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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TED 강연회 동영상 자료들이 웹사이트에 오르면서 강연 시장이 급속히 성장했다. 교육청, 도서관, 서점, 학교, 기업 등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강사를 모시고 '저자초청강연', '작가와의 만남', '사람책', '인문학 콘서트' 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방송가에서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 100℃(2015년 종방) 등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기도 했다.

학교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경쟁적으로 강연회를 개최한다. 일부 지방지를 살펴보면 모 학교에서는 강연회를 언제, 누구를 모셔 개최하였다는 짧은 홍보성 보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일선 학교에서는 강연 프로그램이 없으면 뒤처지는 학교로 치부받기도 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일부 학교 교장은 교사를 닦달하는 곳도 생긴다. 닦달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일각에서는 이런 무차별적인 프로그램 덕분에 강사들에게 비싼 강사료를 지불하면서도 학생들에게는 불만을 사는 경우도 많다. 일부 선생님은 강연프로그램을 질색할 만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강연 시간 내내 졸고 있는 아이들, 강사의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하며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들, 대놓고 강연이 재미없었다며 시간 낭비를 했다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아무런 의미도, 효과도 찾을 수 없다는 한편의 시각이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강연회마저 '전시 교육'으로 바뀌는 실정이다. 허나, '전시 교육'을 의미 있는 교육으로 바꾸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많은 학생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강연회의 경험을 살려주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인지도 높고, 재미있는 김제동씨를 모시고 강연을 하면 되지만, 현실적인 방법은 아니다. 유익한 '저자 초청 강연회'를 준비하는 방법을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사전독자감상단'을 두어라

오연호 작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고, 행복을 키워드로 10가지 설문조사를 통해 프레젠테이션 하는 장면.
▲ 행복 아젠다 오연호 작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고, 행복을 키워드로 10가지 설문조사를 통해 프레젠테이션 하는 장면.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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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듣는 모든 학생이 저자의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전독자감상단(아래 사단)을 두고, 사단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강연 전 책을 읽지 못한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토의하는 것이 좋다.

순천신흥중학교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오연호 저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던 사례를 살펴보면 사단은 강연 두 달 전부터 책을 읽고, 열띤 토론을 펼쳤다고 한다. 그리고 '행복'을 키워드로 하는 설문 조사지를 만들어 전교생에게 설문을 받았다.

설문조사 결과 분석을 통해 유의미한 설문을 작성한 76명의 학생을 선정하여 강연회에 초청하였고,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행복' 어젠다 프레젠테이션을 제작하고 발표했다.

저자와 학생을 연결할 수 있는 끈을 만들어라

대부분의 학생은 학교로 초청되는 저자를 알지 못한다. 저자와 학생을 연결하는 끈은 책이 된다. 그러나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책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도 사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단은 자신의 친구와 저자를 연결할 수 있는 조금은 쉽고, 재미있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도 본 기자가 지도교사로 있는 순천신흥중학교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2016년 10월 27일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의 김해원 작가를 모시고 문학콘서트를 진행하였다. 사단은 소설집 작품 중 <표류>라는 단편으로 책노래를 작곡, 작사하였고, 많은 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김해원 작가의 <표류>를 바탕으로 작곡, 작사하여 17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노래하는 장면
▲ 책 노래 김해원 작가의 <표류>를 바탕으로 작곡, 작사하여 17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노래하는 장면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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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에는 오연호 작가의 강연회 전 오연호 작가의 책을 친구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표지를 새롭게 해석하여 일러스트 작품을 들고 나와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저자와 한층 가까워지기 위한 재미있는 OX 퀴즈를 진행하여 강연회의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연호 작가는 강연 중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하는 학교가 있었다면 500회 특집을 여기에서 할 걸 그랬어요"라며 신흥중학교 학생의 자세를 극찬했다.

흥을 불러일으키는 이벤트와 선물을 준비해보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저자들의 강연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강연자들의 대부분은 중학생을 무서워한다. 재치와 뛰어난 말솜씨로 유명한 강사 김창옥씨는 한 강연에서 '중학생이 가장 어려운 청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6년 순천신흥중학교를 찾은 저자 세 분은 신흥중학교 학생을 이상한 중학생이라고 규정했다. 강연에 몰입하고, 질문하며, 심지어 공감하는 이상한 중학생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사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강연 중간에 간단한 이벤트를 준비하여 친구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자칫 집중력을 잃을 만한 시간대를 적확하게 발견하고, 그 시간을 이벤트 시간으로 활용한다. 친구들에게 줄 선물로는 저자의 책도 좋고, 과자도 좋다. 강의가 끝나고 저자와 함께 자장면을 먹거나 특별한 단체사진을 찍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아리랑 청년, 세계를 달리다』의 문현우 작가와 나눈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조금 특별한 단체 사진을 찍음.
▲ 조금 특별한 단체사진 『아리랑 청년, 세계를 달리다』의 문현우 작가와 나눈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조금 특별한 단체 사진을 찍음.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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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으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만들자

강연을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강연회를 통해 얻은 것,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2014년 순천남산중학교의 사례를 살펴보자. 순천남산중학교에서는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의 김혜원 작가를 초청했다.

작가는 홀몸노인 열두 명의 인생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모시고 살아야 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2014년, 2015년에는 사단과 함께 한 분의 홀몸노인을 찾아뵈었다. 2016년 순천남산중학교는 열 분의 홀몸노인을 많은 학생이 찾아뵙고 책과 강연회가 전달해주는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2014년,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김혜원 작가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이어 온 실천.
 2014년,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김혜원 작가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이어 온 실천.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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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과 함께 새롭게 바라보는 저자 초청 강연회

그렇다면 사단은 어떻게 꾸려야 하는가? 학교마다 '도서부', '독서부'라는 이름으로 동아리가 있다. 일반 학생들도 상관없다. 강연회가 열리게 되면 최소 한 달 전에 공지하여 학생들에게 알린다. '누구의 어떤 책으로 강연회가 진행되니 사단으로 참여할 학생은 모여라'는 공지를 도서관에 부착한다. 그럼 그때마다 희망자들로 사단이 꾸려진다.

2016년 사단으로 세 번 참가한 순천신흥중학교 3학년 송경미 학생은 "도서부의 활동 중 사단은 단순히 책을 먼저 읽는 활동이 아니었어요. 책을 읽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거리를 찾아야 했고, 고민해야했어요. 그렇게 하고 난 후 강의를 들어서일까요? 훨씬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최근 오연호 작가님의 강연에서는 '스스로 선택해야 즐겁다'는 말이 참 와닿았어요"라고 말을 전했다.

학교에서의 초청강연의 의미는 학생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한 차원 높은 문화 향유를 할 수 있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사고와 삶의 태도를 지닐 수 있게,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게 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성과 쌓기 식의 강연회로 저자도 피곤하고, 학생도 피곤한 결과를 낳고 있다. 저자 초청강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성이 제기 된다.


태그:#순천신흥중, #사서교사, #도서부, #저자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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