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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하면 생각나는 것이 추석입니다. 아니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이 송편입니다. 추석과 송편은 그만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설 명절과 떡국의 관계처럼. 한가위 송편은 또 오래 전 세상을 뜨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합니다. 어머니가 뭉뚱그려 만드신 추석 송편, 모양은 투박했지만 맛은 최고였습니다.

어제(9월 13일)로 사드 반대 촛불집회 24일째입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시점임에도 평상시와 같이 많은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엄마의 품과도 같은 고향 방문을 귀향객들을 패러디해 사드는 그의 고향 미국으로 가라고 외쳤습니다. 추석 때의 집회 구호로 '딱'이다 싶었습니다. 촛불집회는 기지(機智)의 발현장입니다.

어제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전 아내와 가벼운 다툼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추석을 상징하는 송편을 만들어 집회 장소로 가고 싶어 했고, 저는 반대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에게 한두 개씩을 나눈다 해도 한 가마니의 쌀이 필요하고 또 부대비용까지 계산하면 작은 저희 농촌교회가 감당하기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생각을 접지 않았습니다. 쌀 20kg 한 포대를 방앗간에 맡기고 송편을 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추석 명절 땐 방앗간도 몹시 바쁘겠지요.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각에 송편이 왔습니다. 아내와 2차 다툼이 있었습니다. 몇 개씩 넣어 포장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집회 시간을 맞추지 못 하게 됩니다.

저는 다음 날 촛불집회 때 쓰자고 했고, 아내는 좀 늦더라도 당일 쓰는 것이 좋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언제부턴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다툼이 있을 때 제 주장이 밀리고 맙니다. 주위 사람들은 남자가 지는 게 정상이라고 하지만 저는 '힘의 부침 현상'으로 보고 화를 냅니다. "역부족(力不足)"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김천역 광장 촛불집회
 김천역 광장 촛불집회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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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가 넘어 김천역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촛불을 들고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더군요. 이런 광경을 보고 흥분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비딱 성격 탓이라고 할 사람들이 없잖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의와 진리에 대한 열정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화자찬이 될까요?

한 가마니로도 모자랄 판에 한 포대의 송편으로 모든 사람과 나누기에는 애초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내는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회를 위해 수고하는 실무자들과 봉사자들, 거기에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송편을 전달하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하나 입에 넣어 보니 살살 녹는 것이 맛으로도 최고입니다.

촛불 집회에서 함께 나눈 송편
 촛불 집회에서 함께 나눈 송편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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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성경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이 떠올랐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이런 기적을 두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자기 것 내놓기를 극히 꺼려하는 세태에 어린 아이가 내놓은 도시락 하나(오병이어)가 사랑으로 확산되어 군중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내놓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

집회 뒤의 현장은 스산하기 그지없습니다. 보통 그렇습니다. 휴지가 나뒹굴고 안내 전단으로 어지럽고 거기에 촛불집회는 타다 남은 초와 촛농의 지저분함으로 보기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집회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뒷수습을 하는 시민들로 김천역 광장은 집회 전보다 더 깨끗하게 변해 있습니다. 바닥의 촛농은 많은 손길과 시간을 요합니다. 젊은 엄마들이 자신의 거실을 치우듯 커터 칼로 흔적 없이 지웁니다.

우리의 사드 반대 투쟁은 지속될 것입니다. 제3부지가 어디가 되었든 한반도에 사드 배치가 철회되는 그 날까지 멈추지 않고 싸워야 합니다. 많은 에너지가 이 싸움에 투여될 거예요. 사람과 물자와 시간… .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요한 에너지는 따뜻한 사랑입니다. 사드 배치가 성주와 김천 나아가 한반도 전체의 문제인 만큼 국민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후원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함께 쓴다는 마음으로 동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태그:#추석 수장, #솔편 나눔, #김천 촛불집회, #사드반대, #오병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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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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