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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현지시간) 다음 방문지인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현지시간) 다음 방문지인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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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조선일보>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만 역설하다가 이제는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제재 완화로 입장이 바뀌었다'면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4일자 <조선일보> '한(韓) 정부의 대북(對北)제재 완화 시도, 더 이상 없어야' 제목의 사설은 지난 11월 30일 아르헨티나 G20정상회담 계기로 열린 한미정상회담 내용을 다뤘다. 이 회담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합의가 나온 점과 문 대통령이 1일 비행기 안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재의 틀 속에서 진행되는 남북협력'을 강조한 데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불과 얼마 전 유럽에선 대북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하고 다녔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 영국에 이런 요청을 했으니 안보리에서 미국을 포위하려는 듯한 모양새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보름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제재 완화'를 논의했다고 한다. '북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전제는 사라지고 '제재 완화' 필요성만 역설해왔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제재 유지'로 말을 바꾼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북핵 폐기를 위해선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설은 지난 10월 ASEM 정상회의 등 유럽순방 시 문 대통령이 여러 나라를 돌며 '대북제재 해제'를 역설하고 다닌 것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북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이라는 전제는 "어느 순간 사라진" 적이 없다.

사설이 예로 든 정상회담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말 바꿨다는 <조선>,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5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마주한 한-프 정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5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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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중부유럽표준시) 엘리제궁 1층 한-프랑스 공동기자회견

문재인 대통령 : "우선 UN 안보리의 제재 결의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UN 안보리의 제재에 대해서는 먼저 충실히 따르고, 그다음에 또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그 틀을 지키면서 남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또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북한이 핵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핵에 의존하지 않고도 북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라는 신뢰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아주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다라는 믿음을 국제사회가 줘 가면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또 빠른 속도로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UN 안보리에서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UN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우리 프랑스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 주십사라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10월 19일 한-영국, 한-독일, 한-태국 양자회담 관련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브리핑 중에서

"문 대통령은 메이 총리에게'적어도 북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비핵화를 진척시킬 경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대북 제제 완화가 필요하고, 그런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가 UN 안보리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메이 총리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통령께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진전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셨다'며 '대통령의 노력으로 한반도에 이전과는 다른 환경과 기회가 조성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11월 14일(싱가포르 시각) 한-러 정상회담 결과 관련 김의겸 대변인 브리핑 중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조처에 진전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좀 더 과감하게 비핵화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러시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 정도만 읽어봐도 문 대통령이 해외 정상들과 대화하며 '북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이란 전제를 빼놓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말 바꾼 건 오히려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현지시간)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내 코디스호텔에서 열린 한-뉴질랜드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현지시간)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내 코디스호텔에서 열린 한-뉴질랜드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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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반이 지나면서 '전제'를 빼버린 건 문 대통령이 아니라 <조선일보>다. 한-프랑스 정상회담 직후 나온 사설의 제목과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에 대북 제재 완화 요청했다 거부당한 문 대통령(<조선일보> 10월 17일자)

"문재인 대통령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UN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정상회담 등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를 봐도 대통령의 말에서 '전제'가 빠진 적은 없다. 지난 1일 기내 기자간담회 발언 내용이 이전과 달라진 것도 없다. 하지만 <조선일보> 사설은 문 대통령의 입장과 발언이 바뀌었다고 했다.

비핵화와 대북제재에 대한 <조선일보>의 논조와 문 대통령의 생각은 확연히 다르다. 특히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어느 단계로 볼 것인가라는 부분이 그렇다. <조선일보>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시설, 핵무기 운반수단 등의 리스트를 미국에 신고하는 일을 '비핵화의 시작'으로 본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이같은 입장에선 국제사회가 북한에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시 제재완화'라는 동기를 부여하자는 문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부정적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견해가 다르면 합리적인 논거를 들어 비판을 하면 된다. 사설이 주장을 담는다는 성질이 있지만 언론사라면 사실에 기반한 논평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를 속이는 일이다. <조선일보>가 어느 순간 '전제가 사라졌다'고 말을 바꾼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전제'를 충실히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들이 남아 있어 '모순'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태그:#조선일보, #비핵화, #말바꾸기,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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