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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직장을 다니고 있던 시절, 내가 책임자로 있던 부서 내에 자리 하나가 비었고 국장은 본인과 가깝게 지내던 타부서의 인턴을 인터뷰하라고 했다. 그의 포트폴리오는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물어는 보고 싶었다. 질문은 두 가지, 50mm 렌즈의 F-stop 그리고 반민특위.

첫 번째 질문은 사진가로서의 기술적 상식이었고, 두 번째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개인의 견해가 아닌, 역사책에 쓰여 있는 사실에 대한 물음이었다.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20대 후반의 청년은 "열심히 하겠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인터뷰는 끝났고 며칠 뒤 국장은, 나 그리고 내가 속한 부서의 아시아지역 담당 책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런 불만을 '강하게' 제기했다.

"도대체 사진기자라는 직업과 '항일투쟁가'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본인이 답하지 못했던 표준렌즈 조리개에 관해서 그 젊은이는 국장에게 어떻게 '보고'했을까? 일제 식민지 시절 일제에 협조하여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들을 조사, 처벌하기 위해 1948년 제헌국회에서 만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항일투쟁가 정도로 알고있던 청년.

1917년.

# 장면① 식민지 시절 항일조직 결성을 시도하던 중 한글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 발각되어 구속되었던 음악가는 1964년 가족들과 함께 서베를린에 정착한다. 1965~1966년 이미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였던 그는 오랜 친구를 만나고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1963년 북한을 방문한다. 이 일로 그는 1967년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어 서울로 송환(이른바 '동백림 간첩단 사건')된다.

하지만 그는 200여명의 유럽 음악인들이 탄원서를 내는 등 국제 예술계의 도움으로 1969년 2월 석방된 후 1971년 서독으로 귀화한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으며 한국 정부는 그의 음악을 금지했다.

2006년 1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동백림 (동베를린) 사건이 박정희 정권 시절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과장·확대 해석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 경남 통영에서 성장한 현대 음악 작곡가 윤이상

# 장면② : 100여 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그는 일본 유학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어 27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사망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출간된다. - 청년 시인 윤동주.

# 장면③ :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제의 만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한 남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던 '투사'들은 그의 적이었다. 그는 귀국 후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지내며 남조선로동당에 입당한다. 이후 여수·순천 사건 연루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정보국에 남조선로동당의 실체를 증언한 후 사형을 면한다.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참전한 남자는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어 18년간 남한을 '통치'하는 독재자 대통령이 된다. 며칠전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의 부친. 그의 일본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 - 박정희.

박정희, 윤동주 그리고 윤이상은 모두 1917년 생이고, 올해는 이들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윤이상 예술여행
▲ 윤이상 예술여행 윤이상 예술여행
ⓒ 윤이상 예술여행 준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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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0여명의 대학생들이 윤이상을 만나러 통영에 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을 하는 이십 대 대학생이라는 것이다. 성장기 윤이상이 호흡했을 통영의 바다 바람을, 그가 걸었던 통영의 흙길을, 그가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다는 통영의 푸른 바다를 가슴으로 보러 간다.

오는 18~19일 양일간 경남 통영 윤이상 기념공원 일대에서 진행되는 '윤이상 예술여행'에는 제주대의 혼소리, 경희대의 소리결, 경기대의 비나리, 성공회대의 애오라지, 인천대의 함성, 노래악단 씽, 대학생 노래패연합 준비위원회와 노래패 우리나라가 함께한다. 18일 저녁에는 '우리나라'의 작은 콘서트 '상처입은 용'도 열린다.

"윤이상 선생의 생애를 톺아보고 싶은 마음에 작년 여름 통영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노래도 열 곡 정도 만들어서 공연을 했습니다. 올해가 윤이상 선생의 탄생 100주년인데 이 예술여행을 더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중 대학생 노래패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려니 경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학생들이라 사정이 녹록지 않네요. 노래패였던 직장인 선배 후배님들의 응원을 부탁합니다. 노래패가 아니었어도 응원하고 싶은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작곡가 겸 가수 백자의 말이다.

이번 행사에 참가할 젊은이들이 가슴으로 읽고 올 것들은 값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인의 권력유지 근간이었던 친일파, 그들이 반공주의자들이라는 이유로 청산을 반대했던, 이승만의 방해로 비록 결국 해체되었지만, 해방 후 지금까지 70여년간 한반도 남쪽을 짓눌러왔던 적폐를 근본부터 청산하려했던, 유일했던 기회. 제헌국회가 만들어낸 1948년의 반민특위가 '항일운동가'가 아니란 사실은 배우고 오지 않을까.


태그:#윤이상 예술여행, #윤이상, #대학생 노래패, #노래패 우리나라,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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