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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를 마친 후 나서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를 마친 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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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사리 열린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6일 마무리됐지만, 조국 파동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청문회가 끝날 무렵이던 6일 밤 11시경, 검찰은 조국 후보자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피의자 조사도 없이, 그것도 청문회 도중에 기소한 것이다. 조국 후보자의 갈 길이 청문회 이후 혹은 장관 임명 후에도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조국 파동이 이처럼 거센 것은 딸의 대학입시 과정에 공정치 못한 부분도 있고, 재산을 포함해 그를 둘러싼 것들이 그의 기존 이미지와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가 강력한 검찰 개혁을 표방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나 알 수 있을 법한 내밀한 정보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흘러나오고 그것이 후보자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있는 점들을 보면, 만약 그가 검찰 개혁을 표방하지 않았더라면 법무부장관 되기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앞으로 검찰 개혁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향후 누가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되든 간에, 그가 검찰 개혁을 표방한다면 조국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의 파동을 만나게 되리라는 어두운 전망을 낳게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국회 법제사법원회에서 열린 청문회 초반에 조국 후보자는 박지원 무소속 의원의 질의를 받고 순간 울컥 했다. 박 의원이 "두 개의 조국이 있다"면서 "한 조국은 주옥 같은 글을 쓰는 좋은 조국이고, 한 조국은 너무나 많은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이라고 말하자, 후보자가 그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최근 몇 달 간 해외에 나가 국내 뉴스를 전혀 듣지 못한 한국인이 6일 오전 귀국해 그 장면을 시청했다면, '두 개의 조국'에 울컥 하는 후보자를 보고 '조국 민정수석이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나?'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울컥함은 그의 개인적인 앞날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검찰 개혁이 향후 얼마나 험난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검찰 개혁이 앞으로 한동안은 조국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이 김인회 변호사와 함께 2011년에 쓴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서문에 "참여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 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상정하고 시도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물론 노무현 정부가 검찰 개혁을 최초로 시도한 것은 아니다. 위 문장은 본격적 검찰 개혁을 처음, 그리고 제대로 시도한 정권이 노무현 정부라는 의미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은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위 서문에 "시도했다"라는 표현이 있다. '추진했다'고 하지 않고 굳이 '시도했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것이 시도로 끝난 측면이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은 재벌보다 힘이 약하지만 검찰 개혁은 재벌 개혁보다 어려운 한국적 현실을 반영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원고와 피고가 법정에서 대등한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지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법제도 하에서는 이 상식이 민사재판에서만 통하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원고 역할을 하는 검사는 피고인과 마주보는 자리에 있어 시각적으로는 피고인과 대등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검사는 하늘, 피고인은 땅인 이유

실제로는 검사가 하늘이고 피고인은 땅이다. 검사는 피고인을 수사할 수 있고, 법원에 영장을 신청해 구속하거나 압수·수색할 수도 있다. 조국 후보자와 관련한 압수·수색에서도 나타났듯이, 피의자가 되기 전 단계인 사람에 대해서도 그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검사는 피고인과 대등해야 하지만, 한국의 검사는 실제로는 판사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식민 검찰의 유산이 대한민국 검찰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하다>는 지적한다. 이 책은 "우리 형사 시스템의 뿌리는 일본에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식민지 조선의 형사사법은 국가 우위의 기본 시스템에 더해 일본인 우위, 검찰 우위, 경찰 우위의 사법이었다. 일본은 조선형사령을 제정해 검찰과 경찰이 구속·체포·수색·압수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에서는 판사에게만 인정되던 권한이었다. 조선인은 법관의 영장 없이 경찰에서 10일, 검찰에서 10일을 구속당했다."

일제가 군대 및 경찰과 더불어 검찰의 권능까지 강화한 것은 식민지 한국인들을 보다 쉽게 지배하고 독립운동을 훨씬 수월하게 억압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형성된 검찰 문화가 대한민국 시대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위 책 저자들의 지적이다.

대한민국 검찰 제도의 뿌리인 식민지 시절의 검찰 제도가 일본의 검찰 제도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었다는 지적은 법학계 논문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와 이름이 헷갈릴 수도 있는 문준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 '한국적 검찰제도의 형성'에도 비슷한 설명이 있다.

"일본에 의해 식민지에 이식된 검찰 제도는 식민지의 치안 유지를 위해 국가기관의 권력을 극도로 강화하고 (국가) 기관 사이에 협력적 관계를 설정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따라서 일본의 제도보다도 훨씬 더 왜곡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적 형사사법제도는 법제도상으로는 검사를 위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 2009년 발행한 <내일을 여는 역사> 제36호.

'검사를 위한 천국'이었던 일제강점기 검찰 제도의 기본 골격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 개혁 이상으로 힘든 일이 일제잔재 청산인데, 검찰 개혁을 하려면 일제잔재 청산까지 동시에 추진해야 하니 2배의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검찰이 일제강점기 검찰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달라진 점이 분명히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검사석 위치의 변화다.

법정 입구에서 보면 판사석이 맨 안쪽의 상부에 있고 그 아래쪽의 양 옆으로 검사석과 피고인석(변호인석)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이렇지 않았다. 검사석이 판사석 옆에 있었다. 검사가 판사와 나란히 앉아 피고인과 변호인은 물론이고 방청객까지 내려다보며 공판을 진행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검찰의 위상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검찰석이 아래로 내려온 것은 한국전쟁 휴전 이듬해인 1954년이다. 그해 10월 14일 대법원에 의해 제정되고 당일부로 시행된 '검사 및 변호인의 공판정에서의 좌석에 관한 규칙'에 의해서였다.

이 규칙 제2조는 "법관은 법정 상단에 정면으로 열석하고, 서기관 또는 서기의 좌석은 법관의 정면 중단으로 한다. 검사의 좌석은 법관의 우측 중단으로 하고, 변호인의 좌석은 법관의 좌측 중단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검사석을 피고인석과 대등한 위치로 끌어내리는 '혁명적'인 조항이었다.

이런 상징적 변화에 대한 검찰의 저항이 없을 리 없었다. 규칙 제정 전부터 반발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제정 후에도 저항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규칙 시행 12일 뒤인 10월 26일에는 서울 고검 검사가 법정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일까지 있었다.

그 날짜 <동아일보>에서 소동의 실상을 목도할 수 있다. '또다시 말썽 된 법정 좌석 문제'라는 큰 제목 하에 '검사, 하단(에)서의 입회 거부'라는 소제목이 붙은 기사다. 종전 습관에 익숙해 있는 사건 담당 검사가 공판을 거부한 일로 인한 이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는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생경한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었다.

 
 본문에 인용된 <동아일보> 보도.
 본문에 인용된 <동아일보> 보도.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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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측 반대로 일시 분규를 일으키다가 대법원에서 규칙을 제정함으로써 일단 낙착된 '법정 내에서의 검사와 변호인의 대좌 문제'는 어제 25일 개정된 서울고법 공판에서 서울고검 측 관여검사가 좌석 규칙을 무시하고 '좌석이 하단으로 내려갔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입회를 거부함으로써 다시 문제가 재연되었다.

이날 진헌식씨 사건 공소심 결심 공판은 상오 10시 재판장 사광욱 판사의 주심 아래 서울고법 법정에서 개정되었는데, 개정 직후 관여 (검사인) 김찬수 검사는 '좌석 문제로 이 공판에 입회할 수 없다'는 뜻을 입회서기에게 말하고 퇴정함으로써 검찰 측 논고가 있을 예정이던 동 사건 공판은 진행을 보지 못하고, 부득이 재판관들도 퇴정하여 마침내 (법)정 내에는 피고인만이 남은 채 공판은 연기도 중지도 아닌 정돈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날 서울고검 김찬수 검사는 판사석 아래에 서기를 거부했지만, 그 뒤 대한민국 검사들은 피고인석의 맞은편에서 '새 삶'을 찾았다.

식민지 시절 막강한 검찰 권력이 여전히

이렇게 형식상으로는 검찰이 피고인과 대등하게 됐지만, 대한민국 검찰은 여전히 식민지 시절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경찰에 수사권을 넘기지 않고 소송뿐 아니라 수사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피고인은 검사와 대등한 위치가 아닌 열등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수사권 문제가 겉으로는 경찰과 검찰의 문제 같지만, 실은 피고인과 검찰의 문제 즉 인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같은 불합리를 올바로 조정하자는 게 지금 논의되는 검찰개혁의 목표 중 하나다. 이는 검찰개혁이 다름아닌 국민을 위한 것이고 또 인권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검찰의 라이벌일 수도 있는 경찰 쪽에 힘을 실어주려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번 조국 파동은 그런 검찰 개혁의 앞날에 태풍을 밀어넣고 있다. 누가 법무부장관이 되고 누가 검찰총장이 되든 간에, 조국 후보자가 부딪힌 것 이상의 강풍과 맞딱트리지 않고는 검찰개혁을 표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서글픈 처지에 놓인 진짜 주체는 조국 후보자가 아니라 검찰개혁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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