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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은 브라질이고, 홀로 지내시던 친정 엄마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지근 거리의 오빠집에 머무시니 굳이 명절날이라고 찾아뵙지 않아도 되었다. 날이 갈수록 명절에 둔감해진 나는 설날 언저리란 것도 모르고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휴가 시작 전날, 오후 8시경 애를 재우다 함께 잠이 들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문 옆에 인터넷 서점 로고가 박힌 박스가 놓여있고,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스르르 닫히는 엘레베이터 속으로 택배 기사의 형체는 사라졌다.

이미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야근을 한다던 남편도 아직 귀가 전이었다. 시집, 그림책, 에세이집 몇 권은 '마음의 양식이 아닌 마음의 짐'이 되고 말았다. 명절 휴가 중 읽지 않아도 될, 밤 10시에 배달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책을 주문한 내가 죄인 같았다.

'저녁 식사는 하셨을까?', '내 택배가 마지막이었을까?', '내일은 몇 시에 다시 출근을 하실까?'

그 뒤로 택배기사들의 고달픈 일상이나 과로사에 대한 기사들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배달 건수에 따라 수입이 책정된다는 점, 새벽에 나가서 밤이 깊어서야 퇴근한다는 점, 빠른 배달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독촉으로 부인이 간단히 먹으라고 싸 준 점심도 못먹고 온다는 뉴스 기사들은 넘쳐났다.

업종만 다를뿐 야근을 밥먹듯 하는 남편의 신세나, 아침 8시경 출근해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던 내 신세나 별반 달라 보이지도 않았다.

배달 기사가 과로로 사망하는 사회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드라마 <감자별> 중 한 장면.
 드라마 <감자별> 중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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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먹고 충분히 잠 잘 권리' 따위가 대한민국 노동자들에겐 사치임을 깨달은 후 나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 쪽을 택했다. 대한민국 교사에게 당연하게 요구되는 장시간의 노동을 감당하기에 내 체력은 역부족이었다. 밤 8시까지 야간 수업을 하는 날은 복도가 출렁거렸고, 수시로 위경련이 왔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한 다음 날은 호흡곤란이 와서 3층에 있는 교무실에 올라가는 일조차 버거웠다. 어느 순간 과로사로 '픽' 쓰러져 갓난애를 '엄마없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보다는 평생 월세나 전세살이가 낫다고 판단했다.

지쳐보이는 택배기사에게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천천히 배달하셔도 되는 물건입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주문서에 메모를 남기거나, 택배기사가 탄 엘레베이터가 올라오는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 재빨리 물건을 받아오는 정도였다.

반면에 일년이 넘는 호주 멜버른 생활 중 택배기사가 오후 5시가 넘어 방문하는 경우는 없었다. 배송 당일 몇시 경에 물건이 도착할 것이란 택배기사의 친절한(?) 문자 한 통을 받아본 적도 없다. 한국처럼 부재중인 경우 물건을 어느 곳에 보관할 것인지를 묻는 택배기사의 문자 서비스를 기대한다면 이곳에서의 삶은 우울해질 것이다.

멜버른에선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배달까지 보통 3~4일이 소요되고, 수령자가 부재시에 택배기사는 지역에 있는 물류보관소에 물건을 보관시킨다. 부재 중인 가정의 각 우체통에 달랑 안내용지 한 장 넣어두면 택배기사의 임무는 끝이다. 손바닥 만한 종이에는 물류보관소의 주소와 운영 시간 그리고 언제까지 물건을 찾아가라는 최종 시한이 적혀 있다.

'내가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 누군가의 일상과 가정을 파괴할 수 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난 삶은 오히려 홀가분하다. 상대에게 지나친 친절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행위가 전염병처럼 돌고돌아 결국 나와 내 가족이 요구당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에선, 벌어 먹고 사는 일이 덜 비참해도 되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국의 집배원이 일터로 복귀를 못하고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한 날, 점심 식사중에 초인종이 울렸다. 몇 번 만나다 보니 가벼운 대화도 나누게 된 택배기사 J가 "Hi, how are you doing?" 안부를 묻는다. 한국에서 가족이 보내준 택배를 들고서.

갑자기 수많은 질문들이 입안을 뱅뱅거렸다.

"너네 나라도 집배원이나 택배기사가 과로사로 죽기도 하니?"
"밤 10시까지 배달해 본 경험 있어?"
"밥은 제때 먹고 다니니?"
"일에 지쳐 자살충동을 느껴 본 적은 있니?"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들은 차마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대신 '미안해' 유서와 함께 세상을 등진 한국의 배달원에겐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미안해 하지 말아요. 당신은 단지 나쁜 나라에 태어났을 뿐이예요."


태그:#집배원 사망, #사회적 타살, #멜버른의 택배기사, #야근없는 사회, #과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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