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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정 정서나 인지적 장애 특성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교육, 홍보 등 필요한 법적·정책적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37조)

"모든 정신질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최적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아니한다."(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정신장애를 근거로 한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차별"은 기본권의 동등한 향유를 저해하는 모든 분류, 배제, 혹은 선호를 의미한다...모든 정신장애인들은 가능한 한 지역사회 내에서 생활하고 일할 권리를 가진다."(유엔 정신장애인 보호와 정신보건의료 향상을 위한 원칙)

위 국내외 법규범에서 보듯, 정신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그 어떤 인구 집단보다 심한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신장애인의 소행이라고 사후적으로 단정 짓기 일쑤다.

이렇게 모든 정신장애인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미신이 날로 고질화되고 있다. 그러니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접근하고 참여할 수가 없다. 정신장애인들 모두를 시설에 가두어버리고 싶은 게 이 주류사회가 감추고 있는 욕망일지도 모른다.

정신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그 어떤 인구 집단보다 심한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정신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그 어떤 인구 집단보다 심한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 p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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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UN은 악명 높은 한국의 정신장애인 격리 시스템을 개선하라고 권고하였고, 정신장애 당사자들도 이 문제에 조직적으로 대응하였다. 다행히, 올해 5월 30일부터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상당수 정신장애인들이 격리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로 복귀할 발판이 마련되었다. 실제로, 국가입퇴원관리시스템(www.amis.go.kr)을 보면 법 시행 후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227명의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동에서 퇴원하였다.

이렇게 퇴원한 정신장애인들과 기존에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던 정신장애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향유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며 휴일에는 가족과 나들이를 가고 필요할 경우 지역사회 복지시설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생활 영역에서 정신장애인은 때론 은밀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설립된 복지시설들조차도 관련 조례를 통해 정신장애인을 공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현실은 어처구니가 없다. 

장애인 배제하는 복지시설들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이 청소년이면 "청소년수련시설"을 이용하여 또래와 우애를 쌓고 몸과 다음을 단련하여 듬직한 성인이 될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신장애인이 노인이라면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교양 교육과 취미생활을 통해 건강한 노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복지관"을 통해 종합적인 복지서비스를 지원받고 사회교육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문화의집"을 통해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체험하며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있다.

이 시설들의 설치 근거와 기능은 아래 표와 같다.

각 기초단체별로 정신장애인을 배제하는 조례에 의해 설립된 복지시설에는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청소년수련시설", "문화의집" 등이 있다. 이 시설들의 설치 근거와 기능은 아래 표와 같다.
 각 기초단체별로 정신장애인을 배제하는 조례에 의해 설립된 복지시설에는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청소년수련시설", "문화의집" 등이 있다. 이 시설들의 설치 근거와 기능은 아래 표와 같다.
ⓒ 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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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정신장애인들이 이런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해당 지역 조례가 정신장애인의 복지시설 이용, 사용, 입장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청소년수련시설, 문화의집 사례만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에서 보듯이 『대구광역시 중구 종합사회복지관 설치 및 운영 조례』  제5조는 '정신질환자'의 복지관 이용을 제한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제5조(이용의 제한)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자는 복지관의 이용을 제한 할 수 있다.
1. 전염성질환자, 정신질환자
2.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
3. 그 밖에 구청장이 복지관 이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대구시 중구 이외에도 부산시 강서구⦁동구⦁중구, 대구시 동구⦁서구⦁북구, 충북 증평군⦁진천군, 충남 아산시⦁천안시, 경북 경산시 사회복지관 조례에도 동일한 규정이 있다.

또 『부산광역시 강서구 노인종합복지관 설치 및 운영 조례』에도 '정신질환자'의 시설 이용을 제한하고 심지어 퇴관을 명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제3조의2(시설의 이용) ③부산광역시 강서구청장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는 시설 이용을 제한하거나 퇴관을 명할 수 있다.
1. 전염성질환 또는 정신질환이 있는 자
2. 타인의 안전 또는 공공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3. 회원증 발급 없이 시설물을 이용하는 사람
4. 그 밖에 시설이용자 중 복지관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이 같은 규정이 포함된 노인복지관 조례를 제정한 자치단체는 부산시 동구, 대구시 서구⦁달서구, 강원 태백시⦁홍천군, 충북 옥천군⦁음성군⦁제천시⦁진천군, 충남 아산시⦁예산군⦁천안시, 경북 예천군⦁청도군⦁칠곡군도 포함된다.

청소년수련시설 관련 조례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인천광역시 서구 청소년수련시설 설치 및 운영조례』 제5조를 보자.

제5조(수련시설의 사용 등) ②관리자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 시설 사용을 제한하거나 퇴장을 명할 수 있다.
1. 정신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자
2. 타인의 안전 또는 공공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3. 그 밖에 수련시설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인천시 서구뿐 아니라 부산시 기장군, 대구시 서구⦁수성구, 광주시 서구, 강원 홍천군, 충북 진천군, 충남 보령시, 전북 고창군⦁무주군⦁부안군⦁익산시, 전남 장흥군, 경북 경산시⦁경주시⦁봉화군⦁상주시⦁안동시⦁영천시⦁예천군⦁울진군⦁포항시, 경남 고성군⦁의령군⦁진주시⦁합천군 청소년수련시설 조례에도 이런 규정에 들어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의집' 조례를 보자. 『경상남도 양산시 문화의집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17조는 '정신질환자'의 시설 이용을 제한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제17조(이용자의 제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읍면동장은 이용자의 사용을 제한 할 수 있다.
1. 전염성 및 정신질환자
2. 시설 또는 기물을 파괴 훼손할 우려가 있는 사람
3. 공공의 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는 사람
4. 기타 읍면동장이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양산시 말고도 강원 양양군⦁태백시, 충남 아산시, 전북 무주군⦁임실군, 전남 여수시, 경북 영주시, 경남 김해시⦁산청군⦁양산시⦁창원시 문화의집 조례에도 동일한 규정이 들어 있다.
서울시, 경기도, 대전시, 울산시, 세종시, 제주도 조례에서는 이런 차별 조항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복지시설 관계자들의 입장은?

자주 인용되는 아프리카 속담으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다양한 기반시설을 이용하고 지역 내 마을 공동체, 다양한 조직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사회안전망의 하나인 복지시설 "이용권리"는 모든 시민에게 주어지는 보편타당한 권리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정신장애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지역사회 문화와 복지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이들이 복지시설을 더 필요로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단지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설 이용에서 배제되고 있다. 자치법규로 특정한 주민의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조항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신장애인들을 차별하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왜 이러는 걸까?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는 해당 복지시설을 대표하는 한국사회복지관협회,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측에 질문했다. 정신장애인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차별조항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이런 조항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하지만 "관리자가 외부일정으로 바빠 의견을 줄 수 없다", "의견 없음으로 처리하라" 등 회피성 답변만 돌아왔다.

그래서 복지시설 종사자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봤다. 어느 종합사회복지관 종사자 A씨는 정신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지만 이용이 어려운 서비스도 있다고 응답했다. 가령, "이용자가 정신질환을 가진 '사례관리 대상자'일 경우 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만일 정신질환자가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문제행동을 한다면 타인의 이용권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용제한 규정을 활용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조례에 배제하는 규정을 명문화한 것은 옳지 않고 타인의 이용에 피해를 주는 경우 운영위원회 등을 소집하여 회의를 거친 뒤 이용 제한을 하는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노인종합복지관 종사자 B씨는 "그런 문제점을 깊이 고민을 해본 적은 없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 누구라도 공공질서를 해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분이 있다면, 상담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을 도모하겠다"고 했다. 이어서 "이는 정신질환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라도 타인의 이용에 불편을 끼치는 문제가 지속되었을 때 관련 위원회를 소집해 이용제한을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수련시설에 근무하는 안전관리 책임자 C씨는 의견을 구하자 "개인적으로 차별이라고 생각하고, 관련 법규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기관 운영상 안전관리의 측면에서 볼 때, 만일 발생할지 모르는 아주 적은, 만 분의 1의 확률이라 하더라도 안전사고의 원인이 정신질환자의 돌발행동이라면 이에 맞는 조례의 보완도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의집 관계자 D씨는 "문화의집이 전국 100여개이고 소속 지자체와 각 부서가 달라 조례 내용의 확인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문화의집 관련 조례는 제정연도가 오래되었는데, 예전 조례가 그대로 남아있어 관련 지자체의 자정이 필요하다"도 했다. 

정신장애인의 존엄성과 권리가 보호되는 나라이길

이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배제하는 근본 요인은 정신장애인을 비이성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신장애인을 비이성적이고 미성숙한 인격체,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복지시설조차 이들의 이용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규정을 조례에 담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기본적 권리가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의 영역에서조차 배척되는 현실 앞에서 참담함을 느낀다. 이 같은 법규는 마땅히 개선되어야 한다. 정신장애인의 존엄성과 권리도 다른 시민들과 동등하게 보호받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태그:#정신장애인, #복지관, #이용불가, #장애인차별,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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