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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공개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지난 4일 공개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
ⓒ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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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사건... 그건 잘 (수사)될 겁니다. (청와대와) 끈이 떨어졌으니까."

지난 4일 공개된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아래 <파파이스>)에 출연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에 대해 이렇게 예견(?)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박근혜 정권 첫해였던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댓글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혼외자' 논란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낙마했던 인물이다.

어쨌거나, 채동욱 전 총장의 예견은 틀린 것일까? 지난 6일 검찰조사를 받고 7일 새벽 귀가한 우병우 전 수석을 둘러싼 검찰의 대응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오늘(7일) 조선일보가 단독 보도한 사진만 보면 딱 그러하다.

조선일보가 까발린 우병우-검찰의 화기애애 분위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찰 소환 관련 기사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찰 소환 관련 기사
ⓒ 한겨레, 조선일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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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언제까지 이 '생쇼'를 해야 되는 거야!"
"아이고, 선배님. 자정은 속 보이고, 1시는 넘겨야 기자들이 빠지지 않겠습니까."
"제대로 해라."
"아시잖아요, 저희들도 죽겠습니다. 좀 봐주세요, 선배님."

7일자 조선일보 1면을 장식한 <팔짱낀채 웃으며 조사받는 우병우> 기사 속 사진을 보면, 이런 대사가 저절로 연상된다. 팔짱을 낀 채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선 '선배' 피의자 우병우와 공손한 자세로 그 선배를 모시는 듯한 인상의 '후배' 검사들. 영화 <내부자들> 속 밀어주고 끌어주는 검찰 선후배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더욱이 6일 오전 검찰 출석 직전, 가족 회사 관련 비위를 묻는 KBS 기자를 매섭게 노려보는 우 전 수석의 얼굴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도 전혀 꿀릴 것 없다는 듯 저열하기까지 한 당당함으로 일관했던 우 수석의 그 자신감. 그 연원이 일선 검사들이 쩔쩔매는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설명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검사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일갈했다.

"겁(검)찰이 우갑우 사건 수사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려고 작정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야당의 일관된 지적질에도 불구하고 수사의 기본인 자택과 휴대폰 압수수색 정도는 가볍게 생략하는 대범함, 3개월 동안 소환조사는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다가 여론에 밀리자 길일(吉日)로 소환일자를 택일하도록 허락해주는 배려, 조금 으슬으슬하다 하니 입던 점퍼도 빌려주고 조사 중간 중간에 깍듯한 태도로 뭔가를 보고하는 듯한 겸손,

그리고 비등하는 현안(혜실게이트)에 대해서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3개월 전에 이미 처리했어야 할 개인비리에 대해서만 뒷북쳐주는 예의, 매너, 센스까지... 차은택 등과의 관계, 국정농단 간여 등 혜실게이트 연관성에 대해선 이참에 아예 손 떼고 특검에 맡기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소원대로 해드려야죠. 서초동에서 우갑우 구속하라고 일인시위하며 떨고 계신 박범계 간사님!! 겁찰은 우갑우를 제대로 수사할 맘이 전혀 없답니다. 추운 데서 괜히 몸 축내시는 듯 ㅠ.ㅠ"

우병우 "황제조사", 작금의 '정치검찰' 수준

직권남용과 횡령 등 각종 비위 의혹이 제기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가족회사 정강의 자금 유용 여부를 묻는 기자를 쏘아보고 있다.
▲ 쏘아보는 우병우 직권남용과 횡령 등 각종 비위 의혹이 제기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가족회사 정강의 자금 유용 여부를 묻는 기자를 쏘아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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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수석을 지난 5일 20만 인파가 운집해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광화문 광장에 세워야 했던 걸까. 그도 아님, 국민들이 검찰청 앞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라도 열어야 하는 건가. 우병우 수석의 안락한 검찰 수사 현황을 지켜본 국민들은 이를 두고 '황제조사'라 명명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 대변인도 7일 브리핑을 통해 이 황제 소환을 비난하고 나섰다.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의 태도가 가관이다. 우병우 전 수석은 75일 만의 "늑장" "황제 소환"도 모자라 "황제 조사"를 받고 나왔다. 검찰이 여전히 우 수석에게 장악돼 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검찰청에서 팔짱 끼고 웃으며 담소하는 여유까지 보인 우 수석 모습에 기가 막힌다.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간 것이 아니라 '면죄부를 받으러 간 것' 같다.

우병우 전 수석은 개인 의혹뿐 아니라'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이라는 측면에서 처벌받아 마땅하다. 대통령 최측근으로 공직기강을 세워야 할 민정수석이 사정기관을 발아래 두고 각종 비위와 국정문란 행위를 방조했다. 심지어 '최순실 발탁설' '차은택 뒷배설'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에 경고한다. 짜여진 각본대로 불구속 기소나 약식 기소로 마무리한다면, 국민의 저항과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 스스로 검찰임을 포기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우병우 구속 수사를 통해 정의가 그나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정의'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법대로만, 현행법대로만 수사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검찰의 깜짝쇼는 현재진행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 1대는 압수했다면서, 구속 수사 중인 최순실씨의 휴대전화는 단 1대도 확보하지 못한 것만 봐도 그러하다. 하긴, '늑장소환'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에도 누누이 제기됐던 증거인멸의 가능성을 방치했던 것이 바로 작금의 '정치검찰' 수준 아니겠는가.

예상된 시나리오대로 우 전 수석은 15시간의 수사 동안 대부분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검찰의 수사 내용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아닌 가족회사 '정강'의 횡령 의혹, 장남의 의경 복무 중 '운전병' 보직 이동과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 허위 재산 신고와 관련한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이다. 보란 듯이 전관예우를 깎듯이 한 검찰이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우 전 수석의 비위를 낱낱이 캐낼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현저히 낮아 보인다.

"검사들이 쥔 칼자루는 국민들이 빌려준 것"

2013년 9월 13일 오후 전격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자 검찰 관계자들이 나와 배웅하고 있다.
 2013년 9월 13일 오후 전격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자 검찰 관계자들이 나와 배웅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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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과 검찰 후배들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비리를 감추려고 검찰을 하수인으로 만든 권력자들,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권력에 빌붙은 일부 정치검사들, 그러다가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검찰의 책임이 큽니다. 물론 이 정권 초기에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중도에 물러났던 저의 책임 또한 큽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검찰이 좀 더 정의로웠다면 이 지경까지는 안 됐을 겁니다. 그래도 국민 여러분들께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검찰을 믿어 주십시오.

이 방송을 검찰 후배들이 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자리를 빌려서 검찰 후배들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검사들에게 쥐여 있는 칼자루는 법을 우습게 알고 제 멋대로 날뛰는 바로 그런 놈들을 죽이라고 국민들께서 빌려주신 거다, 지금, 국민들께서는 오로지 검찰만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기회다. 최순실 사건 제대로 해라. 사랑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팟캐스트 인터뷰 말미 눈가를 적시며 국민과 검찰 후배들에게 전한 사과와 부탁이다. 검찰총장 재직 시 "법대로 하다가..." 잘렸다며 씁쓸해하던 채 전 총장은 "청와대가 검찰에 지시하는 가이드라인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라고 확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정권 들어와서 검찰총장까지 탈탈 털어 가지고 몰아냈다"며 "검사들이 바짝 더 엎드리게 됐고, 검사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다"며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버린 작금의 현실을 개탄했다.

채 전 총장의 말을 빌려보자.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검찰일지라 하더라도,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빌붙었던 부역자들, 즉 여당, 친박 의원, 장관을 비롯한 정부 요직, 공무원들, 언론까지 모두 분노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검찰은 그 중심에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은 물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면, 국민들과 정치권으로부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이미 검찰의 수사권 제한 등 검찰개혁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서는 검찰개혁을 위해 18개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을 주민직선제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다. 마지막 기회다. 검찰이 검찰이어야 하는 이유와 지금의 권력을 조금이나마 남길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시점 말이다. 이번 우병우 전 수석 사건이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있어 여전히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다면, 그 마지막 기회조차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태그:#우병우, #채동욱, #검찰, #검찰총장,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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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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