의 학교엔 이런 문제들을 탁상 위로 꺼내고 교사들 간에 서로 의견을 나눌 자리도 여유도 없었다. 위로부터 쏟아지는 지시와 명령과 전달 사항 받아 적기도 빠듯한 교직원 회의 시간이 전부였다.

한국에서 찾지 못한 답, 호주에서 찾다
  
과제는 교사만 확인할 수 있고, 과제에 대한 코멘트도 언제나 개별로 보내준다.
▲ 담임 교사의 글쓰기 과제에 대한 코멘트 과제는 교사만 확인할 수 있고, 과제에 대한 코멘트도 언제나 개별로 보내준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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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런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지?'


내가 한국 학교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의식들에 대한 교육적 해결책들은 아이가 다니는 멜버른 초등학교에 가면 지천이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등교하는 날(funny dress up day, 호주는 초등부터 교복을 입음), 교사가 숨긴 초콜렛을 찾는 날(Easter egg hunting day), 점심시간에 전교생이 갖는 피크닉 날(lunch time picnic day) 이라고 적힌 세 개의 유리 통이 학교의 교장실 앞에 있다.

학생이 교사들로 부터 칭찬 토큰을 받으면 교장실 앞으로 달려가 유리 통에 집어 넣고, 학기 말에 가장 많은 토큰이 쌓인 항목의 이벤트를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즐긴다. 토큰제를 통해서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모색하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학교 공동체에 기여하도록 격려 받고, 노력의 결실을 모두 함께 축하하고 의미를 나누는 방식이다.
  
호주의 교육현장에서는 가능한 한 비교와 경쟁을 배제한다. 한국에서 살다 온 나는 '이 사람들은 경쟁이란 용어 자체를 알고 있나' 의아할 때가 많다. 근본적으로 시스템 자체가 비교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학급의 구성, 교사의 담임 제도, 교실의 배치 등이 다양해서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 된다. 한국에서 책으로나 이론속에서만 접했던 모든 형태의 학급 구성과 교사 배정과 교실의 형태가 존재하는 곳이다.

전교생이 300명 남짓한 작은 학교들은 두 학년 통합 학급을 선호한다. 1-2학년, 3-4학년, 5-6학년을 반반씩 한 교실에 배정하고 그 안에서 교사가 수준별 수업을 한다. 한 학급을 두 명의 교사가 요일 별로 나눠 담임을 맡기도 하고, 교감과 짝을 이뤄 일년간 수업을 하는 학급도 있다. 교실의 크기도 다양해서 넓은 공간에 두 반이 수업을 하기도 하고, 신입 교사가 오면 경력 많은 교사와 두 학급을 통합해서 가르치기도 한다. 학교의 상황과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매년 조금씩 변화를 꾀한다.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글쓰기 활동을 위해 3-4학년 담임들이 역할극을 만들어 구글클래스룸으로 보내 줌.
▲ 의자가 화났어!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글쓰기 활동을 위해 3-4학년 담임들이 역할극을 만들어 구글클래스룸으로 보내 줌.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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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야기된 온라인 원격 수업은 호주 교육이 가진 다양성과 자율성을 담은 집합체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의 가정 학습을 시키다 보면, 처음 보는 4학년 교사가 화면에 등장해서 읽기 활동을 가르치고, 안면만 알고 있던 4학년 교사가 설득하는 글쓰기를 담당한다. 3-4학년 담임들이 함께 역할극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힘겨워 하는 글쓰기 활동의 흥미를 높인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경쟁과 비교를 지양하는 교육 활동은 고스란히 구글 클래스룸의 화면에서 재현된다. 학생이 제출하는 과제는 교사들 만이 확인할 수 있고, 과제에 대한 평가 또한 개인적으로만 제공한다. 즉, 학생 개개인의 발달과정 안에서만 과제의 성취 여부를 점검하고 이에 맞춰 코멘트를 보낸다. 학생이 경쟁이나 비교를 조장하는 문장을 구글 클래스룸에 올리면, 교사는 바로 문장을 삭제하고, 삭제 이유와 함께 바람직한 표현을 알려 주어 온라인 또한 교육의 장임을 확인시킨다.

호주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에겐 함께 '어우러짐'을 기반으로 한 교육활동이 일상의 기본 디폴트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롭고 아름다울 거란 기대로 오늘의 힘겨운 가정학습을 견딘다. 즉, 좋은 시스템을 세우는 일이 교육 개혁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온라인 수업, #원격수업, #코로나 팬데믹, #호주이민,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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