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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끝,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의 달이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했을 졸업. 어릴 적에는 졸업의 주인공으로서 졸업식에 참여했고, 성인이 되어 아이를 낳고서는 졸업식을 축하하는 부모로서 졸업식장을 채운다.

어릴 적 졸업식의 추억은 몇 개의 상장과 꽃다발을 들고 교장 선생님의 축하 인사를 들었던 것, 엄마와 누나와 함께 자장면 가게에 가서 기름진 탕수육을 함께 먹을 수 있었던 것쯤이다.

학창 시절 확연히 달랐던 졸업식 풍경

중학교 졸업식에서는 IMF 여파로 자장면 두 그릇으로 누나, 엄마, 내가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처음으로 샐러드 바가 있는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먹었다. 그것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누나의 은혜였다.

졸업식 후에 핸드폰을 새로 사는 친구, 뷔페를 먹으러 간다는 친구, 그런 친구들은 꽃다발도 자기 얼굴을 가릴 만큼 크고 많았다. 뚜벅뚜벅 교문을 걸어 나가면 초라하게 기다리던 엄마의 허름한 2인승 화물차가 셋을 기다리고 있었다. 옆을 스쳐 지나가던 친구들의 검정 세단은 나를 한껏 움츠러들게 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고, 같이 수학여행 가고, 함께 뛰어놀았지만, 심지어 졸업식도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졌지만, 졸업의 풍경은 확연히 달랐다. 그 순간부터 내 행복의 잣대는 지갑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 있는 가정 경제 수준이었다.

나의 부모가 남들과 똑같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들과 같은 신발을 사지 못하고, 가방을 메지 못하며, 비슷한 수준의 차를 타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왜 그리 살지 못하냐며 철없는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부모님에게도 나에게도 참 아픈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몸으로 체득한 소비 행태는 부모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었다. 아이의 재롱잔치에 갈 때 사탕 꽃다발을 사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겨우 준비한 사탕 꽃다발을 재활용하기 위해 옷장 속에 일년 이상 묵혀두기도 했다.

우리 아이는 이사 오기 전 집 근처 유치원에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집 근처라는 이유로 보냈던 유치원은 명문 사립유치원이었다.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한 달에 30만 원이 넘는 원비를 내야만 했다. 이미 다른 유치원을 알아볼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재롱잔치에 부모들이 모이면 주차장은 외제 차로 가득 찬다. 과거 내가 불편했던 현실을 그대로 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어린 유치원생인 딸은 개의치 않았다. 나도 크게 개의치 않았으나 외제 차와 명품 옷을 걸친 학부모를 이따금 곁눈질했다. 아직도 어리석은 마음이 조금 남아있는 것이었다.

딸의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국지승 작가의 <아빠 셋, 꽃다발 셋>을 읽었다. 너무 뻔한 내용이었으나 유치원에서 스쳐 지나가는 학부모들을 보면서 생각했던 나의 마음을 우리 딸에게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딸의 유치원 졸업식 앞두고 읽은 <아빠 셋, 꽃다발 셋>

국지승 작가 <아빠 셋 꽃다발 셋>
 국지승 작가 <아빠 셋 꽃다발 셋>
ⓒ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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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지승 작가의 <아빠 셋 꽃다발 셋>에 등장하는 탄탄 건설 김 과장, 튼튼 소아과 김 원장, 오케이 택배 김 기사는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의 아빠다. 세 아빠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틈을 내어 아이에게 줄 꽃다발을 준비한다.

유치원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에 늦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는 세 아빠는 다른 모습으로 일을 하지만, 아빠의 일터에 놓인 아이의 사진을 보며 쉬기도 하고, 꽃다발을 준비하는 모습 등에 가족을 사랑하는 똑같은 마음을 볼 수 있다.

유치원에 도착한 아빠의 눈앞에는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모습이 보인다. 그 사이로 아빠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아빠들은 사회에서 맡은 바가 다양하지만,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마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등장하는 세 아빠는 모르겠지만 그림책에서 서로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김 원장 소아과에 택배를 배달한 김 기사와의 조우, 김 과장 회사에 택배를 배달한 김 기사와의 우연한 마주침은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이 서로 돕고 만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딸의 졸업식
 딸의 졸업식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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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은 의 유치원 졸업식이었다. 오전 시간이라 참석이 불투명했지만, 시간을 내어 참석했다. 그리고 우리 딸만 바라보았다. 딸의 노래를 듣고, 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자장면 대신에 스파게티를 먹었다. 그리고 8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딸에게 앙증맞은 책가방을 선물했다. 책가방 만큼만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도록 딸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할 생각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모르지는 않으나 그 마음과 동일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헤진 교복을 입는다고 해서 아무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2인승 화물차를 탄다고 해서 나를 깔보는 친구들은 없었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남을 함부로 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행동으로 발현되지는 않았으나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마음속으로 깔보거나 무시했던 기억이 분명 있다.

그러나 세상 수많은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들이다. 어떤 방식으로 사랑받든 그 사랑의 크기나 진하기 정도를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비교에 시달리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멋진 어른이 되길 기대한다.


아빠 셋 꽃다발 셋

국지승 지음, 책읽는곰(2017)


태그:#황왕용, #국지승, #아빠 셋 꽃다발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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