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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씨가 지난 3월 17일 숨졌지만 88일째 장례를 못 치르고 있습니다. 유성범대위와 민주노총 유성기업지회는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시청 앞 분향소를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으로 옮기는 '꽃길 100리' 행사를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11일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쓴 "함께 종이꽃이 되어 서울을 누빕시다"란 글을 "'냉동고' 있던 노동자, 꽃상여 태워 나갑니다"란 제목으로 내보냈으나, 마치 고인의 시신을 옮기는 행사로 오인될 수 있어 부득이 제목을 바꿉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편집자말]
3일째 되던 날이었나, 5일째 되던 날이었나. 정신없이 보내던 날들의 마지막. 아버지를 싣고 갈 하얀 종이꽃들이 풍성하게 달린 상여가 마당에 놓였다. 하얀 한지가 돌돌 말려 환하게 웃듯 벌어진 종이꽃들이 살아있는 꽃들만큼 아름다웠다. 동네 사람들과 엄마의 지인들이 열심히 만든 꽃들이었다.

'아, 아버지가 저곳에 실려 가겠구나.'

아름다운 꽃상여를 보니 가난한 '세탁쟁이'였던 아버지의 마지막이 조금은 위로받겠지 싶었다. 아니, 그보다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던 고등학생인 나와 우리 가족들을 꽃들이 둘러싸는 듯했다. 따뜻했다.

'다행이다. 엄마도 저 꽃상여를 보고 조금 마음이 풀리겠지. 덜 시리겠지...'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와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일이다. 그가 살았던 삶을 위로하며 고생했다며 이생은 걱정 말고 잘 가라고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는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유성기업 한광호열사 추모 범국민대회
 유성기업 한광호열사 추모 범국민대회
ⓒ 유성범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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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00일이 다 되도록 아직 이생을 떠나지 못하는 이가 있다. 고(故) 한광호.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유성기업에 다니던 고인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차가운 냉동고에 있다. 그는 유성기업이 현대차의 사주에 따라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괴롭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끝냈다.

누군가는 스스로 끝낸 그를 왜 못 보내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죽음으로써 호소했던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일을 그만하라는 요구가, 동료들과 즐겁게 아니, 즐겁지는 않더라고 괴롭지 않게 공장을 다니게 해달라는 절규가, 아직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가 어찌 편하게 세상으로 갈 수 있겠는가.

아니 그렇게 그를 죽음으로 내몬 유성기업 유시영과 현대자동차 정몽구와 경영진은 사과조차 하고 있지 않는데... 동료들은 여전히 회사에서 징계를 받고 해고를 당하고 있다. 아니, 그까짓 '해고'정도야 싶을 정도로 현대차는 양재동에 있는 고인을 추모할 분향소조차 망가뜨렸다.

그의 형 국석호와 동료 조합원들은 분향소를 지키다 연행되기도 했다. 기업주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를 갖춰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를 바라는 건, 인간성이라곤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은 비정한 자본의 시대에선 순진한 생각일까?

그를 편하게 하늘로 보내고 싶다

유성 경영주 '유시영'에게 한광호 열사 죽음의 책임을 묻는 손피켓을 들고 있는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지회장.
 유성 경영주 '유시영'에게 한광호 열사 죽음의 책임을 묻는 손피켓을 들고 있는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지회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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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믿는다. 비정한 자본의 시대에 어쩌면 초라하게, 어쩌면 지독히도 외롭게,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고 한광호 노동자에게 따뜻한 종이꽃이 되어 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의 가족이나 동료 말고도 그가 당한 폭력과 모욕에 분노하며 이런 세상은 끝내자고 팔뚝질해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서울시청 분향소에 찾아왔던 수많은 노동자들, 시민들의 따뜻한 눈빛을, 위로하던 손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그런 믿음으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6월 13일부터 고인이 바랐던 노동자 괴롭히기가 없는 세상,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조를 만들고 가입해도 되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 꽃상여를 들고 거리를 누빌 계획이다. 고인을 그리워하고 고인의 넋을 달래는 꽃상여는 이제 고인의 소원을 서울 곳곳에 새길 것이다.

그리고 그 행진에 참여한 이들은 한광호 열사처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또 다른 한광호이기도 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만나 꽃이 되고 울음이 되고 웃음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의 생과 죽음을 달랠 것이다. 그렇게 한광호 열사의 뜻을 곳곳에 새기면서 그의 유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그 힘으로 시청에 있던 한광호 열사 분향소는 양재동에 있는 현대차 본사 앞에 옮겨질 것이다.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와 함께 하는 사회적 행진, 꽃길 100리>는 여러 사람들이 삭막한 자본의 도시에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믿는 사람들이 존엄의 꽃길을 새기는 일이리라.

그러니 다른 세상을 원하는 이들이여, 비참한 죽음이 사라지길 바라고 노동자를 괴롭히는 게 경영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저들의 악랄함에 치를 떠는 이들이여, 무엇보다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이여, 하룻밤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꽃길 100리에 와서 종이꽃이 돼 주시리라.

'꽃길 100리' 행진 포스터.
 '꽃길 100리' 행진 포스터.
ⓒ 송경동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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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보도문
2016. 6. 11자 [90일째 장례 못 치른 노동자, '꽃길 100리' 걷는다] 표제의 기사와 관련하여, 유성기업(주)는 "근로자의 자살은 회사와 무관한 개인적인 사유에 기인한것으로서 '해당 근로자가 현대차의 사주에 따라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괴롭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끝냈다', '죽음으로써 호소했던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일을 그만하라는 요구가, 동료들과 즐겁게 아니, 즐겁지는 않더라도 괴롭지 않게 공장을 다니게 해달라는 절규가...'라는 등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이는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을 호도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고 알려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명숙씨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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