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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두 형제 산 Morro dois irmãos' 위에서 바라본 파벨라. 다닥다닥 지어진 집들과 파란색 물탱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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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로 가는 길

시내버스는 한 시간 반 가량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해변을 달려 도심 끝 파벨라 입구에 다다랐다. 리우데자네이루에만 800개에 이른다는 빈민촌 파벨라는 대부분 가파른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달동네와 비슷한 모습이다.

길이 좁아 버스는 더이상 다니지 않고 오토바이 기사들이 주민들을 태우고 분주히 오갔다. 중앙차선과 인도가 없어서 여차하면 부딪힐 듯한 길인데도 오토바이들은 아슬아슬 곡예를 하듯 쌩쌩 달렸다. 큰길에서 호스텔까지는 불과 2킬로미터 거리였지만 땡볕에 배낭을 메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금방 속옷까지 땀에 젖었다. 힘들게 올라간만큼 호스텔 발코니의 경치는 좋았다. 눈앞 가득 고요한 대서양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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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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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 호스텔에서 바라본 대서양)

하루 숙소비 1, 2 달러를 아끼기 위해 도시의 끝 산자락까지 찾아든 장기 여행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숙소 분위기는 조금 특이했다. 10인실 방은 반지하방처럼 칙칙했고, 샤워실과 화장실은 자주 물바다가 됐다. 헝가리 여행자 피터씨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밤마다 창문을 모두 열어젖혀 더위와 모기떼를 초대했고, 대부분의 룸메이트들이 새벽 늦게까지 쿵쾅쿵쾅 오가며 환하게 전등을 켰다.

페루 쿠스코에서 오래 머물던 3500원 짜리 숙소가 떠올랐다. 너무 배려가 없는 사람에게는, 내성적이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나도 참다 참다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잠을 자기 위해서, 고요함을 위해서. 같은 공간 같은 시설이라도 룸메이트의 행동에 따라 하루 하루는 크게 달라진다. 게다가 동네의 꼬마들이 놀이터에 오듯이 도미토리에 들어와 침대와 짐을 뒤지고 동전이나 음식 따위를 가져갔다. 도둑질이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파벨라 아이들의 놀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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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의 아이들)

파벨라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길도 좁아서, 며칠 동안은 긴장해서 카메라도 핸드폰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익숙해지고나니 이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서울에서 내가 살던 달동네 반지하와 옥탑방이 떠올랐고, 동네를 비추는 환한 달빛도 서로 닮아 보였다.

"리우 파벨라가 위험하다는데 막상 와서 보니 그렇지 않았어요. 위험은 어디서건 한 순간이니까 여기서는 더 조심해야겠지만요. 이 동네 사람들은 위험하기보다 오히려, 가난하고 어려워도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10일 동안 리우의 저가 숙소 세 군데에 머무는 동안 처음 만난 아시아 여행자 전정표씨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나보다. 하지만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좁고 그늘진 골목길에 모여 앉아 있는 청년들의 시선은 종종 무서웠고, 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커다란 기관소총을 들고 길목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네의 치안을 지키려는 건지, 폭력 조직을 지키려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다행히 여행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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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부딪힐 듯한 길인데도 오토바이들은 아슬아슬 곡예를 하듯 쌩쌩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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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 입구의 가게들)

1200만 리우데자네이루 사람들 중 30퍼센트가 파벨라에 살고, 2억 브라질 인구 중 3500만 명이 월수입 5만 원 이하인 극빈층이라고 한다. 극빈층은 대부분 흑인과 혼혈인이며, 대부분이 백인인 상위 10퍼센트의 사람들이 브라질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빈부격차와 인종 차별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 인류 공통의 문제지만, 더욱 슬프게도, 가난하고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그 정도는 심각하다.

리우데자네이루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1931년에 세워진 예수상이다. 700미터 코르코바두 산 위에 선 39.6미터 높이의 동상. 예수 조각상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라 한다. 2007년 7월 7일 '세계 7대 불가사의' 에 등재되었으나, 브라질 정부와 기업의 선전에 의한 브라질인들의 투표로 인해 선정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입장료가 비싸서 올라가지 않았지만 도시 곳곳에서 언뜻언뜻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운타운의 수많은 홈리스와 이파네마의 새하얀 주택가. 얼기설기 다닥다닥 산자락에 자리한 파벨라와 코파카바나의 고층 빌딩들. 이 도시의 꼭대기에 선 거대한 예수는 두 팔을 벌린 채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낮고 가난한 자리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다는 예수.

라틴아메리카 주요 도시의 산꼭대기에는 어김없이 예수상과 십자가가 서있다. 그것은 사랑과 평화의 상징일까, 식민지와 권력의 상징일까. 세상에는 여전히, 사랑과 나눔보다는 차별과 슬픔이 많다. 푸른 바다와 말 없는 산들은 천 년 만 년 아름답고 조화롭지만, 리우데자네이루 사람들의 삶은 하루 하루 불평등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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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중심가. 국립도서관 앞 아라고스 광장. 지하철 통풍구 위에 널어둔 홈리스들의 옷가지)

안녕 브라질, 안녕 아메리카

다시 배낭을 메고 파벨라 언덕을 내려가, 세 번의 시내버스를 타고서야 공항에 도착했다. 1월 25일 새벽, 8개월 동안의 아메리카 여행을 마치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거리는 아프리카가 더 가깝지만, 식민지 침략국이자 유럽의 관문인 포르투갈로 가는 비행기가 가장 저렴했다.

249일 동안의 아메리카 여행길을 되돌아본다. 33일 동안 미국, 21일 동안 쿠바, 15일 동안 멕시코, 13일 동안 과테말라, 15일 동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15일 동안 콜롬비아, 10일 동안 에콰도르, 45일 동안 페루, 15일 동안 볼리비아, 32일 동안 칠레, 22일 동안 아르헨티나, 13일 동안 브라질.

북미, 중미, 남미의 모든 나라를 여행한 건 아니지만, 되도록 육로를 통해서, 열여섯 나라, 기나긴 길을 지나왔다. 식민지 지배로 인해 신대륙이라 이름붙은 거대한 대륙을, 한 바퀴, 여행하면서,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날까지, 숙소의 브라질 룸메이트에게 휴대폰을 도둑맞을 뻔했고, 중미를 지나 남미에 들어서자마자 대상포진에 걸린 채 모든 물건과 기록을 강도 당하기도 했지만, 다시 건강하게 살아서, 이곳까지 왔다.

온갖 장소에서 수많은 고마운 인연과 친구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자주 잊어버리고 살지만,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 속 뜨겁게 감사하다.

아프리카로 바로 가는 비행편이 비싸서, 계획에 없던 유럽을 거치게 됐다. 유럽, 아프리카, 아라비아, 그리고 다시 아시아.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하고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때까지 꼭 살아서, 그때까지 꼭 활기차게. 지구별을 한 바퀴, 여행하며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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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카바나 해변의 저녁. 비치발리볼을 하는 청년들과 구경꾼들. 수많은 노점과 거리의 악사들. 동그란 공과 선선한 음악이 슬픈 리우데자네이루를 달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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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도 역시 '사람 사는 곳'. 서울에서 살던 달동네 반지하와 옥탑방이 떠올랐고, 동네를 비추는 환한 달빛도 서로 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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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달동네 생활영화인 늘샘. 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자라, 지리산 골짜기 간디학교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스페이스, 늘장, 로드스꼴라,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활동.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노래합니다. 인디언식(式) 이름은 '땅을 치고 춤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