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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캐나다-프랑스-호주

나의 '이민 희망국 목록 순위'였다. 한국에서 북유럽, 특히 핀란드의 교육현장이 한때 큰 화제였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교사였던 나도 시류에 맞춰 핀란드 교육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고, 방송과 기사들을 골라봤고, 이민 희망 국가 목록에서 언제나 0순위에 올려놨었다. 내 아이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아이들이 핀란드식 교육을 받는 세상이 오길 오랫동안 갈망했다.

나의 이상향이었던 핀란드를 포기하고 호주로 온 이유는 북유럽에서 2년 살다 온 지인의 말대로 아시아 이민자들이 너무 적어서 도드라지고,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괴로워하고, 김치를 2주마다 담가야 하고, 춥고 우중충한 날이 너무 길고, 사회 전반적인 문화가 아시아인에게 생경하고 느려 불편하다는 것 때문이다. '이민 생활은 현실'이란 점에서 볼 때, 나의 입맛에 꼭 맞는 교육만을 보고 다른 조건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심한 건강 약자여서 한국에서도 겨울이면 시름시름 앓던 나로선 한국 이민자가 많다는 캐나다 또한 무리였다. 어느 해 10월 초였다. 에어캐나다를 타고 브라질로 가는 중 토론토와 밴쿠버에 잠시 체류했는데, 나에게는 이미 한겨울처럼 느껴졌던 기억이다.

결국 부부가 한 번도 발 디뎌 본 적 없던, 심지어 멜버른이 호주의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른 채 겁 없이 넘어와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로 이민을 했어도 성격상 나름 만족하고 재미있게 살고는 있었을 듯하지만, 멜버른은 광활한 자연과 한국에 비해 인구를 흩뿌려 놓은 듯한 낮은 밀집도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이민자들이 많아서 문화적으로 적응과 생활이 훨씬 수월했다. 살면 살수록 왜 멜버른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를 7년째 거머쥐고 있는지 실감하고 있다.

호주에 거주하는 워홀러(워킹홀리데이 체류자)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 이민자 수를 고려해 볼 때, 호주의 문화, 특히 교육 문화가 한국에 덜 알려진 점은 아쉽다. 멜버른 현지 초등학교에는 한국어를 제2 언어로 채택한 학교들도 존재하고, 대학입시에서 한국어를 제2 언어로 치루는 한국인 자녀들과 현지인들도 존재해서 한글학교에서 대비를 해주기도 한다. 호주사회 시스템의 근본 골격은 유럽(영국)식이지만, 호주 이민 인구 중 아시아 이민자의 수가 유럽 이민자를 웃돈다는 점에서 일상생활에서 이질감이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하는 호주 돌봄교실

한국의 교육이 북유럽을 꿈꾸기보다 초등학교부터라도 호주의 교육 모델을 점진적으로 적용해보면 좋겠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한국의 교육이 북유럽을 꿈꾸기보다 초등학교부터라도 호주의 교육 모델을 점진적으로 적용해보면 좋겠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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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멜버른의 공립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한국의 교육이 북유럽을 꿈꾸기보다 초등학교부터라도 호주의 교육 모델을 점진적으로 적용해보면 좋겠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할 당시, 정치인들과 교육 관련자들이 '선진교육 시찰'로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을 다녀와서 감탄할 만한 자료들을 제시했지만, 막상 현장의 교사들에겐 멀고 먼 이야기들이었다. 교육이 한 사회의 구조와 경제적 여건과 노동 환경을 벗어나 홀로 존재할 수 없는 한,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무상 복지 제도를 실시하는 국가들의 교육제도를 한국이 도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호주 사회의 복지제도는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좋지만, 북유럽의 국가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멜버른의 학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예산 문제로 장애 진단과 조기 개입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대기를 하는 경우가 길고(개인이 전문가를 찾아가면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보조 교사의 인력 충원도 학교가 여러 절차를 거쳐 신청을 해도 원하는 만큼 지원이 안 되고, 부를 가진 사람들은 사교육을 선호하기도 한다. 한 학급/한 교사당 25명가량 정원이 밀집되는 지역도 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돌봄 교실을 확장한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멜버른처럼 정규수업 교사와 별개의 조직으로 운영하는 방법도 고려했으면 좋겠다. 이곳은 바쁜 맞벌이 부부를 위해 초등 돌봄 교실이 수업 전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하고, 방과 후 오후 6시 30분까지 운영된다. 방학 중에도 운영된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해당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주변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함께 수용하기도 한다. 물론 정부가 공통된 지침을 제공하고 감독을 실시하며, 학교운영위원회(school council)에서 운영 여부와 해당 기관(a third party)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선정된 기관에는 돌봄 교실 코디네이터(관리자)가 있고, 그 코디네이터가 학교운영위원회와 협의하여 인력과 커리큘럼, 안내 및 운영비용 등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시스템이다.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도 한국인의 정서와 연결된 지점들이 많다. 아침마다 수업 전에 운동장 한두 바퀴를 돌고 시작하는데, 교사들이 운동을 꺼리는 아이들의 양손에 잡고 운동장도 돌고, 등도 토닥이며 격려도 해준다. 저학년 학생들 중에는 아침마다 교사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 아이들도 흔하다.

모든 학부모가 만족하는 교육 시스템은 아니겠지만, 한국에서 교사로 살다 온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다. 치열한 경쟁과 정답 고르기식 한국 교육에 익숙해진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온 많은 이민자들이 이곳을 '아이들의 천국'이라 부르며, 부모의 현실은 고달파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를 보면 분명 배워야 할 점은 많은 듯하다.

북유럽만큼 세금을 징수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의 납세 청렴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북유럽 수준의 복지는 호주도 한국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넘사벽'인 북유럽식의 교육모델만 보여주며 한국의 교사들을 기죽이거나 학부모들에게 한국의 교육을 한탄하게 만드는 대신, 점진적인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대안적인 방법들을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호주, #멜버른, #호주이민, #핀란드식교육, #호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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