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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학가는 때아닌 국립대학교 통합 논란으로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각 9개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교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매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방거점국립대학교를 통합하여 가칭 '한국대학교'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연합 체계를 구성하는 계획에 9개의 거점 국립대학교(경북대, 강원대, 경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각 대학은TF(Task Force)를 구성하고 8월 말까지 교육부에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연합 대학은 구체적인 계획이라기보다 구상에 더 가깝지만, 대략 그 내용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UC; 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UC시스템과 같이 연합대학을 구성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여러 대학교가 하나의 대학으로 합쳐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UC시스템 아래에서 각 대학은 여러 캠퍼스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통합적으로 운영된다. 가령 연합대학을 가칭 '한국대학교'라고 부른다면 현재 부산대학교는 '한국대학교 부산캠퍼스', 경북대학교는 '한국대학교 대구캠퍼스'로 불리게 된다. 다만 신입생은 한국대학교에서 공통으로 선발하며, 학생들은 각 캠퍼스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물론 연합대학 체제와 관련해서 아직 확정된 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국립대학 연합 네트워크를 구성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지방거점대학교들의 통합 움직임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연합대학 체제에 대한 반대 여론

그러나 이와 같은 연합대학 구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우선 부산대학교를 비롯한 경북대학교 등에서는 벌써부터 연합대학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연합대학 정책 자체에 대한 불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연합대학 정책으로 자신들에게 미칠 피해 때문이다.

전자의 이유는 연합대학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불분명하기 때문인데 이는 정책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사안이다. 반면 후자의 이유는 지방거점국립대학교 내부의 서열(혹은 경쟁)에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이를테면 소위 말하는 '입결'이나 인지도가 타 국립대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국립대에 다니는 학생이 연합대학으로 발생할 하향평준화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같은 지방거점국립대학교라도 입학 성적이 각 학교마다 다르기 때문에 하향평준화에 대한 우려는 설득력이 있다. 특히 수능을 다시 쳐서 다른 국립대에 입학한 학생들(재수생)은 이러한 이유에서 연합대학 구상을 더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몇몇 사람들은 후자의 이유를 두고 지방거점국립대학교 안에도 서열화가 나타난다고 비판하면서 연합대학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서열의식을 가진 지방거점국립대학교 학생들을 비판할 일만은 아니다. 사실상 서열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더군다나 졸업한 학교가 갖는 이름의 가치(name value)를 중요하게 바라보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아무리 국립대 연합 구상이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정책이라 한들 목적에 부합하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피해는 학생들이 입게 될 것이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에 학생들의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와 걱정은 별개로 학생들이 분개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생들은 연합대학 소식을 언론보도로부터 전해 들었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사이에 각 국립대들은 8월까지 보고서를 제출하겠다고 서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일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는 연합대학 구상과 관련한 입장 발표에서 "학생회 또한 들은 바가 전혀 없는 사안을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되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아직 8월 말까지 보고서를 제출하는 '준비단계'이므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향후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이 모르는 사이에 일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각 지방의 중소형 국·공립 대학교들도 연합대학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이들은 '지방거점'에 포함되지 못한 국·공립 대학교들이 지방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대학연합에서 배제되어 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방거점국립대학교'라는 표현도 엄밀히 따지자면 그 지역 안에서 나름의 패권과 위상을 지녔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고, 이런 지방거점 대학들이 뭉치면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의 다른 국·공립 대학이 말라죽게 되고 또 다른 대학 서열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거점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지방거점국립대학을 제외한 다른 국립대학들은 모두 각자 입장에서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은 하향평준화와 정책이 실패할 경우 발생할 문제를 걱정하며, 중소 국·공립대학들은 정책이 성공할 경우 지역 중심과 그 주변 지역 사이에서 차별이 발생할 문제, 이른바 "지방 안에 또 다른 지방이 생길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하여간 연합대학은 성공적일 것이라 예측하든, 실패할 것이라 예측하든 나아갈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연합대학은 성공할 것인가

연합대학이 서열화를 막을 수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존재한다. 본인 역시 연합대학이 학벌의식에 기반을 둔 선입견을 제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본인이 재학 중인 부산대학교도 4개의 캠퍼스(부산 캠퍼스, 밀양 캠퍼스, 양산 캠퍼스, 아미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데 모든 캠퍼스가 본교와 똑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묘한 선입견이 존재한다. 다행히 교내에서 이런 차별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옅어지고 있지만, 통합 초기에는 알게 모르게 진통이 심했다. 추후 어떠한 방식으로 연합대학을 구성할 구체적인 안이 나올지 모르겠으나 국립대 연합 이후 가칭 '한국대학교' 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차별이 있을까 두렵다. 이를테면 한국대학교 ○○캠퍼스 학생들이 △△캠퍼스 학생들을 무시하던가 말이다.

학교가 본격적으로 학생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할 때 학생들이 호응을 해줄지도 의문이다. 당장 국립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여론만 봐도 그렇다. 부산대학교 같은 경우 작년 9월경 '국립 연합대학 추진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아 해당 안건이 부결되었다. 당시 국립 연합대학 추진 방안은 부산대학교가 부산지역 내에 있는 국공립대학과 연합한다는 계획이었다. 대학 구성원들의 반대로 연합대학에 참여하는 대학이 하나둘씩 빠져나간다면 국립대 연합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국립대 연합 계획을 강제로 집행한다면 교내 민주주의의 손상과 더불어 통합 초기에 더한 진통을 가져올 것이다.

지방거점국립대들의 연합을 통해 지방 이탈과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막을 수 있을지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단순히 9개의 국립대학을 묶는다고 해서 지방 불균형을 해소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연합대학 계획과 더불어 다양한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보고서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의 준비 단계에 있으니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연합대학 구상 하나만으로 대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방거점국립대학교 연합 구상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면 대학연합을 통해 국립대의 수준을 끌어올림으로써 지방과 수도 사이의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간혹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고 학생들이 지방에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미 서울을 중심으로 대학 서열화가 견고하게 굳혀진 시점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만으로 학생들의 지방 이탈을 막기는 힘든 일이다.

따라서 지방거점국립대학교 연합 체제를 독자적인 별개의 정책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정책의 내용과 성공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세력 통합식으로 국립대가 힘을 합치면 서울 소재 대학들에 맞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발상은 금물이다.

짧은 제언

지방거점국립대들의 연합이 이루어진다면 학생 1인당 지원금이 1600만 원에서 2100만 원까지 끌어올려 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정도 규모의 지원이면 무상교육도 가능해질 정도라고 한다. 다만 정말 학생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에 실질적인 지원이 맞는지는 더 정밀한 검토와 세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아직 교육부가 국립대 학생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은 '검토 중'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연합대학이 추구하는 목표가 서열화된 대학 구조 해소와 지방 국립대의 경쟁력 강화라는 점에서 이 같은 공동의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많은 연계 및 보조 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연합대학에 참여하지 못하는 중소형 국공립대학교를 위한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중소형 국공립대학교는 연합대학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대학 정책에서 소외받을 가능성이 높다. 가능하면 각 지역의 특색에 맞춰 지방 대학을 특성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합대학 계획은 각 학교 구성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만약 각 지방의 국립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상태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정부의 주도 하에 연합대학이 추진된다면, 이 같은 원칙은 더욱 지켜져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 만큼 충분한 여유와 시간을 가지고 길고 넓게 보면서 나아가야 한다. 대학 구성원들의 지지, 특히 학생과 교수들의 지지와 신뢰 없이 연합대학은 성공하기 어렵다.


태그:#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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