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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한 사람들은 프리마켓을 제주이주자들과 현지인의 교류의 장으로 이해한다. 이곳을 통해 직접 제작한 작품을 판매하고 필요한 여러 정보를 교환하는 일종의 문화전시장이다.
▲ 제주 프리마켙 전경 이주한 사람들은 프리마켓을 제주이주자들과 현지인의 교류의 장으로 이해한다. 이곳을 통해 직접 제작한 작품을 판매하고 필요한 여러 정보를 교환하는 일종의 문화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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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제주 정착기'가 출간되었다. <제주에 살다>는 제주도로 이주한 새내기들이 새로운 삶을 건축을 통해 바라보는 일종의 모험담이다. 여기서 모험담이라고 말한 까닭은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이 정말 모험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전의 삶과는 180도 다른 삶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주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혔듯 제주로 이주하는 것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민"이라고 말한 이주민 최한정씨의 말도 모험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된다.

제주는 결코 쉬운 곳이 아닙니다. 입도한 사람들이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이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생경한 문화가 이 섬에 깔려 있습니다.

제주에 이주한 사람들은 새로 집을 짓기도 하지만 기존의 주택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구옥은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 바당1미터 제주에 이주한 사람들은 새로 집을 짓기도 하지만 기존의 주택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구옥은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 최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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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이 자기의 의지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타자의 의지와 계획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생활 구조를 부당하다고 느껴도 정작 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주입한 대로 따라가는 삶은 그럭저럭 편리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자아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당당히 자기를 표현하고 기꺼이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모험을 해야 하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남들이 10년, 20년 살기 위해 어느 곳으로 이사하는 것처럼 우리는 60년을 살기 위해 이주했을 뿐이다. 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하지만 이 좋은 제주와 함께하는 지금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다.

귤농사를 짓고 있는 남원 귤집의 정의준씨는 농사를 짓기 위해 제주에 정착하기 수개월 전 미리 와서 농장에 취업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지금의 집터를 소개받고 마치 오래된 마을지기 같이 생활한다.
▲ 남원귤집 귤농사를 짓고 있는 남원 귤집의 정의준씨는 농사를 짓기 위해 제주에 정착하기 수개월 전 미리 와서 농장에 취업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지금의 집터를 소개받고 마치 오래된 마을지기 같이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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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내가 사는 강화에도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귀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경험했고 도시의 삶에 어느 정도 회의감을 느꼈으며 자연을 좋아하고 사적인 생활의 가치를 잃고 싶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체로 안정된 생활을 꾸리던 은퇴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전의 삶에 너무 가혹함을 느꼈거나 자연과 교감하며 사는 것이 더 많은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일선에서 후퇴하여 안락한 삶을 누리려하는 것에 방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 소개된 11가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소란하지 않지만 대단히 모험적이란 것을 알게 된다. 전원으로 가면서 정말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도전과 모험정신이 진정한 삶의 가치에 한 발 더 다가설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은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매년 대량해고와 실직 그리고 시장경쟁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목숨도 내던지는 과잉경쟁의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가치를 창출하려 애쓰는 일상 시민이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떤 정치적 견해도 배제된 극히 일상적인 얼굴을 그리고 있다.

부조리가 넘쳐나는 현 사회와 극히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글에는 한 사람, 한 가족이 이주(이사)를 결심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왜 모험을 시작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안정적인 직장과 자리에 연연하다가 잃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광고시장은 포연이 가득한 전쟁터, 전쟁터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인간의 삶을 살찌워야 하는 일이 되레 삶을 괴롭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폐해져 갔어요. 치열한 광고시장에서 요구하는 것은 차별이에요. 그 차별을 만들기 위해 혁신적인 키워드를 물색해 내고 솔루션을 위한 온갖 일을 다 하게 되죠." 차별성, 새로운 키워드, 변태, 기기묘묘한, 미션 그리고 또 미션. 그가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허겁지겁 쟁취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녀가 깨달은 것처럼 물건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어느 순간 불필요한 것도 우리에게 나타나고 그것도 부족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은 우리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부족한 곳이다." 목화솜으로 실을 자아 옷을 해 입었던 모한다스 카란찬드 간디가 한 말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직업과 연령대도 매우 다양하다. 디자이너가 된 경우도 있고 농부가 되거나 목수가 된 경우도 있다. 모두 도시의 일상에 지쳐 있다가 어느 날 인생의 반전일 수도 있을 이주를 결심한다. 즉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며칠짜리 모험이 아니라 인생의 남은 시간을 걸고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모험의 시작인 것이다.

그는 제주에서 말 그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사는 곳이 달라졌고 하는 일도 달라졌다. 그는 서울 압구정에서 미술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중략- 최근 5년은 자신의 학원을 차려 학생들이 몰렸을 정도로 꽤 잘해냈다. -중략- 그런데 제동을 걸었다. 학원 원장이 되자 강사였을 때와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다. 서울 학원을 정리한 돈을 건물 임차와 목공기계와 재료에 털어 넣고 홀가분하게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물론 건축이 자연과 교감할 때 마술 같은 힘이 생긴다는 것을 저자는 이해하고 있다.  

건물은 원래부터 있던 자연의 호위를 받으며 아늑하게 자리 잡았다. 집의 입구에는 대문도 없고 제주 고유의 정낭도 걸려있지 않았지만 안전이 걱정되진 않았다. 숲을 이루고 있는 귤나무와 그 주위의 키 큰 방풍림이 건물을 감싸고, 마을길에서 오붓한 에움길을 타고 들어와야 건물 앞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숲과 길이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

건축 읽기를 통해 시작된 이야기

저자 박지혜는 7년 동안 주택잡지의 기자생활을 하며 많은 취재와 교류를 통해 건축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제주에 살다>는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그의 첫 저서로 주택을 지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세세하게 기록한 <전원주택 짓기 가이드북(투데이북스)>이 있다.
 저자 박지혜는 7년 동안 주택잡지의 기자생활을 하며 많은 취재와 교류를 통해 건축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제주에 살다>는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그의 첫 저서로 주택을 지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세세하게 기록한 <전원주택 짓기 가이드북(투데이북스)>이 있다.
ⓒ 우드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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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지혜는 오랫동안 주택잡지 기자로 활동하며 건축이 기획되고 진행되는 과정을 보아왔던 사람답게, 공간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마치 음악을 듣거나 익히 알아왔던 시를 읊는 것처럼 사람과 건축이 함께 공존하는 풍경을 노래한다.

좋은 삶이란 스스로 자리를 정하고 공간을 배치하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의 묘사는 번거롭지 않고 수선스럽지 않다. 마치 당연히 있는 것을 나열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건축이 말하려는 것을 세밀하게 읽어낸다.

값나가는 골동품 같은 느낌이랄까. 돌집의 감쪽같은 변신이다. 지붕만 그대로이고 낡은 옛집을 모던하게 고쳐놓았다. 유리와 돌과 금속의 묵직한 덩어리감이 파사드의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가운데 현관문을 두고 왼쪽과 오른쪽 벽엔 유리창을 설치했는데 왼쪽은 투명한 접이식 유리창이고 오른 쪽은 희끄무레한 모눈 창살의 유리창이다. 한쪽은 모던 유리창이 안팎을 소통시키고, 다른 한쪽은 복고 유리창이 유물처럼 박제된 듯 서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왼쪽 유리벽은 그 너머로 실내에 켜 둔 조명이 새어나와 따스한 분위기를 전달했다. 유리벽 너머로 어스름히 세간이 보였다. 2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기단 위에 바닥면을 기단의 두 배정도 더 띄어 바깥에서 보면 마치 무대처럼도 보였다. 그 무대 뒤에는 정강이까지 오는 탁자와 그에 걸맞은 푹신한 의자, 스테레오 박스, 시멘트로 된 페닌슐라 카운터...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피아노의 선율이 있었다.

저자는 원래 의도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건축을 중심으로 구성하고자 했던 내 의지와는 다르게 사람의 사는 이야기를 중심에 두게 되었다. 그래서 마치 제주 정착기처럼 써졌지만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당연해 보였다. 이주자들을 만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주가 주는 자유로움과 판이하게 다른 이주의 실체를 만나게 되고 거기엔 행복과 풍요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 역시나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민인지라 제주에 새 삶터를 마련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이 어떻게 섬으로 왔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나날을 보내는지 궁금하던 터였습니다. -중략- "누구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한 샤를 보들레르의 말처럼 바로 그런 느낌으로 제주로의 이주를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께는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도전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한 부족이 슈쉬왑(Shushwap)이라는 지역에 대대로 눌러 살았다. 슈쉬왑에는 물고기와 짐승과 식용 식물이 넉넉했다. 부족민들은 사냥과 고기잡이, 채취를 위한 기술을 익혀 부족함 없이 살았다. 그런 마을에 원로들이 제동을 걸었다. "지금 우리 부족의 삶은 너무 예측 가능하다. 우리에겐 도전이 사라졌다." 원로들은 도전이 없는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원로회의에서는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다. 부족이 일정 주기를 가지고 이주하는 것. 도전과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복안이었다.

이 책을 요약하는 단 하나의 문구를 찾아야 한다면 슈쉬왑의 원로들이 말한 "도전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구절이다. 이 책 주인공들의 도전이 시작된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전원에서 살리라' 하는 다소 무기력한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이 무너진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으며 바로 그곳에서 발견한 자신이 실은 진정한 자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각성을 불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진정한 자신을 바로잡기 위한 각성이 이주를 결심하는 큰 이유가 된다. 그 과정이 때로는 돌담 사이, 때로는 오래된 마을길, 현관 입구, 무심히 가져다 놓은 작은 의자에서 발견되고 묘사된다. 이 책에 소개된 주택들은 모두 건축적으로 탁월하거나 공간적으로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몇 작품을 제하고 이주자 개개인의 능력과 이주자들이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각각의 주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생동감을 더하고 일상적인 건축과 그 운용에 대해 할 이야기가 풍요롭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저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건축의 가장 중요한 이유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이 느꼈을 이주의 생경함과 자연이 선물하는 감동적인 풍광 그리고 삶이 주체적일 때만이 얻을 수 있는 가슴 벅찬 뿌듯함들 때문에 '이민'의 피로를 잊고 또 하루를 즐거이 시작하는 긍정의 힘을 만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저자 박지혜는 오랫동안 주택잡지의 기자로 활동하며 건축이 기획되고 진행되는 과정을 보아왔던 사람답게, 공간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마치 음악을 듣거나 익히 알아왔던 시를 읊는 것처럼 사람과 건축이 함께 공존하는 풍경을 노래한다. 좋은 삶이란 스스로 자리를 정하고 공간을 배치하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의 묘사는 번거롭지 않고 수선스럽지 않다. 마치 당연히 있는 것을 나열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건축이 말하려는 것을 세밀하게 읽어낸다.



제주에 살다 - 제주에 내려와 집 짓고 사는 사람들의 푸른 랩소디

, 우드플래닛(2000)


태그:#제주도, #박지혜, #무무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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